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호 Oct 14. 2022

프랑스 여성을 사랑했던 50대 랑콤 창립자의 이야기

아르망 쁘띠장의 아름다운 고집

[아르망 쁘띠장 랑콤 창립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 세계 여성들을 위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장미를 바칩니다.


이번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브랜드는 웬만한 여성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프랑스의 프리미엄 뷰티 브랜드 랑콤이다. 랑콤은 프랑스의 조향사 겸 미용 전문가인 아르망 쁘띠장이 1935년 설립했다. 당시 그의 나이 50세로 다소 늦은 나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원조 N잡러였던 만큼 자신만의 뷰티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했다.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는 무역업 종사자, 외교자문, 향수 전문가 등의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평소 프랑스와 여성 그리고 장미를 유독 좋아했던 아르망은 모든 사람이 발음하기 쉬운 브랜드명을 짓기 위해 고민하다가 장미로 둘러싸인 랑코스메 성에 영감을 받았다. 랑코스메에서 알파벳 S를 빼고 O자 위에 악센트 표시를 더한 ‘랑콤’으로 브랜드명을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랑콤은 파리 중심가의 가장 호화스러운 명품거리 포부르 생 토노레 29번지에 첫 매장을 열며 역사를 시작했다.


[좌: 랑콤 프랑스의 장미 립스틱 ㅣ 우: 랑콤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물]


확고한 브랜드 철학


1938년 랑콤은 ‘프랑스의 장미’라 이름 지은 립스틱을 출시했다. 당시에는 키스해도 지워지지 않는 착색력 강한 제품이 대다수였는데, 아르망은 질감이 부드러워 키스를 부르는 제형을 선호했다. 하여 어린아이의 입술을 만들어주는 촉촉한 립스틱을 출시했고, 여성들의 큰 고민이었던 건조함을 해결하며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케이스에도 그의 확고한 철학이 적용됐다. 여성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제공한다는 설립 취지에 맞게 케이스에 은이나 금을 입혀 고급스럽고 소장 가치 높은 립스틱을 만들어냈다. 많은 여성이 랑콤의 화장품을 핸드백에 넣고 싶어 하는 이유다. 하지만 1960년부터 값싼 일회용 플라스틱 케이스가 유행하며 아르망은 큰 충격을 받았고,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던 그는 시대적 흐름을 타지 않고 고집을 이어나갔다. 결국, 이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그가 추구하던 가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초창기 랑콤 엠배서더]


최초의 엠배서더 활용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많은 사람이 뷰티에 대한 열망을 가졌지만, 가이드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미의 기준조차 불확실하던 때에 아르망은 그 기준을 만들고자 특별 교육 기관인 에콜 랑콤을 설립했다. 여기에 선발된 소수 정예의 젊은 여성들은 9개월간 랑콤의 문화, 비전, 브랜드 가치 등을 교육받았고, 이를 수료하면 자격증이 주어졌다. 이들은 오늘날의 브랜드 엠배서더와 같은 인물로 ‘미의 사절’이 돼 새로운 뷰티 시장 개척에 힘썼고, 이들을 통해 랑콤은 1960년 말 100여 개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브랜드사에서 직접 교육하고 트레이닝한 사람들이 미를 전파하는 일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방문판매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도 비슷한 사례다. 랑콤은 지금도 여전히 엠배서더를 운영하며, 시대적 기준이 되는 모델을 내세워 그 가치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시대와 코로나19가 맞물리며 뷰티업계에서 엠배서더의 움직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국내 엠배서더의 원조 격인 아모레퍼시픽은 요즘 ‘디지털 방판’이라고 해서 단톡방을 만들어 뷰티 고관여자에게 뷰티 정보를 주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했다. 우리는 여기서 시대가 지나도 사람들의 니즈와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그 방식은 바뀔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랑콤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물]


시대적 상황에 대한 대비


여러 글로벌 브랜드가 제1,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성장을 일으켰듯 랑콤도 1936년 중요한 역사적 기반을 만들었다. 바로 뷰티에 과학적인 방법을 접목해 스킨케어 개발에 나선 것이다. 그는 말 전문 수의사와 함께 말 혈청 용액이 함유된 피부 크림을 개발했고, 이름을 뉴트릭스라 지었다. 뉴트릭스는 화상이나 상처는 물론, 곤충에 쏘였을 때도 만병통치약으로 통했고,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이 ‘기적의 크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게다가 영국국방부가 핵 방사능 노출을 보호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신뢰도와 함께 명성이 올라가는 건 당연했다. 


화장품이 시대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었던 점도 흥미롭지만, 누군가의 인정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한 점도 인상 깊다. 지금은 식약처에서 이 부분을 담당하고 우리도 앱을 통해 성분 기준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국가적 인정이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다. 지금과 같은 4차 산업시대에서 ESG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새로운 인증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안타깝게도 그의 강인한 철학과 신념이 트렌드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랑콤은 판매 부진을 겪으며 재정위기를 맞았고, 아르망의 아들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인수 기업을 찾아 뛰어다녔다. 결국, 1964년 로레알 그룹에 매각된 랑콤. 다행히도 아르망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철학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 롱런하는 브랜드는 그들만의 명확한 DNA가 있다. 랑콤 또한 이 DNA가 지금의 위상을 만들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글>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고 마케팅하는 브랜드 러쉬

시세이도가 150 동안 롱런한 비결 5가지

이전 09화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고 마케팅하는 브랜드 ‘러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