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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자적 Apr 04. 2019

타이베이의 첫날

오늘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지난 1월 터키, 그리스, 이집트를 다녀왔다. 2주 정도 되는 짧은 기간 동안 3개국을 돌기도 했고, 국내 이동을 할 때에도 장거리 야간 버스가 아닌 비행기를 택했던 터라 13일 동안 비행기를 무려 7번 타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공항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했던 탓에 한동안은 여행 생각이 안 날 줄 알았다. 비행장 근처에는 가고 싶지도 않고 각종 수속과 절차들에도 단단히 질려 버렸었다. 그럼에도, 역시나, 3월 말쯤이 되니 그때의 결심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여행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생은 기억에서 쉽게 잊힌다. 인간의 결심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장거리 비행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두세 시간이면 닿을 부담 없는 여행지를 찾다가 이참에 남들 한 번씩은 다 갔다 왔다는 타이베이로 향하기로 했다.


 

 타이베이 공항에 내린다. 공항에서 곧바로 MRT를 타고 오느라 타이베이 시내에 도착해서야 처음 실외로 나간다. 타이베이는 서울보다 덥고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 긴장도 함께 풀렸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조금 쉬면서 오늘의 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한다. 서울에서 공들여 만든 '대만 여행 3박 4일 일정' 엑셀 파일을 슬쩍 열어 본다. 오늘의 계획에는 갈 곳이 서너 곳은 족히 된다. 잠시 까먹은 게 있다면 그 계획표는 좋은 체력을 전제로 두고 있단 것이다. 아침 네시부터 일어나 오전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 두시쯤 도착하자니 몸이 생각보다 지쳤다. 과거의 호기로운 내가 계획했던 것을 오늘의 피곤한 나는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래도 샹산 야경이 그렇게 멋지다는데, 랜드마크인 타이베이 101은 가봐야 하지 않나, 란 생각에 잠시 고민에 빠질라던 찰나, 나보다 더 지친 옆사람의 무언의 압박이 들려온다.


 자, 이제 욕심을 버린다. 샹산 그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려면 무척 힘들거라 안 가는 게 현명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타이베이 101이 롯데월드타워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에펠탑이나 하는 것들보다 특별히 잘난 건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난 오늘도 이렇게 정신 승리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행은 가지 않은 곳, 선택하지 않은 곳에 대한 회한이 계속 남는 형태다. 시간은 유한하고 갈 곳은 무한하므로. 그 어디도 갈 곳이 안 되는 곳은 없으므로. 그 많은 곳 중에 갈 곳을 나는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그로 말미암아 다른 무언가를 안 가기로 선택했다는 것 또한 상정하는 것이므로 내 선택에 의구심과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 이럴 때는 그저 그곳은 신포도였을 거라고 온몸으로 세뇌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끊임없는 정보검색과 비교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게 여행의 칠 할은 자기 합리화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가지 않는 곳보다 가기로 한곳에 집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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