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거리를 둔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 대사 中
#A
며칠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는데 무척이나 반가운 전화였다.
너의 안부가 곧 나의 안부가 되는 우리는 시시콜콜하게 얘기 나누던 도중 며칠 사이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걸 알기에 그 일과 관련해서 물어보았다.
"얼마 전에, 너 많이 안 좋았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물었다.
"별일 아니었어..."
한참을 뜸을 들인 후 친구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참, 모르겠어.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은 멋지고 당찬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람을 다시 보니 멋지고 그 당참이 가식였다는걸 알게 됐어."
'가식' 말이나 행동 따위를 거짓으로 꾸밈.
친구의 푸념은 수화기 너머로 한참 동안 이어져갔다.
"너에게 그 사람은 지금 어때? 그 사람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야 하고 일적으로 부딪혀야 하는데 다 견뎌낼 수 있겠어?"라고 난 물었다.
"확신이 없고,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어. 나보다 나이도 많으니깐 견뎌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쳐내야 하는 건지 근데 일적으로 만나야 할 사람이니깐 더 조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게 맞는 거 같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 사람을 보니깐 지금 상황으로서는 내가 견뎌낼 수는 없을 것 같아. 내가 내려놓거나 그 사람과 선을 넘지 않고 일 적으로만 대하면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질 것 같긴 한데
또 막상 예전처럼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들을, 여기서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은 부탁이나 난처한 상황까지 내가 다 감싸 안으면서까지 그 사람을 더 이상 서포트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결론적인 이야기의 끝맺음을 해결하지 못 한 채 우리는 무겁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B
지난주 친구와 밥을 먹고 있는데 친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너 병원은 왜 다니는 거야?"
병원 다니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만났을 때 물어봤다.
밥을 먹다 말고 친구는 얼굴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브리핑하듯이 나에게 쏟아냈다.
"난,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어. 도와주고 싶다는 건 회사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일도 꽤 괜찮게 해서 직원으로서 서로 격려하며 응원하면서 도와줬는데 호의가 이렇게 화살로 돌아올 줄은 몰랐어.
둘 사이에 관계는 난 진짜 몰랐어. 나는 남한테도 관심이 없는데 내가 어찌 둘의 관계를 알았고 설마 알았어도 내가 그 둘을 해코지한 것도 아닌데 왜 나를 걸고넘어지는지 너무 화가 나.
그 사람이 나에게 소송을 걸었기에 나도 소송을 걸었고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
회사에 와서는 전혀 일도 못하고 남들이 퇴근하고 나서야 그제야 초과근무를 올리고 일을 하게 되는 나는 이 상황들이 어이없고 당황스러워."
친구의 한숨이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늘 씩씩한 친구가 풀이 죽어서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얼굴은 울상이 된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화가 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
A와 B는 정말 엄청난 잘못을 한 걸까?
서로에게 응원을 해주고 동료로서 열심히 한 것뿐인데 그들에게 돌아온 건 엄청난 잘못이거나 상처가 되어 돌아왔을 때 난 그들을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까?
녹취록이 발견됐다는 친구의 말에 친구는 사람과의 관계가 이렇게 무서울지 몰랐다면서 누구와도 이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트라우마가 탑재되어 있었고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中 121P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인간관계에서도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인가?
인간관계는 과연 정답이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이 타인의 오해에서 나오는 유치한 장난은 아닐까?
알면 알 수록 어려운 인간관계의 한계는 끝이 없는 걸까?
물음표만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