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오늘은 금요일이다.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 속 작은 부품으로, 행여 남들에게 뒤쳐져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조마조마하고, 밉보이지 않으려 허둥지둥 살다 보니 어느새 주말의 문턱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건네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과 외출복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대로 침대로 풀썩- 스러져버린다. 고요한 방 안, 옆자리에 누운 내 강아지가 헥헥 거리며 곁을 지킨다. 손을 뻗어 녀석을 다독인다. 전쟁 같은 하루가 눈을 감아도 잔상으로 남고, 회사의 웅성거림이 이명으로 들려온다. 며칠 째 사무실 의자에 구겨져 있던 몸은 뻐근하다못해 저려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오래 누워있을 수 없다. 집에 돌아왔지만 할일이 많다. 오전, 오후 내내 할일을 다 지워냈는데 여전히 할일이 많다. 계약직으로 자주 직장을 옮겨다닌 내게 이곳은 일곱번째 직장이다. 올해 재계약이 되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들에겐 일상적인 용어와 은어들이 내게는 마치 학술용어와 같은 것이며, 다들 바쁘기에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새로 온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는 것 같던데, 몇번이고 되물어보던 내 모습이 눈을 감아도 떠오른다. 메모를 해도 쏟아지는 많은 정보들 중 꼭 몇 개를 놓쳐 꼼꼼하지 못한 업무 처리 방식이 밟힌다. 친절하게 대한 마음이 냉소적인 반응으로 되받아쳐졌을 때의 순간들이 목에 걸린 듯 울컥 울컥 생각난다. 사람들과 대인 관계가 서툴면 일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 마저도 삐그덕거리는 내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하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밀려온다. 유투브 속 누구들처럼 유능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내 삶이 버겁다.
이제 진짜 일어나야 된다. 무능하다고 찍히지 않고, 내 밥그릇이라도 제대로 챙기려면, 이제 일어나서 업무 관련 책자라도 몇장 뒤적여 봐야된다. 침대 위에서 놀아달라고 낑낑대던 강아지가 단념했는지 팔에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본다. 그러고보니 이번주가 너무 바빠서 강아지 산책도 제대로 못시켰다. 강아지를 데려온 건 나인데 칠 십을 바라보는 아빠에게 내내 부탁해오고 있다.
'미안해, 미안해..'
녀석을 토닥이며, 오늘 밤 산책은 꼭 시켜야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미 눈꺼풀은 무겁고 온 몸이 지하 세계로 영원히 가라앉아 잠기는 기분이다. 남자친구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사회성의 한도는 이미 초과되어버렸다구. 도저히 그와 통화하며 대화를 이어나갈 기운이 없다. 다 지쳤다.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텐데, 예정된 비극이 나를 더욱 괴롭게 한다. 건강 만큼은 자신있었는데, 언제부턴가 회사 생각만 하면 머리가 으깨질 것 같은 두통과 소화 장애를 겪고 있다. 작년에는 위장꼬임이 심해 응급실에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는 그 정도로 응급차는 뜨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인생을 고통으로 여기며, 하루 하루를 지워나가며 살아가는 게 맞나, 현타가 온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하지만, 마치 채권자에게 내 인생을 담보 잡혀 빚 갚듯 이렇게 지워나가는 게 맞나, 서글프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진심으로 크게 웃고,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벅찼던 적이 언제였지? 학부시절, 영화와 문학을 좋아해서 밤을 새어가며 유명 영화제 수상작을 몰아보고, 좋아하는 책을 머리맡에 쌓아두고 한 장 한 장 아껴 읽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 벅차오르던 마음이 내게 여전히 있기는 한걸까. 도무지 어떠한 동기도 생기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무감각하게 느껴진다.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뻥 뚫린 구멍을 안고 사는 기분이다.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이 틀림없다. 방향을 잃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지금에서 벗어나 나를 살릴 어떤 마음이 필요하다. 나를 살릴 마음을 찾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반짝이는 것에 가려져 희미해져가고, 무채색 잊혀져가는 나의 존재를 지우지 않기 위해서. 한 때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익명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보기도 하고, 점쟁이를 찾아가 내 미래 좀 봐달라고 터무니없이 굴어본 적도 있다. 정붙일 곳 없는 회사에서 동경하던 선배를 내 맘대로 인생 멘토로 삼고 멋대로 기대어 나 혼자 상처받는 일도 있다. 결론은 하나였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 없고, 이건 나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이다.
길을 잃고 같은 굴레를 반복하는, 이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복권 당첨이, 누군가에게는 자산가 부모가 구원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내게는 ‘내 글’ 이 구원이다. 괴로울 때면 두서 없이, 때론 자기 연민에 빠져 그 마음을 적어왔었다. 행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치하고, 촌스러워서, 흑역사라서, 내 기대치만큼의 내가 아니어서, 꼴뵈기 싫어서 여태 여러 마음들을 적어두었지만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면했던 나를 이제 다시 들여다보려한다. 왠지 그럴 용기가 생겼다. 서른 세 살이 되니 과거의 어떤 내 모습이었더라도 자기미화를 걷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배짱이 생겼다. 그때가 예쁜 시절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간다. 글쓰기가 완벽하지 않아도, 내멋대로 솔직하게 적어보자는 뻔뻔함이 생겼다. 무엇보다 간절하게 행복하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그 벅차오르는 마음을 다시 느끼고 싶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덮어놓았던 마음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찾아야겠다.
물론, 월요일이 되면 또 회사를 위한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사무실 의자와 혼연 일치한 하루를 보낸 까닭에 이 다짐이 좌절될지도 모르겠다. 이번만큼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내게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