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대나무 장대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곧게 뻗은 저 대나무들 틈새로 금방이라도 산짐승이 나타날 것만 같다. 일찍이 찾아간 숲은 사람도 없는 데다 안개까지 껴 스산한 분위기를 더욱 자아내고 있었다.
아홉산숲은 아홉 골짜기를 품고 있다는 뜻으로, 400년 가까이 한 가문에 의해 유지되어 오던 사유지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지는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숲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대나무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그 외 금강소나무, 편백나무, 참나무 등의 군락지도 꽤 볼 만했다. 조선 후기부터 같은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이들을 보자니 살짝 숙연해지기도 했다. 처음엔 다 비슷해 보였는데 계속 걷다 보니 이젠 얼추 구분이 되는 것도 같다.
살다보면 이런 게 참 신기하다. 처음엔 내게 무의미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유의미한 것들로 변해 있을 때. 심지어 그 과정은 항상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아홉산숲의 핵심은 역시 대나무다. 1시간 남짓한 산책로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대숲을 크게 두 곳 만날 수 있는데, 특히 두 번째가 압권이었다. 만 평 이상 되는 규모를 빽빽이 드리운 대나무들의 위엄이 상당히 대단했다.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갑자기 빨려 들어온 느낌이랄까. 저 멀리서 무사가 대나무를 칼로 휙휙 가르며 날아든다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어 보인다.
끝없는 대나무들의 행렬을 가만 바라본다. 선비의 올곧은 기개 같은 게 느껴진다. 그들을 양옆에 끼고 길을 지난다.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게 옷깃을 스친다. 여름의 열기가 이 곳까진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역시 숲은 숲이었다. 숲 내음에 정신이 개운해진다.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쉰다. 대숲을 가득 메우던 상쾌한 공기가 내게 와 그대로 닿는다. 오랜 시간 묵혀온 뭔가가 나가고 새로운 뭔가로 내 몸이 채워지는 듯 하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