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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라리며느리 Nov 01. 2020

난 옥주현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돌 1세대인 핑클의 메인보컬이었던 옥주현은 현재 뮤지컬 배우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연예인을 떠나 다이어트 계의 인간 승리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한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비법으로 한 명언이 있다.



'먹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다'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래 맞아, 어차피 다 아는 맛이지'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다이어트에 도전해봐야겠다 다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난 '아는 맛이라 더 참지 못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바로 하게 되었다. 아는 맛이니 더 생각나고 아는 맛이니 계속 먹고 싶은 거다. 내가 모르는 맛은 생각나지도 않고 먹고 싶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새로운 음식에 잘 도전하지 않는 편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이미 나는 그 아는 맛에 '중독' 되어 있었던 거다. 이 '중독' 때문에 나는 여전히 '살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아니 이젠 '건강한 삶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게 맞겠다.




중독에 빠지는 원인



'중독'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부정적인 느낌에서 벌써 거부감이 든다. 이번에 읽은 데이비드 T. 코트 라이트가 쓴 '중독의 시대'에서 어떻게 나도 모르게 중독에 빠지는지와 우리 일상은 중독으로 이미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내 잘못이기보다는 우리가 '변연계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변연계 자본주의'란 글로벌 기업들이 종종 정부나 범죄조직과 공모하여 과도한 소비와 중독을 조장하는, 기술적으로는 선진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퇴보적인 비즈니스 체제를 말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과도한 소비와 중독을 조장하기 위해 뇌의 변연계를 공략한다. 변연계는 느낌이나 신속한 반응을 담당하는 반면, 냉철한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변연계의 신경 연결 경로는 쾌락, 동기, 장기 기억, 그 외에 생존에 필수적인 정서적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신경회로들이 생존에 위협적인 행동을 부추겨 돈을 벌고 진화의 산물을 사리사욕의 대상으로 바꾸는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한다. p. 14


이 부분을 읽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내가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 뇌에 강력한 쾌락과 보상을 주어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제품을 설계, 생산, 마케팅해서 전 세계로 보급하는 비즈니스가 주요 사업으로 떠오르는 체제가 바로 변연계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변연계 자본주의가 중독의 시대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의미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변연계 자본주의의 역사와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언하다.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문득 이 책을 내가 임신하기 전에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달고 짠 음식은 즐기지 않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내가 임신을 하고서도 매운 음식이 먹고 싶다는 충동에서 벗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그 당시 '불닭 볶음면'이라는 매운 라면 맛에 '중독'되어 있었는데 임신 초기의 니글거리고 메스꺼운 느낌을 '그것'만이 해소해 주었던 것이다. TV에서 나오는 광고와 마트에 가면 진열되어 있던 그 '불닭볶음면'을 태아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른 대체 식품을 찾았지만 그 불쾌한 느낌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만큼 난 그 맛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독의 시대'를 완독 한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을까 확신한다. 이 책을 통해 중독의 역사와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쾌락에는 항상 혼합된 맛있는 것들이 수반되었다. 식품 회사들은 자사의 빠른 히트 상품을 계속 저렴하고 접근하기 쉽게 하기 위해 식품의 생산, 제조, 유통, 마케팅 방법을 개선했을 뿐 아니라 맛 혼합 기술도 끌어올렸다. (...) 결국 문제는 소수가 시장을 지배하는 변연계 자본주의와 극도로 입맛이 당기는 식품의 범람 같은 시스템이지, 단순히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는 개개인이 아니었다. p. 308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제는 중독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내가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계발 커뮤니티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건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에 좋은 식습관뿐 아니라 생활 습관까지 고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던 라면도 이젠 먹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아는 맛이기에 여전히 생각이 나긴 하지만 먹고 나면 기분 나쁜 맛이 입안 가득 남아있기에 먹지 않게 된다. 이젠 내 몸이 MSG를 거부하는 게 느껴진다. 더구나 입맛을 당기고 구매를 부추기는 많은 광고를 봐도 이젠 현혹되지 않는 힘이 생겼다. 나쁜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환경설정'이다. 건강에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건강'이라는 커뮤니티에 나를 집어넣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나쁜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글을 쓰지 않던 내가 매일 글을 쓰는 '한 달'이라는 자기 계발 커뮤니티에 들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변한 것과 같은 것이다. '환경설정'의 힘은 이렇게나 위대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를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집에 젤리나 탄산음료, 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사두지 않고 마트도 잘 데려가지 않는다. 패스트푸드를 최대한 먹이지 않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불량식품은 독처럼 여긴다. (어렸을 때 아폴로, 쫀드기 같은 불량식품을 필자는 많이 먹었지만;) 집에 TV가 있긴 하지만 거의 보지 않고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해 광고에 쉽게 노출되지 않게 한다. 게임도 주말에 한 시간 씩만 할 수 있고 숙제나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절대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 없다. 유튜브를 볼 때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통제하는 편이다. 무작위로 노출하는 건 아이들을 물가에 무방비 상태로 놓아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급을 제한하지 않고는 중독을 감소시키려는 어떤 전략도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 선진 자본주의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중독에 취약해지게 만들었다면, 그럴수록 노출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p. 398


지인들은 이런 나를 극성맞은 엄마로 표현한다. 아이들도 맛있는 거 먹을 권리가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통제하냐는 것이다. 그 통제로 인해 나중에 욕구가 더 폭발한다는 것이다. 맛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과자, 젤리, 사탕,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같은 설탕 덩어리는 나에겐 맛있지 않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맛있는 음식에 속한다. 이 점 때문에 항상 고민했다. 내가 정말 아이들을 너무 통제해 나중에 더 부정적인 부분으로 표출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더 극성맞은 엄마가 되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극성맞은 엄마가 되기로 했다


어떤 제품이 위험하고 특히 젊은이에게 위험해 보일수록, 규제, 과세, 금지의 노력이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다. 치료, 과세, 규제, 교육을 통해 폐해를 줄이는 데 주력하는 세속적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이런 전략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비용 효율성이 높다. p. 402


우리 아이들이 변연계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 엄마인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적절한 통제와 교육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식뿐 아니라 요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중독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통제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부모도 함께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만의 규칙, 우리 집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본인이 중독의 시대에 살아가고 변연계 자본주의 속에서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의 지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중독의 덫에 쉽게 걸리지 않거나 설사 걸렸더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인 나부터 알아야 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이런 말을 지금 이해하기 힘들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나중에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라면 이 책을 읽게 하고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면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이들이 깨닫는 시간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이 책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중독의 시대에 살게 되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 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했다.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중독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 설정을 만들어야 한다.이미 알고 있는 그 맛, 그 기분, 그 느낌 때문에 우리는 중독이 된다. 그렇기에 처음에 내가 언급한 옥주현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중독은 습관이다. 습관이 인생의 전부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누적된 내 행동에 대한 결과인 것처럼 평소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환경 설정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다.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참고 도서  <중독의 시대>  by 데이비드 T. 코트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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