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는 동물은 다 아는 것
나가서 놀자고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슬프고, 기쁘고, 무섭고, 좋고, 싫고...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이 다 아는 것이다.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진엽 <개. 똥. 승.>
지금 진이와 살고 있는 집은 2년 전 이사 온 곳이다.
집마다 넓은 테라스가 있어 실외 배변을 하는 진이가 혹시라도 내가 없을 때
급한 일이 생기면 밖으로 나가 볼일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곳을 선택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반려견과 함께 사는 이웃들이 많다.
요즘 들어 엘리베이터를 내려 집으로 가는 복도에서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악취를 느낀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였다.
그러다 얼마 전, 그 냄새의 실체를 마주하게 됐다.
진이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평소보다 훨씬 심한 냄새가 퍼져 있었고
마침 최근에 이사 온 옆집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문 안에는 헤드셋을 낀 채 게임을 하고 있는 남자와
고개를 푹 숙인 채 울타리 안에 앉아있는 리트리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조차 안 되는 배변 패드와 온갖 쓰레기들이 함께였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 나는 냄새였다니..
놀라움은 곧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옆집 남자를 가끔 마주친 적은 있지만 항상 혼자였기에 개와 함께 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아이는 얼마나 혼자 있을까.
산책은 나가기는 할까.
이런 생각이 오지랖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이름 모를 그 개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그동안 종종 임시보호를 해왔다.
그중에서도 해외 입양이 확정된 아이들의 단기 임시보호를 맡아왔다.
태어난 이 땅에서는 갈 곳이 없어 가족을 찾아 머나먼 타국까지 비행기를 타야 하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출국 전 고향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쉬운 이별이지만, 평생가족을 만날 임보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입양처가 정해지지 않은 유기견 행복이를 임시보호 하게 됐다. 평생을 마당견으로 살아온 아이였기에 임보 신청자 중 테라스가 있는 우리 집이 선택된 것 같다.
안락사를 며칠 앞두고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우리 집에 온 행복이는 처음 느껴보는 방바닥의 촉감이 무서웠는지 아직 쌀쌀하던 3월, 꼬박 일주일을 테라스에서만 보냈다.
차가운 바닥에 웅크려 잠을 자는 행복이를 보며, 걱정하는 마음이 무색힐만큼 행복이는 빨리 적응해 주었다.
밥도 잘 먹고, 처음 해보는 목욕도, 아프다는 사상충 치료도 묵묵히 견뎌주었다.
입양 홍보를 하던 중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이 입양 의사를 밝혔고,
가까운 곳에서 가족을 만나다니 자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기뻤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양자는 행복이를 방치했고, 급기야 오프리쉬 산책 중 행복이를 잃어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입양자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고,
나는 밤낮없이 전단지를 붙이며 행복이를 찾아 헤맸다.
혹시라도 영영 찾지 못할까 죄책감에 숨이 막혔다.
행복이를 구조했던 구조자님은
"그냥 안락사당하게 뒀으면 행복이가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나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다며" 자신을 탓하며 울었다.
다행히 동네 주민의 제보로 이틀 만에 행복이를 찾았지만
그동안 혼자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졌다.
지금까지의 아픈 과거를 보상이라도 받듯
진짜 가족을 만나 행복이라는 이름처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살피고 입양 보낸 아이가
방치되고 길을 헤맸다는 사실은 아직도 마음 한가운데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옆집 리트리버를 보며 행복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좁은 울타리 안에서 고개 숙인 이름 모를 그 아이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사람의 하루가 개에게는 일주일이라고 한다. 개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
반려인이 전부인 삶을 사는 반려견에게, 오지 않는 그 전부를 기다리며 텅 빈 집을 지키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하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 반려인의 책임은 크고, 무겁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부디 시작하지 않기를..
반려견은 장난감도, 인형도, 관상용도 아니다.
숨 쉬고, 감정을 느끼며,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존재이자 귀한 생명이다.
오늘도 옆집 문 앞에 쌓인 택배 상자는 며칠째 그대로다.
너는 아마 간절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겠지.
너를 외롭게 하는 그가 너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