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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자적 Apr 14. 2019

타이베이의 둘째 날

오늘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오늘은 단수이를 가기로 했다. 단수이는 타이완의 최북단으로, 강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타이베이의 3박 4일 일정 대부분이 내륙에 치중해 있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유일한 지역인 단수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


 물은 내게 늘 특효약이었다. 이따금 마음이 착잡할 때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가곤 했다. 마포대교를 건너기만 하면 금방 여의도였다. 적당한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물을 가만 보면 희한하게도 마음이 금방 괜찮아졌다. 다리만 하나 건넜을 뿐인데 단조롭고 따분한 일상에서 격리되어 어디론가 멀리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무의미하게 매일 반복되는 것들로부터 잠식될 뻔한 날 건져 올려주었다.


 여행 중임에도 가끔 여행임을 까먹을 때가 있다. 여행이 매번 설렘 그 자체면 좋으련만, 여행도 결국은 의식주가 있는 하나의 똑같은 생활패턴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마음이 권태로워질 때가 있다. 이럴 때 강이든, 바다든, 호수든 간에 일단 물을 만나면 말이 달라진다. 그 순간이면 외부의 대상들에 무료한 나는 더 이상 없다. 여행의 감각은 다시 예민해지고, 차분히 가라앉았던 마음 역시 처음의 것으로 돌아간다. 이 소란스러운 흥이란 곧 여행의 생명이다.


 물은 이렇듯 본연의 방식으로 여행이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환기해준다.

 이런 생각에 오늘이 어제보다는 조금 더 설렜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단수이로 간다. 지하철엔 사람들이 벌써 가득하다. 창 너머로 서울의 익숙한 풍경과 서울과 동떨어진 풍경이 차례로 스쳐 지나간다. 타이베이역에서 1시간가량 이동한 후 단수이 역에 도착한다. 역을 나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방면으로 무작정 향하려다가 혹시나 하고 지도를 본다. 근데 이게 웬걸,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라고 나온다. 평소라면 구글맵에 무한한 경의와 신뢰를 표하며 그를 그대로 따랐을 나지만, 타이베이에 도착한 첫날 그에게 당한 쓰린 기억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방황한다. 그날 구글맵은 엉뚱한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 바람에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 캐리어를 신나게 끌어대며 꽤나 고생했었다.


 고민 끝에 정말 딱 한 번만 더 너를 믿어보겠다며, 이번에도 틀리면 너와 영영 작별하겠다고 다짐하며, 그가 이끄는 왼쪽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가면서도 확신이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다행히 그곳이 맞았다. 웬만한 관광지에선 무리에 섞여 가는 것이 보통 맞는 경로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만큼은 예외였다.


 나는 이것을 여행자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단수이 역에 도착한 사람들 모두가 여행자일 거라 지레짐작하는 일반화의 오류. 다들 나와 같은 처지로 당연히 똑같은 곳을 향할 것이라 오해하는 오류. 단수이 역을 등지고 왼편(홍마오청 쪽)밖에는 가능한 경로가 없는 것처럼 단수이를 대하는 안일한 태도의 오류. 나와 같은 쪽을 택하지 않은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가. 버스를 타고 홍마오청으로 가는 내내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곳이 곧 삶이고 생활일 그들의 단수이를 상상하며, 서로가 가는 방향이 마냥 같을 수만은 없다는 것에 이상하게 마음이 저렸다.


 홍마오청에 도착했다. 홍마오청은 스페인, 네덜란드 식민 시대 그들에 의해 지어져 그들의 편의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그 옆엔 구 영국 대사관도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바다와 만나는 지리적 이점 때문인 지, 과거 이 지역에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입이 잦았던 모양이다. 처음 이 건물들을 보았을 땐 유럽풍으로 지어진 붉은빛 외관이 정갈하니 아름답다고 느꼈는데  한 나라의 아픔이 배어진 곳이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대도 청명한 하늘 아래 놓인 반듯한 건물들은 아무래도 보기 좋았다.


 홍마오청 옆으로는 담강고등학교, 진리대학교가 나란히 있었다. 담강고등학교는 외부인 출입 불가라 교문 밖에서 잠시 지나가며 본 게 다지만 그 찰나에도 과연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배경이 될 만한 곳임을 실감했다. 고등학교가 마치 대학같이 캠퍼스가 크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나무가 몹시 울창했다. 쉬는 시간인 지 교정을 돌아다니는 아이들 몇이 눈에 띄었다. 참 풋풋해 보였다. 이렇게 멀찍이서 그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다. 그저 하루하루가 웃을 일로만 차고 넘칠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내가 이미 그 시절을 어느 정도 끝내고 관망하는 자로 들어섰기 때문에 감히 할 수 있는 생각일 테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항상 말했다. 이 시절이 지금은 지긋지긋하겠지만 다 지나고 나면 돌아오고 싶을 거라고. 가끔씩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단 생각은 아직까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불확실한 미래를 다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겁나는 일이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면 저 아이들도 각자의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미 그 시기를 건너온 자로서, 각자의 고민거리들을 안고 불안한 시간들을 응당 겪어내고 있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진리대학교 캠퍼스는 다행히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그곳을 거닐자니 나의 대학시절 몇 가지 이미지들이 가슴에 차오른다. 그 생각들로 가슴이 심하게 웅웅거린다.


 봄이 오면 형형색색의 꽃으로, 여름이 오면 짙은 녹음으로, 가을이 오면 은은한 단풍으로, 겨울이 오면 새하얀 눈으로 사방이 덮이며 계절의 향을 물씬 느끼게 해 주던 캠퍼스. 완벽하리만큼 아름다웠던 캠퍼스를 풍경삼아 그곳을 쏘다니던 내 모습. 주전공은 경영학이지만 복수전공으로 택한 심리학에 더한 애정을 품던 학교 생활. 신세계관과 포스코관을 바쁘게 오가며 단련된 체력. 경영관에서 교내로 들어가는 골목길 항상 매섭게 불던 바람. 서양미술의 이해, 위험판단 심리학 등 설레는 마음으로 듣던 수업들. 반면 너무 듣기 싫었던 우글과 대영, 고영. 철회, C+, 재수강, B-를 거듭하다가 결국 학점포기로 마무리한 애증의 미시경제학 수업까지.


 면접을 보면서까지 꼭 들어가고 싶었던 동아리에 합격해 너무 기뻤던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 시절 매주 밥을 사주던 동아리 선배. 고마운 사람. 아직도 생각나는 포포나무와 빵낀과. 다른 학교 친구들이 오면 별 고민 없이 직행하던 포포나무. 골목 끄트머리에 위치한 빵낀과의 늘 편안한 맛. 거기 아주머니가 날 참 좋아했었는데 아직도 기억해 주시려나. 후문에 있던 딸기골.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불고기 돌솥밥. 아직도 이따금 생각나는 곳. 교문 앞 줄 서 먹던 베이글 집. 베이글 맛을 처음 알게 해 준 곳. 어마어마했던 크림치즈 양. 그 바로 옆 내가 참 좋아했던 커피집. 아이스 모카가 특히 맛있어서 그것만 매일 먹었었는데. 모카 위 초코시럽을 매번 다르게 뿌려주던 가게 사장님. 이젠 둘 다 없어진 곳. 그땐 왜 그렇게 맛있는 게 많았을까.


 너무 예쁜 ECC. 논술고사를 보러 학교를 처음 방문했던 날부터 반했던 곳. ECC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릴 때 그 뿌듯함. 소파를 쟁취하기 위해 헤매던 시간들. 시간이 우연히 맞을 때면 감사히 타던 셔틀버스. 자주 가던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행사할 때면 몇십 미터씩 길게 늘어서던 줄. 늘 셔터를 누르게 했던 꼬꼬마 동산. 잉여계단에서 함께 했던 동기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아주 가끔씩 찾아갔던 도서관. 옆 학교랑 비교되는 아주 건전하고 조용한 축제. 그래도 금방 부친 빈대떡은 참 맛있었는데. 예쁜 조명에 공부할 맛 난 신한 열람실. 함께 치열하게 공부했던 이름 모를 선후배들. 매주 월요일 설레는 맘으로 읽었던 대학내일 잡지. 배고파질 때면 들리던 생협. 가끔은 긴 줄을 기다리면서까지 먹었던 이화사랑 참치김밥. 이 또한 지금은 사라진 곳.


 매 학기 수강신청에 번번이 망해 학점 6점 정도를 겨우 붙들고서 무거운 마음으로 맞이했던 개강. 수강 정정기간 내내 쥐 나도록 클릭질을 하며 모니터 앞에서 간절히 소원했던 시간들. 늘 11시 반 채플을 원했지만 역시 늘 실패하고, 10시 정각이면 정확히 닫히는 야속한 대강당 문 앞에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오르던 오전. 일상처럼 쏟아지던 팀플과 과제. 시험기간이면 빈 틈 없이 꽉 차곤 했던 열람실 풍경. 내가 아지트 삼았던 몇 곳들. 미팅과 소개팅. 캠퍼스를 오고 갔던 많은 사람들.


 한 번은 직장을 마친 평일 저녁, 동기들을 볼 겸 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한 학기만을 휴학하고 취업과 동시에 바로 졸업을 한 지라 아직 친한 동기들 대다수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들과 교정 잔디밭에 앉아 오레오 셰이크를 먹는데 그 순간 지난 대학생활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도처에 열린 가능성들로 여러 가지 미래를 그리며 설렜고, 그럼에도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찔하게 몰려올 때면 신촌이나 홍대로 건너가 가볍게 한숨 돌릴 수 있었던 시간. 무언가를 쟁취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놓치기도 했던 순간. 시간과 여유가 내 손아귀에 있던 시절. 가장 젊고 행복하고 찬란했던 우리.


 그날 옆에 있던 친구에게 부럽다, 란 말을 셀 수 없이 했다. 곧 졸업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직 학교에 두 발을 대고 있는 그 친구도, 한참 동안 이곳에 발을 담그고 있을 어린 친구들도, 거기 있는 모두가 부러웠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대도 난 잠시 발을 걸친 것뿐이니까. 난 잠시 들렀다가 금방 떠나야 하는 신세니까. 더 이상 이곳이 내 전부가 될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이질감과 괴리감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학교에 있는 시간은 좋았다. 외부의 어떤 자극도 감당할 자신이 없던 그날 저녁, 학교는 위로와 격려를 가장한 모진 말을 하며 날 억지로 단련시키지 않았다. 다만 날 가득 품어 주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찾아가든 간에 항상 내게 이런 평안을 줄 거라는 듯이.


 그 따스했던 어느 봄 내 눈에 비친 캠퍼스 전경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조금은 철없었을 그 시절이 평생 그립고 또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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