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 그리고 갠지스강
인도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오고 싶어 하는 꿈의 도시인 바라나시. TV 속에서 사람들이 갠지스강에서 목욕하고 빨래도 하는 그곳.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리얼 인도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라나시 공항까지는 깨끗하고 좋은 느낌이었다. 인도의 공항은 한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된 것 이외는 아주 괜찮았다. 공항을 나와 환전도 하고, 운 좋게 택시도 잘 타서 아무 탈없이 이동하였다. 숙소로 오는 도로는 나름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이상할 게 없었다.
큰 도로를 건너 시내를 들어온 순간, 숙소가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더 이상 도로가 아니었다.
자동차, 오토릭샤(인도의 대중교통),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 그리고 소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이동수단들이 한데 섞여 각자의 갈길을 가고 있었다. 무지하게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말이다.
신호등과 차선은 그저 사치일 뿐... 오히려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그곳에서 아무런 사고도 없이 각자의 목적지를 찾아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 '무질서 속의 질서'인 듯했다. 횡단보도가 없지만 사람... 아니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차든, 뭐 던 간에 길을 건너갔고, 이정표도 없지만 다들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었다.
신호등이 없기에 모든 차, 오토바이, 자전거들은 자신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동남아도 여러 번 다녀왔던 나지만 이렇게 시끄러운.. 계속되는 시끄러움은 처음이었다.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좁은 골목을 지나 숙소에 도착하였지만 경적소리의 저주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라나시에 있는 숙소는 엄청 비싸면서 안 좋거나, 엄청 싸면서 더 안 좋거나 이기에 적당한 가격선에서 적당히 안 좋은 곳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 헬조선, 헬조선 그러지만 진정한 헬을 경험해보지 않고서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너무나도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곳은 헬 중에서도 헬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바라나시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너무나도 지친 상태였기에, 쉴세 없이 둘려대는 경적소리를 뒤로하고 잠을 청했다. 비록 해가 아직 중천이었지만 말이다.
바라나시에서는 일주일을 머무르기로 했는데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가트를 따라 거닐고 하루 종일 갠지스강을 바라보다 사색에 잠기는 게 일정이라면 일정이었다. 처음부터 그걸 바라고 온 것이기도 했다.
시끄러운 고돌리아를 지나 사람과 소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면 갠지스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 가트가 나온다. "와우 이것이 바로 TV에서만 보던 갠지스강이구나"
고돌리아는 정말 헬 그 자체인데 가트 쪽으로 오면 평화 그 자체이다. 거리가 많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었다.
사람들이 목욕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떤 이들은 소 목욕을 시키고... 이곳이 바로 갠지스 강이구나 싶었다.
강을 따라 쭉 펼쳐진 가트와 다양한 모양의 건축물들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치 인도 사진에 나를 합성해놓은 것만 같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다가 사진을 몇 장 더 찍을 뿐이었다.
가트는 갠지스강을 따라 이어져 있는 계단처럼 생긴 장소이다. 각 가트는 왕의 이름 또는 그 구역의 특징에 따라 이름이 정해져 있었고, 바라나시는 이러한 가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길고 긴 가트를 매일매일 걸었다. 이른 새벽에도,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도, 해가 화창한 낮에도,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에도 말이다. 가트는 항상 다른 면을 보여주었고, 그 안에는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도인들의 삶이 담겨있었다.
가트를 오가다 보면 참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
빨래를 하는 이들, 탕탕탕 배 고치는 아저씨들, 화려한 장신구로 멋을 낸 도사님(?)들, 알록달록 구슬을 파는 어린아이들, 강가를 바라보며 데이트하는 연인들, 나와 같은 여행객들, 기념품 또는 짜이를 파는 상인들, 깨어나긴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잠만 자는 개들, 응가를 한가득 배출하고는 모른 척 쉬고 있는 소들...
가트에는 참 많은 이들이 있다.
가트를 거닐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분들이 모여있다. 가족들인가... 궁금해서 기웃거리고 있으니 한 아이가 말을 건넨다. 이건 결혼식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부모님으로 보이시는 분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온다.
" 당신을 초대할 테니 구경하고 가세요" 하며 의자까지 내어준다.
초면에 부끄럽긴 했지만 별다른 일정이 없던 나는 앉아서 인도의 결혼식을 구경하기로 한다. 단, 신발은 꼭 벗고 구경하라고 하신다. 그 아이는 결혼식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해주더니, 마지막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소개해 주었다.
새벽 일찍 갠지스강에서의 일출 보트를 타러 부지런히 나왔다. 항상 시끄러운 바라나시였건만 새벽 아침의 길은 한산하였다. 길가에 잠든 몇몇 이들과 소들뿐...
이른 새벽인데도 가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부산했다. 다들 갠지스강에 목욕하러 온 이들이었다. 단체로 온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는 걸 보니 멀리서도 찾아오는 듯했다. 이들은 목욕을 마치고는 가트 바로 옆 사원에 들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인도인들이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그저 몸을 씻는 이유만이 아니었다. 인도인들에게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존재이며, 그 물로 자신의 몸을 씻어냄으로써 자신의 죄도 함께 씻어내려간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갠지스강 물로 몸을 씻고 작은 물병에 물을 담아 갔다. 그들은 정성스레 담은 갠지스강 물을 사원에 받치기도 하였다. 바닥에 떨어진 갠지스강물 한 방울도 소중하게 여기는 그들이었다.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죽어서 갠지스강에 뿌려지는 것은 곧 어머니 품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라 한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화장의 도시이자 죽음의 도시였다.
바라나시에 오는 것은 인도인들의 살아생전 꿈이기도 하며, 많은 이들이 죽어서 또는 죽음을 준비하러 바라나시로 온다고 한다.
바라나시에는 크고 작은 화장터가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화장하는 곳의 위치와 크기에 상관없이 동일한 가격이라 한다. 다만 죽은 이의 명예와 부에 따라 그를 둘러싼 화려한 천들, 사용되는 땔감 나무 등으로 차이를 둔다고 하였다. 마른나무로 태우든 젖은 나무로 태우든 모든 화장은 거의 3~4시간이면 다 타버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화장에 따른 환경문제로 전기화장터가 도입되었으나, 돈이 없는 이들이 주로 이용하고, 돈이 많은 이들은 여전히 나무로 태우는 화장방법을 선호한다고 하였다.
화장터 앞에는 작은 사원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결코 꺼지지 않는 불씨가 있는데, 사람들이 돌아가며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킨다고 한다. 그 불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듯했으며, 인도인들은 그 불씨를 사용하여 화장을 했다. 불씨는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이가 가서 사 오는 것인데, 정해져 있는 가격 없이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만큼 지불한다고 하였다. 자신의 능력에 맞춰 지불하되, 자신의 가족 그리고 죽은 이를 위해 절대 거짓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는데 힌두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다. 단 3가지의 경우에는 수장을 하는데, 14세 미만 아이, 임신한 여인, 뱀에 물려 죽은 이일 때이다. 이런 경우에는 큰 돌을 매달아 갠지스강에 떠내 보낸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강물에 기포들이 생성되어 종종 물 위로 떠오르는 시신이 발견되곤 한다는데.....
자욱한 연기와 쾌쾌한 냄새 때문에 평소 같았으면 발길을 돌렸을 화장터이지만, 갠지스강 그리고 바라나시의 의미를 알고 나니 다르게 느껴졌다.
여전히 화장 중인 나무들 사이로 죽은 이의 모습이 살포시 보였다. 머리도 보이고, 팔도 보이고, 다리도 보인다. 사람이 화장되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보통 화려한 천으로 둘러쌓아서 화장을 하는데, 좁은 공간에서 처리하다 보니 천이 벗겨진 모양이다. 화장터에서 일하는 사내가 나무 작대기로 시체를 구겨 넣는다.
그 옆에서는 한 청년이 높게 쌓인 재를 열심히 실어 나른다. 누가 봐도 작은 빗자루로 청소를 하며, 새로운 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여러 명의 사내들이 양손 가득 장작 대기를 들고 내려오더니 한편에 쌓는다.
곧 가트 위에서 번쩍번쩍하는 천으로 둘러 쌓인 죽은 이가 내려온다. 강가에 누여놓고는 강물에 다섯 번 정도 적신다. 강물을 손으로 받아 죽은 이의 머리에 뿌리기도 한다.
잠시 뒤에 흰 옷을 입은 남자분이 내려온다. 아마도 장례를 치르는 아들인 듯하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천으로 둘러싼 죽은 이를 장작들과 함께 쌓는다.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주변을 에워싸고는 대화를 나눈다.
때가 된 것인지 흰 옷을 입은 남자분이 사원에 올라가 불씨가 붙은 볏짚을 들고 내려온다. 장작더미를 다섯 번 돌고는 불을 지핀다. 화장의 시작이다.
매일 거닐던 가트인데 그 의미를 알고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화장터를 치우고 장작을 준비하는 이들, 화려한 천으로 둘러싼 이를 나르는 이들, 하얀 옷을 입고 머리를 미는 사람, 하얀 옷을 입고 화장터 옆에서 목욕을 하는 이들...
그렇게 바라나시에는 죽은 이, 죽은 이를 보내는 이들, 죽은 이를 함께 보내주는 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나의 인도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을 뽑으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바라나시이다. 분명 처음 인상은 별로 였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서 만난 이들 때문이다.
스위츠 나눠 먹다가 너무 달아서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고 재밌어한 인도 옷가게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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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과 바라나시의 의미에 대해 알려준 최고의 가이드 인도 철수씨
한국인들의 사랑방 바바라씨에서 만나 다양한 정보를 나눠준 여행객들
루프탑에서 양념치킨(made by 인도철수)을 먹으며 여행 그리고 인생에 대해 논하던 이들
인도여행이 다섯 번째라는 이, 나처럼 바라나시가 인도여행의 첫 시작이라는 이, 마지막 도시라서 이제 곧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는 이들, 기나긴 배낭여행 중 인도에 잠시 들렀다는 이, 인도에 취업하여 일하는 도중 며칠 시간을 내어 바라나시에 왔다는 이들... 정말 다양한 이유로 그곳에 있었다.
바라나시는 그저 관광하는 도시가 아니라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준 도시였다. 여행을 와서 단순히 그 도시의 외관이 아닌 그 속에 새겨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다니.... 그것도 모든 이들이 한 번은 꼭 거치게 되는 죽음이니 말이다.
* 2019년 1월 28일부터 2019년 2월 16일까지 인도의 바라나시, 자이푸르, 조드푸르, 델리 4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느낀 나의 생각들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