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와 내가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남편 차를 타고 부모님 댁으로 가는 날
태어난 지 20일 된 아이가 카시트를 타고 1시간 거리를 간다는 게 가능할까?
10분 거리도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1시간 정도면 괜찮다는 사람도 있고
역시나 육아는 정답이 없어 사람마다 다 다른 의견이라 그걸 다 들을 수도 없고, 찾아볼수록 머리만 복잡해졌어
내 아이 성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지
전날 아기에게 설명해 줬어 ‘아가야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사랑해서 바로 집으로 안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거야’, ‘아빠차를 탈 거야’ 등 아기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테니 상황을 이야기해 줬어
조리원 퇴소날 옆 건물 소아과에 가 예방접종을 하고 카시트에 아이를 태웠어
차 안에서 계속 자길 바랐던 내 마음과 달리 아기는 울었다가 잤다가를 반복했어
내가 엄마구나..
너무 울어 고속도로를 나가 주차할 곳을 찾았어 차 안에서 모유를 줬어
모유를 차 안에서 주는 일이 생기다니, 이때 얼마나 땀이 나던지 주변을 살필 경향도 없이 아기에게만 집중했어
배고픔은 그 어떤 것도 이길 수가 없었어 작은 이 아기도 본성에 충실하다는 것
나도 배고프면 짜증이 나는데 말 못 하는 아이는 울음으로 자기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신기했어
1시간 거리면 도착할 곳이 차 막혀 2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어
너무 멀리 이동하는 건가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현실로 다가오니 무서웠어
남편도 신경 쓰이는지 운전을 조심히 하고 우리는 말수가 줄어들었어
이날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평소 차 안에서 남편과 노래도 부르고 신나게 수다도 떨고 했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
이때 처음 생각했지 아이를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내가 막상 아이와 함께하니 잘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사라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모순’이 절실히 와닿았어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려고 했으나 엄마의 감기로 시댁에서 2박 3일을 지내기로 했어
아무리 잘해주셔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시댁
어머님은 아기를 너무 좋아하시고 엄청 이뻐하시는데 난 2박 3일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 빨리 친정집에 가고 싶었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자연스레 흘려보내려고 애썼지만 마음 한구석은 내내 불편했어
이때부터 1단계 예민이 시작되었어
3일 후 친정집으로 왔어
처음 아기를 본 가족들은 귀엽고, 이뻐서 어쩔 줄 몰라했어
온 가족이 작은 아기를 어떻게 할 줄 몰라 울면 당황하고, 목욕도 조심히 하고,
밤에 1시간마다 깨는 아기를 보면서 신경이 날카롭게 서 짜증 내는 말을 많이 했어
새벽에 깬 아이에게 우유를 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 잠을 못 자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육아 책을 본 것들이 머릿속에서 싹 지워지면서 아이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했어
2단계 짜증이 시작됐지
그다음 주에는 조금 나아지나 싶다가도 2시간마다 깨는 아기를 돌보는 것 쉽지 않았어
배고파서 우는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지 판단이 서투른 엄마라 가족들에게 날카롭게 이야기했어
에어컨 온도 올리지 말기, 아기 안아줄 때는 소독제로 손 닦기, 울어도 너무 안아주지 않기 등 나만의 법칙을 세웠는데 다 무너지는 것 같아 속상했어
3단계 우울한 마음이 밀어올라와 남편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어
남편의 한마디
‘힘내라는 말 밖에’ 그다음말은 ‘내가 더 잘해줄게요’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는 요즘 연락할수록 애틋해지고 있어
일요일 오후에 남편 갈 때마다 배웅하고 안아주고 하는 이 시간이 참 좋아
아기가 태어난 지 30일이 넘은 어느 날,
우는 아기에게 우유를 주려고 했는데 빨리 안주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그런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면서 난 또 울었어 ‘가족들한테 짜증만 내니깐 나 그냥 내 집으로 갈래’ 이러면서 펑펑 울었지
엄마가 그러더라고
‘엄마도 너 키울 때 많이 울었어 그렇게 키우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하루하루 클 거야’
이렇게 말해주시는데 아차! 싶었어 나도 이렇게 컸구나, 엄마, 아빠가 나를 그만큼 힘들게 키웠구나…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키웠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어 4단계 속상한 감정
유별나게 많이 울고, 엄마아빠 품에서만 잘자던 나.. 우유도 잘 안 먹던 나…
그에 비해 내 아기는 정말 우유도 잘 먹고 잘 자는 거라고
육아만큼은 욕심을 안 부리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 책을 보며 기록해 뒀는데,
더 잘 자 주길.. 덜 우길.. 이렇게 더와 덜.. 이 단어에 계속 기대를 꾸역꾸역 넣고 있었어
지금은 엄마로서 욕심을 부리고 있는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인 내 욕심이라는 걸 구분해
아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더 집중하려고 귀기울기 시작했어
매주 주말에 시댁에 가
엄마아빠가 아이를 보고 좋아하는 만큼,
어머님 아버님도 궁금하시겠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으시겠지
매주 오라고 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이 싫었어 머리로는 알지 아이가 보고 싶을 테니깐
그러나 아기용품을 다 챙기고, 잠자는 곳도 불편하고, 어머님만의 육아경험으로 아이를 자주 안아주시고, 목욕하는 방법 등 모든 게 싫었어
내 아이인데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키우고 싶은데,
어머님은 어머님의 방식대로 하시는 것 이걸 따르는 게 싫어 그냥 나 몰라라 했어
밤에 푹 자라고 새벽 수유를 어머님이 해주시지만
난 방에서 그때마다 눈 떠 아이에게 뭐라고 하시는지 귀 기울였고,
목욕할 때는 화장실 밖에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고
밥 먹고 나면 반찬 넣고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는 남편이 해주고
이런 주말 일상이 답답했어
이유는 단 하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해서
내 아기니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도 내 뜻대로 안 되는데 그것조차 못하는 게 숨이 막혔어
그래서 저녁에 남편이랑 산책하고
낮에는 친구랑 전화하며 혼자 카페도 가고
여전히 시댁에서 아이와 함께 자고 오는 것은 불편해
근데 불편한 감정 계속 갖고 있으니 더 더 마음만 쓰릴뿐
미션 뽀개기라고 생각하고 5주 중에 4주를 다녀왔으니 1주만 더 뽀개면 나한테 선물하나 줘야지
가족들이 함께해 주는 육아라 낮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뭐라도 하려고 해
나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낮잠보다는 움직이고, 계속 생각해
저녁에 종종 오늘이랑 네이버 웨일로 이야기도 나누고, 다이어리 쓰고, 책을 보면 문뜩 엄마라는 걸 까먹을 때가 있어
오늘이랑 공모전을 준비하며 어떤 강의를 만들까 심도 있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면 이유 없이 좋아
네이버 웨일을 끄고 아기를 보는 순간 언제 수유를 했지? 기저귀는 언제 갈았지?
시계를 보며 내가 엄마인 것 다시 인식해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동요를 불러주고 눈 맞춤을 하는 시간만큼은 핸드폰을 안 보고 온전히 집중해
아기의 까만 눈동자에 내가 비칠대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져
지금껏 알던 행복과는 결이 달라
1~4단계까지 요동치는 감정들을 비우고 나니
5단계 행복
가족들이 있어 친정집에서 같이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것
온 가족이 매일 저녁을 같이 먹는다는 것
내 방식대로 육아의 첫걸음을 시작해 한결 가벼워졌어
내가 여기에 처음 적은 시댁 이야기의 일부분처럼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다 누구나 품고 산다는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그렇게 한 달간 친정과 시댁사이에서 인생은 모순이야! 내 행동도 모순이고
이걸 깨우친 내 삶이 고마워
덕분에 나로서 오늘도 살아가
2023.08.24 이제 육아 걸음마를 시작한 내일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