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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혁 Dec 18. 2017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왜 항상 늦게 올까?

버스를 기다릴 때면, 다른 버스가 2-3차례 지나갈 동안  버스는 오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만 유독 오지 않을까. 내가 운이 없는 걸까.  매번 이럴까.라는 생각을 종종했다.

그러다 정말 나만 그런 걸까? 과연 그럴까? 라며 기록을 해봤다. 그렇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늦게 오는 경우가 분명 있었지만, 많은 경우에 제시간에 맞춰  왔다. 오히려 오래 기다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그때 알게 됐다. 기억은 가장 강렬했던 경험만 머릿속에 새기고, 그것이 모든 비슷한 경험을 덧씌워버린다는 .

나도 모르게 ' 버스는 매번 늦는 버스야'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고, 버스가 늦으면  편견을 보다 견고히 만들고, 버스가 제때 온다면 해당 기억은 잊어버린다는 .

이렇게 버스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우리는 강렬한 경험만을 머릿속에 새긴다. 그리고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 대상의 주요 특징을 뽑은 , 대상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일반화해 하나의 범주를 만들어 일반화시킨다.

' 버스는 매번 늦어' (정확히는 ' 번호를 달고 있는 수많은 버스 차량은 모두 늦게 운행한다')처럼, 지하철에서   개저씨들에게 당하다 보면, '40-50 남성은 모두 개저씨'라는 편견에 사로잡힌다. 카페에서 진상짓을 하는 부모를 보면,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특히 여성) 모두 맘충'이라는 편견을 가지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뉴스 보도를 통해서 이런 편견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공무원의 부정부패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되면, '모든 공무원들은 썩었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  장성  갑질 사건으로 마치 ' 간부는 모두 쓰레기'라는 편견을 가지게  수도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선 처음  차례 받았던 강렬한 경험보다  강렬한 반대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너무나도 친절하고 선행을 베푸는 40-50 남성을 만난다면, ' 모두가 개저씨는 아니구나'라고 느낄  있겠다.

물론 반대의 강렬한 경험은 여러 차례 필요하다. 그럼 '모두는 아니구나'에서 '이상한 사람도 있고, 괜찮은 사람도 있구나' 바뀌고,  나아가서 '사람마다 다르구나' 발전할  있다.

반대의 강렬한 경험이 없더라도 통계학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편견을 깨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김여사' 대표되는 '여성운전자는 운전을  못한다'라는 편견은 성별 자동차사고 관련 통계만 보더라도 쉽게 깨진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세계관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를 접하게 되면, 이를 이해하기 위해 범주화를 시킨다.  새로운 존재를 기존에 만들어 놓았던 범주에 넣는 경우도 있고, 또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개저씨, 맘충, 김치녀, 한남 등의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해당 멸칭의 특징을 가진 사람을 나면 이런 용어로 불러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범주 내에 들어가 있는 존재라도 제각각은 서로 너무나도 상이한 존재들이다. 이해하기 쉬우려고 범주화하는 것일 , 엄밀히 말해서는 같은 그룹으로 묶기 매우 어려운 존재들이다.

지하철에서 개진상을 떠는 중년 남성을 만났다 하더라도, '에효 개저씨들이란'이라며 개저씨들에 대한 편견을 견고하게 하기보단, 4-50 남성 중에는 이상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항상 늦는  아니다. 늦게 오는 경우도 있고, 제때 오는 경우도 있고, 빨리  때도 있다.

물론 개저씨는 있다. 늦게 오는 버스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요즘 들어 버스가  늦게 오는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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