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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호 Jul 16. 2023

지금 제주 가면, 헤어지는 거다?!

제주 여자, 서울 남자의 신혼생활 이야기 ①

올리는 어느 날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갑자기가 아니었지만, 나에겐 갑자기였다) 우리가 사귄 지 3년이 되어가던 시절이었고, 난 올리와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계획이었다) 정확히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별 망설임없이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고 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아마 길어야 석 달 정도 살아 보고 돌아올 거라는 어림도 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 다른 어느 날, 올리는 이별통보를 했다. (그녀에게는 갑자기가 아니었지만, 나에겐 갑자기였다. 아니 나한테 왜 이래?) 아직도 그날이 선명하다.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문래동에서 아기자기한 공간을 둘러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을 했다. 저녁에는 소주 한 잔과 고기를 구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지나가는 길에 있던 펀치 기계에서 한참 놀기도 했다. 소소했지만, 낭만이 있던 하루였다. (이건 오직 내 관점에서의 기억이다) 바로 그 날, 올리는 이별통보를 했다.

집에 돌아가는 그녀를 잡지 못했다. 뇌가 정지되었다. '뭐지? 서프라이인가? 갑자기? 왜?' 답 없는 질문을 이어갈 때, 올리는 이미 내 앞에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눈치가 없을 수가 있다니... 그때는 올리가 제주를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이렇게 떠나보내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겠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쫄보라서 바로 만나러 가지는 못하고, 절절하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문앞에 두고 돌아왔다. 그 주 주말에 올리는 제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연락이 오겠지'라는 나약하고 멍청한 생각을 서둘러 접고, 만나자고 했다.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가까스로 올리의 마음을 돌렸다. (아직도 조금 억울한 건, 이별 통보할 거면 그날 데이트는 왜 한 거야?) 놀랍게도 나는 그 다짐을 지켰고 우리는 2023년 5월 13일, 부부가 되었다.

석 달 정도 살아 보고 돌아올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올리는 3년째 제주에 살고 있다. 우리는 월간부부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를 한다는 데. '그게 가능해? 그럼 결혼 왜 했어? 그래도 같이 살아야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당분간 이 삶을 유지할 생각이다. 각자 행복할 수 있어야 함께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와 같은 삶을 꿈꾸는 또 다른 부부에게 미리 보기를 제공하고, 속절없이 흐르는 우리의 순간을 붙잡고자 글자로 기록한다. 제주 여자, 서울 남자의 신혼생활 이야기. 시작합니다. (뭐든지 시작은 잘하는데, 마무리한 건 별로 없어서 걱정이 앞서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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