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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라리며느리 Nov 15. 2020

전기 없이 열흘 동안 살아 본 적 있나요?

필리핀에서 10여 년 정도 산 적이 있다. 한국에 비해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정전도 자주 되고 물도 석회질이 섞여 있어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금방 물과 전기의 소중함을 깨닫고 물과 전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필리핀 기후 특성상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 태풍이 크게 온 적이 있었다.



평소에 태풍이 자주 왔지만 그때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메인 도로는 물이 금방 차올라 강물이 흐르는 듯했고 낮은 지대에 있던 집 별채는 이미 물에 잠겨 침대가 떠다니고 다행히 본채는 높은 지대에 있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이 계단 하나 정도만 더 올라왔다면 본채도 물난리가 났을 거다. 그 태풍으로 인해 열흘 동안 전기가 끊겼다. 내 평생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 물을 끌어올리는 지하수 모터가 작동을 하지 않아 물도 쓰지 못하고 모든 생활이 마비되었다. 후덥지근하고 더운 나라에서 전기와 물이 없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에서 그때의 끔찍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내가 '대통령이 사라졌다'라는 책을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미국 42대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가 제임스 페터슨이 같이 쓴 소설이다. 전 미국 대통령이 쓴 대통령의 이야기는 다른 그 어느 소설보다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싸움과 외부 세력에 대한 사이버 테러에 대한 내용은 한때 필자가 푹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미국 드라마를 생각나게 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드를 많이 봐서 그런지 소설의 결말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소설의 내용보다도 더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은 리더의 자질과 점점 우리가 익숙해지고 있는 첨단 기술에 대한 것이었다. 번 서평에선 그중 후자에 더욱 중점을 두려 한다.


"인류의 발전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힘이 세지면 취약성도 그만큼 커지게 되죠. 당신들 모두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눈엔 취약하기 그지없어 보일 뿐이에요. 바로 맹목적인 의존 때문이죠. 우리 사회는 첨단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요. 사물 인터넷. 이 개념을 잘 알 테죠?"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초연결 시대이다. 당장 스마트폰만 없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로 인한 이점들이 굉장히 많지만 이것이 마비된다면 이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많지 않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총과 폭탄, 핵전쟁의 시대가 아닌 바이러스 전쟁의 시대가 되었다. 지금 전 세계에 고통을 주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이버에 퍼지는 바이러스도 온 세상을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태풍으로 인해 열흘 동안 전기 없이 살며 겪은 고통으로 인해 고가의 발전기 구입을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도 다시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우리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기술의 편의성에는 항상 위험성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대비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마우스 클릭 하나로 모든 것이 멈출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냥 기술의 편리함을 누리며 행복해 할 수는 없다. 그만큼 의존할 부분이 많아지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줄어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평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편리한 핸드폰, 컴퓨터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중요한 내용들은 문서화해서 백업을 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아날로그를 무시해선 안 되겠다. 또 첨단 기술뿐 아니라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행해왔던 내 생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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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서적을 주로 읽는 나에게 이 책은 뜻밖의 재미뿐 아니라 소설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전직 대통령이 쓴 '대통령이 사라졌다'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의 저자인 빌 클린턴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한 번 해보았다. 요즘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드라마가 나오면 한 번쯤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미국 드라마를 책으로 한편 보고 나니 아무 생각 없이 맥주 한 캔과 함께 미드를 보고 있는 나를 상상하게 된다.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고도서 <대통령이 사라졌다>  빌 클린턴, 제임스 패터슨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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