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에서 인간은 생의 무게를 평가받는다.
신이 인간의 선행과 악행을 저울질하는 심판의 순간,
생전에 도움을 받았던 고양이가 선행의 저울판 위로 뛰어올라 무게를 보탠다고 한다.
고양이는 자신이 받았던 친절을 기억하고, 그 무게로 인간이 천국에 닿을 수 있도록 돕는다.
―벨라루스 설화 중
최근 EBS에서 진돗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국견인 진돗개가 해외에서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를 다룬 다큐였다.
다큐 속 한 인터뷰이는 "진돗개는 신이, 혹은 우주가 나에게 보내준 기적 같다"라고 말하며 진돗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들은 진돗개의 뛰어난 정서적 공감능력, 상황을 읽고 행동하는 판단능력, 독립성과 용맹함 그리고 깔끔한 성향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진돗개는 서양의 반려견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지닌다. 낯선이에게는 경계심을 보이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평생을 곁에 함께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유명 훈련사 멧 베이스너는 “진돗개는 명령이 아니라 신뢰로 움직이는 개”라며 주인의 마음을 읽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한다고 말했다. 그는 진돗개를 다루기 가장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완벽한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다큐 속 여러 사연들 중 두 마리의 늑대 앞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홀로 맞선 진돗개 이야기와, 방황하던 남자의 삶을 바꾼 이야기는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하지만 화면을 끄고 나니 우리나라에 사는 진돗개와 진도믹스들의 비참한 삶이 떠올랐다.
1m도 안 되는 짧은 목줄에 평생을 묶여 사는 마당견,
발조차 제대로 디딜 수 없는 뜬장 속 식용견,
보호소에 들어간 뒤 입양되지 못해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는 수많은 아이들.
마당견, 식용견, 유기견, 그리고 학대와 방치 속에 놓인 모든 아이들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진도믹스인 진이와 함께 살며 나는 특히 진돗개와 중·대형 믹스견들이 처한 현실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진돗개는 실내에서 못 키우지 않나요?”
이것은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다. 나는 진돗개가 실내견으로 함께하기 좋은 최고의 견종이라고 생각한다.
진돗개는 헛짖음이 없고, 독립적인 성향 덕분에 분리불안도 적은 편이다.
깔끔한 성격으로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 배변을 하지 않아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옆집 아주머니는 소형견 두 마리와 함께 사는데 짖음이 심해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한다.
반면 진이를 보며 “어쩜 한 번도 짖지 않느냐”며 진이를 보기 전까지는 이 집에 개가 사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또 이런 말도 자주 듣는다.
“진돗개는 사납지 않나요?”
짧은 줄에 묶여 365일 24시간을 자유 없이 살아가면 어떤 존재든 미친다. 그 모습을 보고 진돗개를 사납다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한 오해다.
진돗개는 낯선 이에게는 경계심이 강하지만 신뢰하는 이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 깊다.
몇 해 전, 귀촌한 엄마가 입양한 진도믹스 백설이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아랫마을에서 난 불을 감지하고 짖음으로 위험을 알렸다. 평소 거의 짖지 않던 백설이의 짖음에 엄마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날, 백설이는 우리 가족을 지켜냈다.
나는 늘 진돗개를 둘러싼 편견과 오해가 안타까웠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 개도 견종마다 고유한 성향과 기질이 있다.
나는 개가 인간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기질을 존중받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 주요 매체에서 '가장 바르게 행동하는 개' 1위로 선정된 자랑스러운 우리 진돗개를 이제 더 이상 편견의 색안경을 낀 눈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끝으로, 환영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 땅의 진돗개와 진도믹스 아이들이 조금 더 존중받고 조금 더 따뜻함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