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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자적 Apr 02. 2019

카파도키아 예찬

오늘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올해 1월, 어째 운 좋게 2주의 휴가를 낼 수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2주의 휴가란 눈치게임에 승리한 자에게 아주 가끔씩 주어지는 것이라, 2주를 빡빡하게 채워서라도 일단 멀리 다녀오고 싶었다. 1주 남짓한 휴가로는 절대 허락받지 못할 곳들을 떠올리다가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품었던 터키가 생각났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터키의 왼쪽에는 신들의 나라 그리스, 아래쪽에는 미지의 나라 이집트까지 위치하고 있으니, 새로운 문화와 문명에 목마른 내게 터키, 그리스, 이집트로 이어지는 루트는 가히 완벽하고도 균형 잡힌 삼각구도로 보였다.


 오래간만에 길게, 것도 멀리 떠난 여행은 훌륭했다. 웬만한 거에는 둔해져 버린 나 같은 여행객에게도 카파도키아는 생생한 충격이었다. 당시 난 숱한 여행을 해오며 모든 게 다 거기서 거기 같은 이른바 여행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구나, 하며 말이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겪어내며 기어이 오늘의 모습을 보여주는 카파도키아는 내 오만함과 비루함을 실컷 일러주었다. 어디에 서서 어디를 바라보든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기이한 돌덩이들이 사방에 가득했고 그것이 내가 볼 수 있는 전부였다. 이곳이 펼쳐내는 광활하고도 엄숙한 파노라마에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숭고한 자연 앞에 선 한 인간으로서 경건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해 질 녘 찬찬히 사그라드는 따뜻한 붉은빛들이 거대한 돌덩이에 반사되어 빚어내는 눈부신 풍광 앞에선 그 어떤 말도 부족했다. 아니, 불필요했다. 그저 숨죽인 채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걸음을 쉽사리 옮기지 못할 정도로 걷는 내내 가슴이 벅찼고, 대신 아쉬움도 그만치 피어났다. 어쩌면 이번 생에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광경이란 사실이, 현 순간만이 이런 감격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그리도 무겁게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행자는 집으로 회로한다. 어딘가에서 마음이 동하여도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이 대부분 여행자의 숙명이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결국의 여행이란 뻔한 결말과 익숙한 최종 목적지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 하여도 내 눈에 여간 좋은 것을 두고 홀로 자리를 뜰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아쉬움마저 쉬이 비켜지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의 신분상 평생 외딴곳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 절대 해소될 수 없는 답답함을 안은 채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갈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이 힘겨운 감정조차 여행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껴안아야 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지나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몇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이 날의 감격이 훗날 기력을 다해 소멸될 것을 벌써부터 걱정하며.

 최대한 이를 기억할 것을 다짐하며.



 시선이 채 닿지도 않는 저 수평선 너머로까지 장엄한 암석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곳.

  어떤 속세의 감탄사로는 감히 표현할  없는 .

 내가 가진 수식과 표현으로는 그곳의 전부를 드러낼 수 없어 으레 아쉬움이 남는 곳.

 영원토록 잊히지 않을 .

 아쉬움마저 영영 남을 곳,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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