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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라리며느리 Jan 10. 2021

너 같은 딸 꼭 낳아봐!

예비 부모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모녀 사이에 한 번씩 찾아오는 전쟁에서 엄마가 나 같은 딸 꼭 낳아보라고 하신 주문(?)이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나를 꼭 닮은 딸을 20시간의 진통 끝에 낳았다. 그땐 엄마가 화를 참지 못하고 하신 말씀이니 딸에게 내린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딸의 불행을 원하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홧김에 하신 말씀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조차 나 같은 딸을 낳을까 봐 두려웠다. 고집 세고 말대꾸 꼬박꼬박 하는 딸을 보면 엄마가 그때 걸어주신 주문이 생각난다. 하지만 첫아들을 낳고 둘째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는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한다며 그 누구보다 '손녀'를 원했던 것도 엄마다. 말이 앞 뒤가 맞지 않는 것도 엄마, 나, 내 딸이 어쩜 그리 똑같은지 유전자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다(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내가 왜 엄마를 꼭 닮았는지 어떻게 내가 나를 꼭 닮은 딸을 낳았는지를 이번에 빌 설리번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 예비 부모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출산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유전자 자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지금도 변하고 있고, 이미 변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난 원래 이렇게 타고났어, 엄마가 이렇게 낳았잖아


'난 의지박약이야', '난 게을러', '난 절대 술 못 끊어', '난 밥순이라 밥 안 먹으면 못살아', '새벽에 어떻게 일어나', '이 맛있는걸 어떻게 안 먹어', '그걸 어떻게 매일 해', '운동은 나랑 안 맞아' 등등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나였다. 내가 식탐이 많은 것도, 잠이 많은 것도, 짜증이 많은 것도 유전자 탓(?)을 하며 살았다. 아니 탓을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고 그렇게 말하면 편했기 때문이다. 근데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DNA가 얼마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면서 더 흥미로워졌다.


DNA는 눈 색깔이나 손을 갖고 태어나는지 여부 같은 신체적 특성에 그치지 않고 훨씬 많은 것을 관장한다. 유전자는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할지, 얼마나 빨리 화를 낼지, 알코올을 갈망할지, 얼마나 많이 먹을지, 무엇에 마음을 뺏길지, 아무 문제없는 완벽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를 좋아할지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p. 11


하지만 DNA 말고도 우리 몸속에 있는 미생물, 외부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후성유전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우리가 하는 행동에 많은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하는 행동이 정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온다는 것이 어떤 부분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후성유전학은 우리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놀랍게도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의 DNA에 영향을 미친다. (...) 후성유전학은 비만, 우울증, 불안, 지적 능력 등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스트레스, 학대, 가난, 방치 등이 희생자의 DNA에 흉터를 남겨, 여러 세대에 걸쳐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후성유전학에서의 이런 놀라운 발견이 우리의 행동을 지휘하는 또 하나의 숨겨진 힘을 구성한다. 이것도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p. 12

우리의 미생물 거주자들은 우리 몸으로 유전자를 들여와 우리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조종하는 또 하나의 숨겨진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p. 42

어미의 정크푸드 식생활이 새끼의 DNA에 영구적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p. 59

우리가 먹는 음식이 유전자 발현을 바꾸어 식욕, 대사, 질병 감수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가 나와 있다. p. 97

과학은 알코올 섭취량을 조절하는 능력 그리고 알코올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유전적 요소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들은 중독을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으로 취급한다. p. 127

생물학적으로는 불공평한 얘기지만, 엄마가 임신 기간 동안 저지른 행동에 대해 태아 프로그래밍이란 형식을 통해 아이가 그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p. 141

진화가 부수적으로 낳은 현상을 보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당신의 일부 행동은 당신의 부모, 심지어는 조부모가 경험했던 무언가가 낳은 결과일 수 있다. p. 208


내가 가지고 있는 입맛과 식욕, 주량, 기분, 성격, 정신적인 부분 등 많은 것이 타고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이 생각나 걱정이 되었다. 물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것들도 많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한 입맛과 잔병치레 없는 몸, 예의 바르고 싹싹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성격, 건강한 정신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좋은 것들보다 나로부터 물려받을 안 좋은 것들이 생각나 미안함이 커진다. 이런 사실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며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조금 더 운동을 해서 살을 빼고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을 수 있게 노력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의식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한 가지 다행인 건 환경에 의해 안 좋은 것을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변화를 경험했고 현재 내가 노력하면서 개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미안, 엄마 탓이 아니야


게으름, 의지박약, 밥순이, 말술(;;), 대식가의 대명사였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꾸준함이라고는 볼 수도 없었던 내가(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닌 아빠와 너무 닮았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뭔가를 할 수 있냐,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 좋아하던 밥과 밀가루를 끊었고(한 번씩 먹긴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6시에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5시 기상을 목표로 하며 미라클 모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건강한 식단과 운동 습관, 좋은 생활 습관을 통해 15 킬로그램의 체중을 감량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모든 것들이 '환경 설정'이라는 장치(?)를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쓰기 커뮤니티에 나를 집어넣었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씽큐 온'이라는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살을 빼고 건강해지고 싶어 '건강'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탄수화물, 설탕, 술, 튀김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고 운동하는 습관뿐 아니라 다른 좋은 습관들을 만들고 있다.


알렉산더는 6주 동안 한 무리의 쥐들을 모르핀에 중독되게 만든 후 쥐 공원(쥐들을 위한 파라다이스)에 풀어주거나 고립된 무서운 우리 안에 가두어두었다. 양쪽 환경 모두 모르핀이 첨가된 물과 일반적인 물이 들어 있었다. 놀랍게도 쥐 공원에 사는 쥐들은 압도적인 다수가 일반 물로 갈아탔다. 반면 우리 안에 갇힌 가여운 쥐들은 계속 모르핀이 첨가된 물을 고집했다. 평균적으로 보면 우리의 행동 또한 이 실험에 참여한 쥐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이 다행스럽게도 도파민 보상 반응을 자연적으로 자극해주는 환경에 살게 되면 대부분은 부자연스러운 자극 방법을 추구하지 않는다. p. 143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유전자 발현을 통제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식생활과 운동 등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환경은 어느 유전자가 켜지고 꺼질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생활 방식을 바꿈으로써 유전자 발현에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운동은 여러 가지 질병을 물리치는 최고의 명약이다. 운동은 근육을 강화하고, 심장을 보호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건강한 체중 유지를 돕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다. 운동이 후성유전을 통해 유전자 발현도 바꿔준다. p. 362


바뀔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가 환경 설정에 의해 180도 변한 것처럼 약에 중독된 쥐들에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주변에 놓여 있는 코카인을 피하는 모습에도 환경 설정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타고난 유전자 때문에 내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타고났기 때문에 변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 상황에 머물러 있다면 더이상 발전은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의 안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엄마인 내가 노력하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내가 변했듯 우리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생각한다. 


과학은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될 수 있다는 개념을 떨쳐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과 후천적인 환경에서 큰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을 최소화할 실용적인 조치를 통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로 펼치며 살게 할 수 있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나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냐, 헤엄쳐 나올 것이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헤엄쳐 나올 것이냐, 구조받을 것이냐가 되어야 한다. 결국 이것이 더욱 강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p. 381





참고 도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by 빌 설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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