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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ho Yoo Jan 01. 2024

직업으로서의 정치

정치는 직업이다

때가 왔다 - 총선 4개월 전


“나 정치할까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데, 은근히 이른바 성공한 명망가쯤 된 사람들이 이제 하나 둘 생기는 중인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하나씩 생기고 있다. 그래, 이제 좀 백신을 놔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한 귀로 흘릴 사람들이야 있을 것이다.

정치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 책임, 그리고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중대한 역할을 포함한다. 정치가의 결정은 국가의 미래, 국민의 복지, 그리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치 참여는 심사숙고해야 할 중요한 결정이다.


첫째, 정치와 일반 조직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과 국회의 차이는 근본적이다. 기업은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지만, 국회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두 조직의 목표와 운영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둘째, 법원과 국회의 역할도 다르다. 법원은 법의 해석과 집행에 초점을 맞춘 반면, 국회는 법을 만드는 입법 기관이다. 이 두 기관은 권력 분립의 원칙 하에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와 국회의 차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구체적인 이슈에 집중하고, 그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반면, 국회는 전국적 차원의 정책을 다룬다. 이 두 기관의 활동 범위와 책임은 서로 다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정치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맡게 될 역할의 중대성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는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책임이다.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그 직업인이 가져야 하는 것은?


“정치는 직업이니?” 중학생 딸에게 질문했을 때, 딸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맙소사, 중학생조차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니!!  정치는 직업이다. 이 사실은 이미 100년 전, 막스 베버가 그의 강의에서 밝힌 바 있다. 그의 저작,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이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운전면허 없이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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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정치'의 정의를 설명한다. 그는 정치를 "갖가지 종류의 자주적인 지도 활동 모두"라고 정의하며, 이 개념을 광범위하게 설명한다. 정치는 단순히 국가 운영에 국한되지 않으며, 은행의 외환정책부터 가정 내에서의 결정까지 포함한다.


이는 정의는 정치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 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넓은 범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자질로  열정(Leidenschaft), 책임감(Verantwortungsgefuehl), 균형감각(Verantwortungsgefuehl)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에게 이러한 부분이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각 단어의 의미는 이러하다.



열정 (Leidenschaft)


독일어로 "Leidenschaft"라고 불리는 단어는 '고뇌하는 열정'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단순한 흥분과는 구별되는, 더 깊고 복잡한 감정 상태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붉은 악마 팬들이 보여주는 흥분은 '고뇌하는 열정'이라기보다는 순간적인 흥분에 가깝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정한 'Leidenschaft'는 목표를 향한 심오한 열정과 그 과정에서의 고뇌를 포함한다.

진정한 열정은 목표 달성을 향한 깊은 고민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이는 성취예측모형에서 강조하는 '목적지향적 역량군'의 핵심 요소이다. 이 개념은 단순히 열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전진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Leidenschaft'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목표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 그 과정에서의 내적 고민, 그리고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포함한다. 이러한 열정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열정을 가지고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서는 것이며, 그것은 깊은 사고와 책임감을 동반해야 한다. 'Leidenschaft'의 본질은 개인의 목표 달성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성찰과 책임감 있는 행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책임감(Verantwortungsgefuehl)

책임감, 독일어로 'Verantwortungsgefühl'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한 일의 의미와 그 무게를 '느끼는' 것에 관한 중요한 요소다. 이는 단순히 업무를 완수하는 것을 넘어,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각을 요구한다. 이러한 책임감은 성취예측모형에서 매우 중요한 '추상화' 역량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추상화 역량은 미래를 향한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자신의 재능을 최적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능력이나 지식을 넘어서, 자신이 행하는 일의 광범위한 맥락과 영향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책임감 있는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심사숙고하며, 그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추상화 역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조정하는 것이 바로 추상화의 핵심이다.    
     


균형감각(Augenmaß) 

균형감각, 독일어로 'Augenmaß'라고 불리는 이 개념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Augenmaß는 독일어로 '메쎈(Messen)'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우리말로는 '목측(目測)'에 해당한다. 이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측정하는 것을 넘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막스 베버는 Augenmaß 를 '거리감을 잃지 말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는 상황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반대로 너무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균형감각은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를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성취예측모형에서의 Augenmaß는 '도구적 역량군'에 해당하는 자질로 간주된다. 이는 사태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변수에 대한 타고난 분석적, 개념적 사고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량은 복잡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이다.


정치인의 무능: 사회적 책임과 법의 실패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능한 부분은 정치이다. 한국 사회의 역량을 소진하는 것을 넘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확대시키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인의 무능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권력 추구가 대의에 봉사하지 않고 개인적 자기도취로 치닫는 순간 죄악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정치 영역에서 존재하는 두 가지 큰 죄, 즉 객관성의 결여와 무책임은 허영심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중대 재해 처벌법의 실패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들은 제대로 된 법을 만들지 못했다. 재벌들은 이 법을 막기 위해 언론과 여론을 동원하며 강력하게 저항했으나, 정치인들은 이러한 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입법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이러한 정치의 무능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이 결여된 정치인들은 결국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법의 실패로 이어진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를 약화시키며,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킨다. 이에 따라, 정치판에는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갖춘 인재들이 필요함이 절실하다. 이러한 자질 없이는 정치 영역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물어봐야 하는 질문:  본인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해결해 본 사회적 갈등이 있는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가지고 하는 일이 정치다. 그럼 이 세 가지가 다 뭉쳐져서 어떤 성취가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본인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첫째, 비전을 세워서 전략을 수립해서 조직을 재 정비해 본 경험이 있는가 없는가? 엉터리로 세워진 조직의 리더로 들어가서 전체 비전을 새로 정의해서 ‘돌아가게’ 만들어 본 경험이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만 일해왔다면, 정치에 와선 안된다.


둘째,  모두가 안된다고만 하는데, 지치지 않고 매우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서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정치가들이 하는 일 대부분이 사람 설득이다. 특별히 옳은 일을 위해서 사람을 설득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인디 음악가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며 목소리 없는 사람을 대변해 본 적이 없다면 집으로 가라. 정치는 이런 거 하는 거다.


셋째,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하지만, 분명히 잘못된 일을 보고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냉정한 사랑’을 보여서 일을 처리해서, 우리 사회의 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 조직에서 절대 두고 볼 수 없는 부정한 일이나 조직을 아무리 내 사람들이지만 쳐내본 경험이 있느냐는 것이다.  균형감각(Augenmaß)을 갖추라는 말이 이런 것이다. 형님/아우 하며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지내는 것만 해봤다면 정치판에 절대 와선 안된다.


넷째,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 (지역감정, 빈부격차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득권과 싸워본 적이 있는가? 특히 한국정치에서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갈등이 있다 레드 콤플렉스, 지역감정이다. 이를 넘어가려면 정말 온몸이 찢겨나가야 할 수도 있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게 된다. 평생 반공단체 이야기만 들어왔다면 정치할 생각하지 마라. 현실에서는 4.3과 5.18 희생자들을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지대조세제나 지역화폐등의 정책을 연구해보지 않았다면 정치해선 안된다. 부자가 계속 부자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 한 사람이 한표 가지는 것이지 100원이 한표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납득이 안된다? 정치하지 마라.


자신의 삶에서 이 네 가지 경험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없다면 아예 시작도 말아야 한다. 있다면 이 과정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었는가’ 물어봐야 한다. 만약 그 성과가 탁월하지 못했다면 해선 안된다. 시민단체에 있어봤다, 대학에서 진보적인 연구를 했다 난리를 쳐도 그 성과가 제대로 입법되어 돌아가게 해 본 적이 없다면 하지 마라. 정치는 그 지루하고 짜증 나는 과정과 절차를 다 거쳐서 입법되고 실행이 되는 것까지 봐야 하는 게 정치다.


도로에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을 놓고 ‘너는 예전에 자전거는 잘 몰았으니까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을 거야’라고 하지 않는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생각한다면 왜 무면허자를 고속도로에 올려놓는 일을 하는가? 이를 생각해 보면, 다른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정치인으로서 성공하는 비율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바보 노무현은 그렇게 지역감정과 싸웠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왜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 전두환 군부 세력과 목숨 걸고 싸웠는지 기억해야 한다. 자기 인생에서 이러한 투쟁의 기간이 없고 회심(metanoia)의 시기가 없었다면 정치하지 마라. 쓰레기 정치인, 무면허 정치인은 충분히 많다.


신언서판을 기반으로 한 평가 → 이것이 어떤 성취를 예측할 수 있는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그래도 내가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집안에 속하는데 마지막은 정치를 해야 하지 않나?”라는 사람들이 있다. 사탄아 물러가라! 이 사람들 머릿속에는 신언서판(身言書判) 식의 인물평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게 대충 당나라와 신라시대에 때 만들어진 방식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게, ‘判’이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학벌이 좋으면 유능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이미 “학벌·자격증 등 ‘스펙’ 실제 업무 성과와는 관계없다”는 신문기사나 연구결과는 수도 없이 많다. 이미 1970년대 이후 이런 말하는 사람은 국제적으로 인사조직 연구분야에서 매장된 지 오래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이런 판단을 하는가? ‘환영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최소한 아래 기사는 보고 와라. “학벌·자격증 등 ‘스펙’ 실제 업무 성과와는 관계없다”



그래도 정치를 해야 하겠다면?

하시라, 선거판에 뛰어드시라. 그러나 본인이 ‘제정신으로 버티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면서 하시라. 이 질문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얼굴 들이밀고 남들 보기 올바른 척하는 소리만으로 버티려고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남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스스로를 속이기는 힘들 것이다. 아니, 스스로까지도 속여버리면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다. 거울을 보면 세상에 이보다 추한 괴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자가 그대를 바라보리라.



사족

이제 위의 글에서 정치를 이런 단어로 바꿔봅시다. 창업이라든가, 사업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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