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가 나아갈 길
K뷰티는 현재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나 또한 과도기에 대한 해결책을 수립하기 위해 뷰티 관련 트렌드나 지표를 기록·공유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뷰스컴퍼니가 서울시 그리고 서울산업진흥원과 뷰티도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그 부분의 일환이다.
그동안 브랜드 스토리를 다루며 서양 화장품 브랜드 위주로 조사했다면 오늘은 일본의 시세이도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K뷰티가 K컬처, 팝, 미디어와 함께 폭발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면 시세이도는 150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결합해 글로벌 성장을 이뤄냈다. 그들의 성장에는 과연 어떤 스토리가 있었을까?
1. 브랜드 유산의 계승
시세이도의 역사는 우리나라 기업문화와 사뭇 다르다. 지금의 16대 사장이 취임하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다. 창업자 그리고 초대사장 이후 미츠코시 백화점 영업부에 근무하던 직원이 조직을 가다듬고 전무를 거쳐 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기업 물려주기식이 아닌 거다. 이는 닥터지의 경영철학과 비슷하다. 닥터지의 창업자는 안건영 박사로 현재 2대 경영자인 이주호 대표가 기업을 이끌고 있다. 이주호 대표는 2014년 입사 후 M&A 경험을 바탕으로 닥터지의 성장을 주도해 결국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기업의 DNA는 명확해야 한다. 사장이 바뀐다고 해서 회사가 바뀌면 그 회사는 오래갈 수 없다. 두 브랜드는 전 직원을 경영자 마인드로 훈련하고 같이 회사를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많이 닮아있다.
2. 동서양의 화합
시세이도의 창업자인 후쿠하라 아리노부는 한방 의사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동경대학 의학부에 진학 후 해군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했다. 근대화에 발맞춰 서양 의학과 동양 한방을 융합한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한 그는 1872년 도쿄 긴자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조제 약국인 시세이도를 설립했다. 당시 철학은 ‘서양의 문화 융합으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였다. 그리고 1877년, 일본 전역에 유행한 콜레라로 약국의 매출은 9배로 치솟았고 이 여세를 몰아 약국에서 화장품 제조·유통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3. 의학과 예술의 만남
1915년 후쿠하라 아리노부의 셋째 아들인 후쿠하라 신조가 시세이도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지만, 미술에 조예가 깊어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빛의 도시’라는 사진집을 출시하기도 했다. 신조의 이런 성향 때문에 시세이도는 화장품의 의학적 전문성 외에도 예술적으로 많은 변화를 꾀하게 됐다. 대표적으로 시세이도의 첫 번째 향수인 ‘하나츠바키(동백꽃)’을 출시했는데, 이는 수입품이나 모조품밖에 존재하지 않던 당시에 일본의 독창적인 고유의 향수로 자리 잡았다. 또한, 기존의 심볼 마크인 독수리가 브랜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그는 이 시그니처 제품을 모티브로 전체 리뉴얼을 시작했다. 위 사진 속 마크는 물그릇에 떠 있는 동백꽃을 형상화한 것으로 신조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가 추구했던 화장품 회사는 의학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예술의 영역 그 중간에 자리한 것으로 예상한다. 이후 신조는 내부에 디자인부서를 신설해 학생과 젊은 예술가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화장품 본연의 가치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신조. 지금 같은 융복합 시대에 우리가 따라야 할 전략이 아닐까 싶다.
4. 계단식 태핑 포인트
시세이도는 일찍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동서양의 합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힘썼다. 대표적으로 1980년도에 프랑스 출신의 유명 아티스트인 세루즈 루탕스를 영입했다. 그는 시세이도의 이미지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로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고품질-고이미지-고서비스를 기본 정책으로 고급 마케팅을 이어갔다. 글로벌 진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로컬라이제이션이다.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는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에 대해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다. 이는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한국에서의 정착을 어려워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수출시장에서 활약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5. 매출 포트폴리오 다각화
시세이도의 매출 포트폴리오를 살펴보자. 럭셔리브랜드 47%, 중저가브랜드 27%, 퍼스널케어 12%, 향수 9%, 프로페셔널 5% 등으로 이뤄져 있고, 국가별 판매점유율은 2021년 기준 일본 26.7%, 중국 26.6%, 북미 11,3%, 유럽 11.3% 순이다. 우리는 결국 이 매출 지표를 통해 럭셔리브랜드 라인의 강화가 중요함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브랜드 파워에 투자해야 하며 M&A 상황도 지켜봐야 한다. 글로벌 화장품 그룹들의 움직임을 보면 시장 개척 및 매출 신장을 위해 브랜드를 인수하는 전략을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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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이도의 역사를 보면서 한 회사의 성장에 다양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K뷰티는 전통적·지역적 토대가 아닌 K컬처, 팝, 미디어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현재 OTT 시장 역시 뜨겁게 성장하고 있고, 이는 분명 K뷰티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누가 우리의 문화와 생활을 동경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는 남미시장 수요가 활발하지만, 미래에는 인도와 중동에서 활약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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