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객은 ‘김민지’입니까?

브랜드 제국을 건설하는 과학적 출점 전략

by 잇쭌

한정혁의 사무실. 거대한 스크린에는 강민준이 밤새 분석한 상권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경쟁사 위치, 유동인구 흐름, 배후세대 정보까지. 어설프지만, 분명 지난번과는 다른 '위성 지도'의 관점이 엿보였다.


"흠, 돋보기는 버린 것 같군."


한정혁의 칭찬에 민준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지도 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하루 유동인구가 50만입니다. 제가 성공했던 첫 가게와도 가깝고, 데이터상으로는 완벽한 A급 입지입니다."


"좋아. 그럼 거기서 누구에게 치킨을 팔 건가?"


"물론… 그 앞을 지나는 20~30대 젊은 층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정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리모컨을 눌러 민준의 지도를 꺼버리고, 대신 낡은 샌드위치 가게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자네, '어반 그린'이라는 브랜드를 아나?"


"아니요, 처음 듣습니다."


"그럴 수밖에. 2년 전에 야심 차게 시작했다가 6개월 만에 전부 폐업했으니까."


한정혁은 '어반 그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쁜 20~30대 직장인을 타겟으로, 유동인구가 넘쳐나는 거대 환승역사에 1호점을 낸 프리미엄 샌드위치 브랜드. 데이터상으로는 완벽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


"왜 실패했을까? 그곳을 지나는 '20~30대'는 건강한 한 끼를 원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1분 1초가 아쉬워 뛰어가는 '환승객'이었기 때문이지. '어반 그린'은 허공에다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던 셈이야."


민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소개팅 약속을 잡는 멍청이가 여기 또 있군. 그래서 우린 '페르소나(Persona)'라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네. 내 브랜드를 사랑해 줄 단 한 명의 가상 인물을 만드는 작업이지."


한정혁은 화면을 바꿔, '마라홀릭'이라는 마라탕 브랜드의 로고를 띄웠다.


"이 친구들은 제대로 했어. 먼저 매장 데이터와 SNS 리뷰를 샅샅이 뒤졌지. 그랬더니 패턴이 보였어. '젊은 여성', '친구와 함께', '스트레스 해소', 'SNS 공유'."


그는 키워드들을 조합해 가상의 인물 프로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 김민지


나이/직업: 22세, 시각디자인과 대학생


라이프스타일: 맛집 탐방이 취미. 시험 기간엔 주 1회 '마라 수혈' 필수.


좌우명: "스트레스는 매운맛으로 푸는 거야!"



"이제 '마라홀릭'의 고객은 '1020 여성' 따위의 흐릿한 존재가 아니야. 바로 '대학생 김민지'지. 모든 결정은 '민지라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 하나로 통일되네."


한정혁은 지도 위에 두 개의 후보지를 띄웠다. A는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광화문, B는 개성 있는 가게가 모인 건대입구 뒷골목이었다.


"자네라면 어디에 출점하겠나?"


"데이터만 보면… 당연히 A입니다."


"과거의 '마라홀릭'도 그랬겠지. 하지만 그들에겐 '김민지'라는 나침반이 있었어. 나침반은 단호하게 B를 가리켰지. 광화문 직장인들은 '마라 챌린지'를 할 여유가 없어. 하지만 건대 뒷골목은 '김민지'와 친구들의 놀이터거든.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민준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첫 번째 가게가 성공한 이유, 두 번째 가게가 실패한 이유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남역 뒷골목은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려는 직장 여성들의 '놀이터'였고, 홍대 메인 거리는 그의 고객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류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SYSTEM: 새로운 도구를 장착했습니다.]


[제국 건설자의 도구함 No.3]


- 획득한 도구: 브랜드의 나침반 (페르소나) (등급: D)


- 도구 설명: 브랜드의 운명을 걸어야 할 단 하나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필수 장비. 감과 추측의 안개를 걷어내고 목표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정혁이 민준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위성 지도로 지형을 파악했다면, 이제 나침반으로 갈 길을 정해야지. 자네의 성공했던 1호점 데이터를 전부 긁어모아. 그리고 자네 브랜드의 '김민지'를 만들어와."


사무실을 나서는 민준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나의 '김민지'는 누구일까?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는 더 이상 지도 위의 숫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 숨어 있을, 자신의 브랜드를 사랑해 줄 단 한 명의 고객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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