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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뷰어P Aug 18. 2023

2009년부터 시작된 시원이만의 세계

유일한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5살부터 클레이 작업을 시작한 시원이는 어느덧 열다섯 살이 되었고, 10년이라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시원이만의 유일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 시원이의 놀라운 집중력과 세밀하고 섬세한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다소 유아적인 클레이라는 미술 재료에 대한 나의 편견이 동시에 발동하여 시원이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류시원, <인도의 수학지 라마누잔>, 2022, 종이에 클레이


사춘기 시원이와의 인터뷰 

청소년 창작자를 인터뷰할 때 항상 부모님과 인터뷰이 당사자인 창작자의 동의를 구한다. 시원이와의 인터뷰 역시 어머님과 시원이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연락을 드렸다. 어머님께서는 요즘 사춘기인 시원이가 질문에 답변을 잘할지 모르겠다며 시원이에게 인터뷰 참여 의사를 물어봐 주셨고, 고맙게도 시원이는 나와의 인터뷰에 응해줬다. 생각해 보니 시원이는 요즘 미술 수업에 결석을 하기도 하고, 예전보다 수업 시간에 말수가 적어진 것 같기도 하다. 시원이는 인터뷰 당일 3시간 수업을 한 후라 제법 피곤했을 텐데 나의 질문을 귀담아 들어주었고, 의젓하며 명랑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시원이에게 클레이는 ‘좋은 것, 그래서 즐거운 것’ 

(좌) 류시원, <함무라비 왕>, 2023, 종이에 클레이 / (우) 류시원, <자화상>, 2022, 종이에 클레이


“만지면 좋아요. 말랑말랑해서 좋아요”

“쭉 눌어 나기도 하고, 원하는 데로 만들 수 있어요”

“다시 떼서 뭉치기도 해요”    

 

시원이는 말랑말랑한 클레이의 촉감을 좋아한다.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은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누구나 태어난 순간부터 촉각적 경험을 한다. 손의 촉각에 반응하는 클레이를 통해 시원이는 특별하거나 강렬하거나 새롭거나 편안한 감정으로 빠져들었을 것이고, 이러한 시원이의 경험과 느낌은 작품에 영감이 되었을 것이고, 시원이만의 세계를 창조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은 실체를 만나는 감각의 체험 즉, 오감의 활동이다. 재료를 다루고 거치지 않고서는 미술이 될 수 없다. 처음 클레이를 만졌던 다섯 살의 시원이는 아마도 생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친근한 클레이라는 재료가 가지는 물리적 속성의 독특함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부드럽고 촉촉한 말랑거리는 클레이를 만지고 주무르는 과정은 시원이에게 놀이로서 건설적인 퇴행을 경험하게 하고, 신체적 에너지를 촉진하며 생명감, 자발성, 생산성, 창조성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시원이는 원하는 데로 만들 수 있는 클레이가 좋다고 이야기한다. 손의 움직임에 쉽게 반응하는 클레이는 만지는 대로 자유롭게 변하기 때문에 시원이의 경험과 생각을 그 어떤 미술 재료보다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잘 표현해 줄 수 있다. 시원이에게 클레이는 표현을 촉진한다. 그리고 표현의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너무나 적절하게 선택된 미술 재료이다.      



시원에게 그림은 완성이 아닌 조금씩 나아가는 것

(좌) 류시원, <우루카키나의 환영>, 2022 종이에 클레이 / (우) 류시원, <백악기 시대>, 2021, 종이에 클레이


“손으로만 해요”

“어렵지 않아요”

“안 하고 싶어요. 그럴 때도 있어요”

“그림은 계속 그릴래요”    

 

시원이는 작업을 할 때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클레이 작업은 회화만큼 자유롭게, 섬세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시원이는 어느새 온전히 클레이라는 미술 재료의 성격을 이해하고 기법을 익혀가며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고 찾아가고 있다. 아동 및 청소년 창작가의 예술적 재능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주로 어른들이 재능만을 부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가는 예술을 대하는 성실함과 진실함의 태도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 시원이는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실천해 가며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 간다.      


물론 시원이도 멈추고 싶고, 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버겁기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시원이가 어머님께 “그림은 계속 그릴래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시원이의 하루는, 매일은 어른들이 모르는 수많은 일들로, 수많은 감정들로 가득할 것이다. 시원이에게 그림은 계속해 가는 것, 기꺼이 해내는 것, 진짜로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그렇게 시원이는 시원이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아마도 시원이에게 그림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행복, 소소한 기쁨, 소소한 즐거움, 소소한 위안, 소소한 평안일 테니까. 시원이에게 예술은 어떻게 성장하고 배워가는가, 완성과 완결이 아닌 서서히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혼란스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질서를 끌어내는 인간의 능력을 찬양한다. 이런 역동적이 노력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고 어린이에게 미술은 의미 있는 질서를 이해하고 창조하는 데 필요한 본질적인 도구이다.’  -루돌프 아른하임-



시원에게 그림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좌) 류시원, <우르왕조 끝>, 2022, 종이에 클레이 / (우) 류시원, <구티족 이동>, 2023, 종이에 클레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만화책)에 나와요”

“빅뱅도 나오고 공룡도 나오고 세계사 인물이 나와요”

“똑같이 해봤는데, 다르게도 해봐요”

“책에는 원래 색이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어떤 작품을 만들었냐는 결과보다 창작 과정과 작가의 생각을 알게 되면 우리는 작품에 담긴 더욱 풍성한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시원이는 만화가이자 역사가인 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The Cartoon History of the Universe)’라는 만화책을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중 어찌나 신나게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하는지, 한참 동안 시원이의 인류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즐겁게 청강한 기분이었다. 시원이는 일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만화책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가고 있다. 예술은 개개인의 다양한 삶의 관심과 경험, 일상을 다룬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출처: 위키디피아)


시원이의 작품 주제는 대부분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세계사를 다루고 있는데, 주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의 내용과 그림을 재구성하여 시원이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담는다. 만화책의 그림체와 시원이의 그림은 사뭇 다르며 책에는 색이 없다. 시원이는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재현하면서 의미를 담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그림과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재구성하여 표현한다. 이처럼 예술의 매력은 창작자의 생각과 정서가 드러남으로써 개인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시원이는 빠르게 정답을 찾아 완성 짓고 싶어 하는 나에게 조금 천천히 가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다. 삶의 전부가 예술이 아닐지라도 예술을 자주 만나고 느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그래야 오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나는 시원이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p.s.

시원이는 클레이 매체를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하며 청소년 예술가로 많은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발달장애 예술가이다. 


※ 류시원 청소년 예술의 그림과 사진, 인터뷰 내용은 창작자 본인과 보호자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세계 역사 이야기를 알리는 평범한 예술가가 되고 싶은 류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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