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다.
내 방 창문으로 3월의 따스한 햇빛이 부서지며 들어온다. 진짜 겨울이 갔나보다. 공기가 부드럽다. 이불 안도 따땃하니, 여기가 천국이 아니라면 어디란 말인가. 포근한 이불 속 온기를 더 깊이 파고든다.
으아아!!
냅다 기지개를 켜다가 새우처럼 오그라든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이 기분, 진심으로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내 기척을 느꼈는지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강아지 망치가 슬금 슬금 다가온다. 눈을 맞추곤 엉덩이를 살랑이더니 컹컹 짖는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가 넘었다. 밥 챙겨주고, 후딱 똥오줌 누러 가자는 신호다. 주말에는 망치의 모든 것을 내가 전담한다. 평일에 함께하는 시간이 적으니, 주말이라도 양질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다. 강아지와의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잠깐만. 망치를 번쩍 안아서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힘껏 끌어안는다.
10분만 더 있다가 나가자.
작은 몸의 소중한 숨소리, 꿉꿉한 냄새. 따뜻한 몸. 나의 천사,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의 원천. 어제 밤은 지옥이었는데 오늘은 한결 낫다. 어제 밤 그렇게 지옥같던 마음에서 나를 건질 행복을 찾았다. 지금 이 시간, 따뜻한 침대와 김망치. 제일 소중하고, 행복하다.
4년 전 망치를 입양했다.
그 녀석은 시골에 유기되었다. 유기견 어플에서 처음 그 애의 프로필을 보았었다. 좋아요, 를 눌러두고도 망설이다 반년이 지났다. 회사 일에 치이며 내게 6개월은 금방 갔는데 오랜만에 다시 어플을 열었을 때 녀석은 두 번이나 입양과 파양을 반복했다고 추가글이 올라와있었다. 입양자가 데려갔는데 원래 있던 강아지와 합사가 도저히 어려우며, 짖음이 너무 심해 다시 구조자에게 데려다 주었다고 했다. 그 애의 옆으로 눈을 흘기는 못생긴 사진이 자꾸만 떠올랐다. 회사에서 몇번이고 어플을 열어서 그 애의 사진과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점심시간에 양치를 하면서도, 퇴근하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잠들기 전에도.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는데 특히 강아지를 간절히 키우고 싶었다. 2001년, 초등학교 4학년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자기 집 개가 새끼를 여러마리 낳았다고 자랑했다. 와서 한번 보라고 했다. 초대받던 그 순간부터 이미 한가지 생각 뿐이었다. 앞뒤 고려 없이 냉큼 그 집에서 한마리를 받아왔다. 작은 내 품에 안긴 더 작은 새끼 강아지는 따뜻했다. 낑낑거리는 새끼 강아지를 소중히 끌어안았다. 강아지를 받으러 가기 전 우리집 돼지 저금통을 깨서 돈도 챙겼다. 동네 동물병원에 꼬깃꼬깃한 천 원 지폐 몇장을 내밀며 필요한 물건들을 대충 샀었다. 품에는 따뜻한 새끼 강아지를, 한 손에는 강아지 용품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감격에 겨워하며 집으로 향했다. 내 옆엔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아군으로 함께했다. 동생은 강아지가 귀엽다고 좋아하면서도, 후환이 두려운 눈치였다. 하지만 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이었다. 아빠는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강아지가 싫다기 보단, 어린 남매 둘을 챙기기도 벅찬데 새끼 강아지까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엄마의 일이 더 늘어날 뿐이라며 절대 물러서지 않으셨다. 당시 우리집은 아빠 혼자 외벌이였기에 경제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 역시 악을 쓰며, 부득 부득 우겼다. 그러고보면 난 지금도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와 성격이 꼭 같아 고집이 대단한데 그 때문에 우리 부녀는 매우 긴 싸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할 시간이 많을 것이다. 아무튼 아빠, 엄마에게 대책 없다며 흠씬 혼만 난 나는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선 강아지와 집밖으로 쫒겨났다. 내 동생은 눈치가 빨라 싸한 집안 분위기를 감지하곤 모르쇠 자기 방으로 쏘옥 들어갔다. 혁명은 채 하루도 가지 못했고, 결국 다시 강아지를 돌려주러가야했다. 하루종일 노고가 많던 새끼 강아지는 내 품에서 따뜻한 오줌을 쌌다. 옷이 다 젖었지만 그러던 말던 반나절 동안이나마 정든 강아지와 헤어질 생각에 나는 동네가 떠나가도록 엉엉 울며 친구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갖출 때까지 이 일은 잠시 보류하기로.
다시, 망치로 돌아와서. 2021년 나는 서른 한살이었고, 큰 돈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급여도 들어오고 작은 적금도 들고 있었다. 또한 나는 퇴근시간이 일정하고 비교적 이른 편이라 강아지 산책도 무리 없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강아지 한 마리의 삶은 내 힘으로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못다한 꿈에 기웃거리자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것 같다. 아무튼 결심이 서고는 행동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2021년 1월 10일, KTX를 타고 충남 강경역으로 혼자 내려갔다. 이름도 생소하거니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역에서 내리자 전날 내린 눈으로 낯선 세상이 새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곳에서 김망치를 처음 만났다. 미리 나와있던 그 애는 코를 눈에 박고 정신없이 냄새를 맡으며 온 세상이 신기한 듯 헤집고 다녔다. 정신없이 갈지자로 돌아다니느라 내가 다가가는 줄도 몰랐다.
안녕, 너의 새로운 보호자야.
그 애는 관심도 없었다. 구조자분이 민망해하며 말하였다.
출퇴근하느라 발코니에만 가둬뒀더니, 밖에 나온 게 너무 좋은가봐요.
그 애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며 초등학생 때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가던 그날이 문득 생각났다.
김망치는 우리집에 왔을 때 사상충 감염이 꽤 진행된 상황이었다. 반년은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했다. 개는 보험도 되지 않아 비용이 적지는 않았다. 새끼를 두번이나 출산한 경험이 있던 그 애는 우리집에서 생리도 했다. 그리고 생리때만 되면 뒷산이고 앞 공원이고 뛰어다니며 숫개들을 찾아나섰다. 집에서는 내내 우울해했다. 나는 고민 끝에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었다. 다행히 그 애는 중성화 이후 더 편해보였다. 건강 검진 결과 비장, 심장, 방광이 안좋다는 소견을 들었고 요즘 그 애는 나도 안먹는 유산균과 심장 강화 츄르를 챙겨 먹고 있다. 개를 입양한 뒤 나는 내가 그 애에게 베풀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집도, 밥도, 병원 치료도.
하지만 결국은 내가 더 많이 받았다. 김망치를 입양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지 못했을 감정들이 있다. 누군가의 온전한 세상이 된다는 기분, 사랑을 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경험인지. 냉혹한 세상살이를 버티게 하는, 그 애를 아끼는 소중한 마음. 모든 게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다.
10분만 잔다는 게 삼십분을 훌쩍 넘겼다. 둘다 밥을 챙겨먹고, 산책 가방을 챙겨 동네 마실을 나가본다. 레트로한 우리 동네를 비추는 따뜻한 봄 햇살, 그리고 봄 내음. 큰길 좌우로 반찬가게에는 봄나물 반찬들이 진열되어있다. 김망치도 기분이 좋은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발걸음이 경쾌하다. 주말 이른 오후, 김망치와 나서는 이 산책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상 풍경 중 하나이다.
흥얼 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평일엔 이 시간에 사무실에 갇혀 있지 않은가. 마침내 겨울이 끝나고 온화한 공기가 몸을 감싸는 것이 너무나 좋다. 햇살을 잔뜩 받으면 행복한 기운이 솟구친다. 나는 겨울을 혐오한다. 수족냉증에 겨울의 한기까지 더해지면 산 자의 몸이 아니다. 창문을 아무리 닫아도 시린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정말 싫다. 하지만 눈 내리는 것은 좋아한다. 김망치가 눈이 내리면 아이처럼 기뻐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서 우리의 최애 장소인 백범 광장으로 향한다. 감히 이야기해보는, 서울의 (미니어쳐) 센트럴파크. 동편으로는 남산타워가 보이고 서편으로는 지금은 영업을 종료하여 몹시 아쉬운 힐튼 호텔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봄, 여름에는 완벽한 피크닉 장소이며 가을에는 노을 명소이고, 겨울에는 눈이라도 쌓이면 삿포로의 축소판이 된다. 여긴 우리의 추억의 장소이다. 햇빛 쬐러 나온 고양이 마냥 이시영 선생 동상 아래에 우리 둘은 엉덩이를 붙이고 다정히도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조금 기다리다보면 동지들이 나타난다. 자다가 급하게 겉옷만 걸쳐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잔뜩 신난 강아지에게 이끌려서 광장으로 입장하는 견주들이 보인다. 저 작은 생명체들의 등쌀에 못이겨 주말 아침에도 고단한 몸을 일으켰을 생각을 하니 묘한 동질감에 웃기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싶다. 그렇게 알게 된 동네 개 친구들이 만두, 호두, 라이언, 날라, 리오, 킹콩, 잭팟 등등.. 난 사람친구보다 개친구가 더 많다.
가급적 집 앞 산책보다 멀리 여기 광장까지 나오는 이유도 김망치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견맥관리도 하고, 힘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본 개들은 공만 있으면 금방 친해진다. 주인들은 멀뚱히 침묵하며 뛰노는 개들을 지켜본다. 개짖는 소리가 나면 그건 김망치이다. 김망치를 파양시켰던 짖음 이슈는 우리집에 와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우린 그냥 포기하고 주변에 양해를 구한 뒤 냅두기로 했다. 그 애의 짖음 이슈는 오래된 것인지 첫 주인에 의해 성대수술을 받았다고 구조자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뒤로 계속 조용히하라고 압박을 받아왔을터인데 굽히지 않고 쉰 목소리로 계속 짖어대는 모습이 가련하다. 그것이 위협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주변분들도 알아봐주신다. 그 애는 단지 말이 많은 개일뿐이다. 이번에는 골든 리트리버를 졸졸 쫒아다니며 더 빨리 달리라고 보채는 목소리가 들린다. 일종의 잡고 튀는 놀이이다.
지구를 부수고 싶다가도 이 작은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강아지가 지구를 구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멍때리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해가 기울고, 바람이 조금씩 서늘해진다. 슬슬 엉덩이를 털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집에 가는 길, 뭔가 아쉽다. 단골 카페에 들러 늘 그렇듯 창이 큰 자리에 앉는다. 평소엔 책을 꺼내 읽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루시드폴의 노래를 들어봤다. <고등어>의 잔잔한 목소리와 피아노 반주를 들으며 뭉클해지는 마음에 머그잔만 세게 움켜쥐어본다. 몇 주 전 루시드폴님의 공연 소식을 듣곤 설레며 티켓을 예매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미 전석 매진이었다. 그치, 이런 행운이 쉽게 올리가 없지. 아쉬운 마음에 이어폰으로 폰서트만 즐긴다.
대학 때 CD까지 사모으며 들었던 노래들. <고등어>, <사람들은 즐겁다>, <봄눈,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일상을 노래하는 가삿말. 주변을 따뜻하게, 일상을 가치롭게 바라보는 시선들. 나이가 들수록 그것이 그립고, 어렵다. 냉혹하게 사는 것이, 계산적으로 사는 것이 손해보지 않고 이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이지 않은가. 남들도 그렇게 다 산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나만 더 많은 일을, 더 궂은 일을 하게 되니까. 스스로 약게 살아야 한다고 채찍질하다가 가끔 백범 광장에 가서 부스스한 견주들과 그 사이를 헤집고 해맑게 뛰어다니는 개들을 보면, 좀 바보같이 살면 또 어때, 싶기도 하고. 개를 키운다는 건, 정말 바보같은 일이다. 수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 돈과 시간, 체력을 계속해서 써야하는 애물단지이다. 그런 애물단지를 사랑하는 같은 바보들을 보며 희안하게 마음이 정화가 된다. 계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내 영혼만 병드는 기분이다. 마치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는 것 같달까. 도둑질도 머리가 좋아햐 한다고, 나는 그렇게 약지 못한 인간이다. 황새 따라가는 뱁새가 되어 어줍잖은 신념으로 병들어가던 그때 김망치라는 처방을 받은 것이다. 그 애를 통해 만나는 강아지들과 그 강아지들의 행복을 지켜내는 견주들의 세계는 내 영혼이 삐뚤어져가는 것을 치유한다. 흩어져서 다만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뿐, 친절하게 따뜻하게 작은 것들을 아끼면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름 모를 동지들을 보면 어쩐지 힘이 생긴다. 김망치를 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세계에 입문을 했겠나. 혹시 김망치, 하늘에서 내려준 내 수호천사 아니야? 세일러문을 지켜주는 고양이 루나처럼? 내 의자 밑에 구겨져 자리 잡은 김망치는 그러거나 말거나 통창 너머를 관찰하는 중이다. 실컷 놀았는지 눈이 꿈뻑이는 속도가 느려진다. 가끔 고양이가 지나갈 때 벌떡 일어날 뿐.
인생이란 가시밭길을 한참 가야 꽃밭이 잠깐 나오고, 다시 가시밭길로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앞에 놓여진 물음표의 시간을 긴 호흡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서 놓치지 않아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기억해야할 것들을 기록해본다. 오늘처럼 햇살을 온 몸으로 받는 시간, 사랑하는 것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 좋아하던 노래를 다시 듣고도 여전히 벅차하는 것. 나처럼 무가치한 것을 사랑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