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강민준은 약속 장소인 한정혁의 사무실 앞에 섰다.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초고층 빌딩, 그 꼭대기 층에 위치한 사무실은 입구부터 위압감이 느껴졌다.
'어젯밤 그 남자는 대체 정체가 뭘까…'
어젯밤, ‘망할 운명’이라는 폭언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는 오늘 아침, ‘첫 번째 레슨’이라며 주소를 보내왔다. 반신반의하면서도, 민준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까지 왔다.
"들어와."
사무실은 거대하고 텅 비어 있었다. 한쪽 벽면 전체가 거대한 스크린이었고, 그 앞에는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정혁은 그 스크린에 떠 있는 대한민국 전도를 등지고 서 있었다.
"강 사장, 어제 내가 왜 자네 가게가 망할 운명이라고 했는지 아나?"
한정혁이 몸을 돌리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어제보다 한층 더 날카로웠다.
"그건… 제가 상권을 잘못 봤기 때문 아닙니까?"
"틀렸어."
단호한 대답이었다.
"자네는 상권을 잘못 본 게 아니야. 봐야 할 것을 아예 보지 않았지. 자네는 자신이 참가한 게임의 종류 자체를 착각했어. 동네 조기축구회 전술을 들고 월드컵 본선에 나선 셈이라고."
한정혁은 리모컨을 조작해 벽면의 지도를 확대했다. 민준의 망한 가게가 있던 홍대 상권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자네가 본 건 이거였겠지."
그는 가게 앞 거리, 유동인구, 바로 옆 경쟁 치킨집을 클로즈업했다.
"이게 바로 '돋보기'라네. 개인 창업자의 시점이지. 가게 앞 보도블록 질감, 창문에 붙은 임대료, 지나가는 손님 표정까지 생생하게 보여. ‘내’가 월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옆 가게를 이길 수 있을까?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한 생존의 관점이야."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했다. 그는 오직 가게 주변 50미터 안의 세상에만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브랜드를 책임질 본사의 시점은 달라야 하네. 아니, 달라야만 해."
순간, 한정혁이 손짓하자 스크린의 화면이 순식간에 서울시 전체, 그리고 대한민국 전도로 바뀌었다. 마치 인공위성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본사에게 필요한 건 돋보기가 아니라, 바로 이 '위성 지도'야."
민준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첫째, 목표가 다르다. 자네의 목표는 '생존'이었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지배'가 되어야 해. 명품 브랜드들이 왜 천문학적인 임대료를 내면서 청담동에 거대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까? 당장의 수익 때문이 아니야. 그건 브랜드의 위상을 과시하고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선전포고일세. 생존을 위한 싸움과 지배를 위한 전쟁은 쓰는 무기부터가 달라."
"둘째, 보는 단위가 다르다. 자네에게 가게는 하나의 빛나는 '점(點)'이었겠지. 하지만 본사는 점들을 이어 '선(線)'을 만들고, 선들을 엮어 '면(面)'을 장악해야 하네."
한정혁은 스크린 위 2호선 라인을 붉은 선으로 그었다.
"가령 '2호선 라인을 장악한다'거나, '마포구의 시장 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식의 전략이 필요하단 말이야. 자네의 홍대점(새로운 점)이, 잘나가던 강남점(기존의 점)의 손님을 뺏어오진 않을까(자기잠식) 하는 계산까지도 말이지. 돋보기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전체의 조화, 세력 균형을 보는 것. 그게 본사의 관점이야."
민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기잠식?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셋째, 시간의 축이 다르다. 자네는 '오늘의 매출'에 목숨 걸었겠지만, 우리는 '미래의 가치'에 투자해야 해. 지금은 허허벌판이어도 3년 뒤 수만 세대 아파트와 지하철역이 들어설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우리 제국의 새로운 영토가 될 최우선 후보지야. 현재의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거지."
"마지막으로, 핵심 질문이 바뀐다."
한정혁은 민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네는 계속 물었겠지. '내가 여기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이제 그 질문은 버리게.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해. '이곳이 우리 브랜드와 맞는가? 우리의 다른 가맹점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우리의 미래 성장에 기여하는가?'"
주어가 '나'에서 '우리'로 바뀌는 순간, 돋보기는 위성 지도가 된다네."
민준은 거대한 스크린과 한정혁을 번갈아 보며 망연자실했다. 그는 장사를 한 게 아니었다.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민준의 머릿속에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 같은 것이 떠오르는 환각을 느꼈다.
[SYSTEM: 새로운 관점을 습득했습니다.]
[제국 건설자의 도구함 No.2]
- 획득한 도구:
본사의 관점: 위성 지도 (등급: C)
- 도구 설명: 개별 나무가 아닌 숲 전체를 조망하여, 브랜드 제국의 영토 확장 전략을 수립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결정 프레임워크.
한정혁이 책상 위 태블릿을 민준에게 쓱 밀었다.
"첫 번째 과제다. 자네가 관리하는 지역의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 매장과 경쟁 매장을 다른 색깔 핀으로 찍어봐. 그리고 자문해보게. 빈틈은 어디에 보이는가? 1년 뒤, 그곳 상권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그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돋보기를 버릴 준비가 되었다면, 자네의 위성 지도를 활성화시켜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