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시절의 진이는 세상 모든 강아지가 친구라고 믿던 아이였다.
산책 중 만난 개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강아지 운동장에서는 누구와도 잘 뛰어놀았다.
그랬던 진이가 언제부터인지 다른 강아지들에게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이에게는 세 번의 물림사고가 있었다.
아마 그때의 경험이 마음 한쪽에 상처로 남아, 진이를 예민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사람도 세 번 당하면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1. 첫 번째 물림사고: 아쉬운 사람이 을이 된다.
한 살 무렵의 진이는 강아지 유치원에 다녔다.
나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6개월간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장장 12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낸 지 4개월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진이의 일과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넘겨보다가 진이의 오른쪽 앞다리에 상처가 보였다.
놀라서 전화를 걸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몰랐어요. 확인해 볼게요.”
바로 보이는 상처를 몰랐다는 무책임함에 속이 쓰렸지만,
개를 맡긴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기란 쉽지 않았다.
이후 들은 이야기.
진이는 3kg도 안 되는 몰티즈에게 물렸다고 했다.
진이 머리보다도 작은 아이에게 그런 상처를 입었다니
속상함이 한참이나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 같은 층에도 강아지 유치원이 있다.
요가를 하다 보면, 단 1초도 쉬지 않고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진이가 떠오른다.
그 긴 하루동안, 진이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2. 두 번째 물림사고: 백설이와의 장난감 사건
두 번째 사고는 지금은 엄마의 막내딸이 된 진도믹스 백설이와의 일이다.
당시 보호소에 있던 백설이를 임시 보호하던 중이었는데,
백설이는 어린 시절, 모견이 맞아 죽는 끔찍한 장면을 눈앞에서 본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자, 특히 중년 남자를 무서워한다.
엄마는 백설이를 데려오기 전
우리 집에 들러 강아지 물품을 챙겨 갔고,
백설이가 조금씩 적응해 갈 무렵
나는 진이와 함께 엄마 집을 찾았다.
처음엔 둘 다 조심스레 인사를 나누며 잘 지냈다.
그러다 문제가 시작된 건,
백설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진이의 것이라는 걸
진이가 알아챈 순간이었다.
진이는 장난감을 빼앗으려 다가갔고,
순식간에 백설이는 진이의 등을 물었다.
털을 헤치면 아직도 그 자리에 작은 흉터가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두 아이의 서열은 아주 명확해졌다.
진이는 백설이를 보면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기도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진이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을 놀람이 느껴진다.
3. 마지막 물림사고: 보호자와 견주의 차이
마지막 사고는 작년 여름, 새벽에 일어났다.
더위를 피해 새벽 산책을 나갔는데,
걸음을 옮기던 중 진이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나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프렌치불도그 한 마리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보호자가 뒤에서 불도그의 이름을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불도그에게 닿지 않았다.
급하게 진이를 안아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진이는 뒷다리를 물렸고
심장은 터질 듯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견주는 “죄송해요”를 되뇌었다.
(통제가 안 되는 개면... 풀어놓지를 말아야지.)
그 순간 미안한 얼굴은 보이지 않고
보호자는 '견주'로 바뀌었다.
반려견에 대한 책임감과 보호 의식이 없다면 그저 개주인일 뿐이다.
오프리쉬 견주에게 화가 났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괜찮다며 그냥 넘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진이는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진이는 괜찮지 않았을 텐데 내가 괜찮다고 하고 넘어가 버렸다.
나는 진이의 마음을 먼저 챙기지 못했다.
세 번의 사고 이후, 진이는 변했다.
누군가 다가오면 경계하고,
다른 개의 짖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진이의 마음에 경계선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경계선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진이에게
“괜찮아, 엄마 옆에 있어.”
이 말을 자주 한다.
진이의 귀는 여전히 예쁘게 서 있고,
그 귀가 다시 세상을 향해 열리기를 천천히 기다려본다.
언젠가 진이의 경계선이 조금은 말랑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