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가격'이라는 유령

by 잇쭌

유행은 파도와 같다.


밀려오는 속도만큼이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속도도 무섭게 빠르다.


'멜트(Melt)'의 성공 신화를 이끌었던 '치즈 폭포'와 '불 쇼'는 두 달 만에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다. SNS에는 이미 '멜트'를 베낀 수십 개의 아류작이 판을 쳤다. '맛집'이라는 왕관은 너무나도 무거웠고, 그 유효기간은 처참할 정도로 짧았다.


차진우의 가게 '소담'이 '초심 잃은 집'으로 낙인찍히며 점심 장사마저 망가지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맞은편 '멜트'의 대기 줄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진우는 텅 빈 홀에서 맞은편 가게를 내다봤다. 백현석 역시 초조한 듯,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맛집 1등'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공포는, '맛집이 못 된' 공포와는 또 다른 종류의 지옥일 터였다.


'저 녀석은 이제 어떡할까?'


진우의 조롱 섞인 호기심은 며칠 뒤, 거대한 현수막 하나로 바뀌어 돌아왔다.

'멜트'의 외벽에, 진우가 내걸었던 A4 용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실사 현수막이 걸렸다.


[GRAND OPEN 2탄! 고객 감사 대축제!]

1미터 화염 파스타 (정가 40,000원) → 50% 파격 할인! 20,000원!

치즈 폭포 닭갈비 (정가 50,000원) → 50% 파격 할인! 25,000원!


진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4만 원? 5만 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멜트'의 1미터 화염 파스타는 처음부터 2만 원이었고, 닭갈비는 2만 5천 원이었다.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4만 원이나 5만 원에 팔아본 적이 없는 메뉴였다.


"미친놈... 저건 사기잖아!"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주방 입구에 기댄 채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의 '1천 원 인상'은 '초심을 잃은 배신'이 되고, 현석의 저 노골적인 '가격 부풀리기'는 '고객 감사 파격 할인'이 되는 세상. 이것은 부조리극이었다.


"사기라..."


그때, 텅 빈 줄 알았던 홀 구석, 가장 안쪽 테이블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모르게, '72시간 흑돼지 조림'을 깨끗이 비운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저건 사기가 아닙니다, 사장님. 저건... '마케팅'입니다."


남자는 빙긋 웃으며 현수막을 가리켰다.


"손님, 그게 무슨..."

"저 4만 원이라는 가격은 '실제 가격'이 아닙니다."


남자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저건 '유령 가격(Phantom Price)'이죠.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오직 '50% 할인'이라는 문구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태어난 유령이요."


진우는 남자의 조용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다.


"사람들은 2만 원짜리 파스타를 산 게 아닙니다. '4만 원짜리 파스타를 50%나 할인받아 2만 원에 먹는 쾌감', 그 '승리감'을 산 거죠. 저 백현석이라는 친구는 그걸 정확히 아는 겁니다."


남자는 마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 현석의 이름까지 정확히 불렀다.


"우리는 저것을 '기준점(Anchor) 효과'라고 부릅니다. 4만 원이라는 가짜 '정가'가 기준점이 되어, 2만 원이라는 '할인가'를 지극히 합리적인 소비처럼 보이게 만드는 덫이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걸어왔다. 그리고 진우의 입간판, '7,000원'을 지우고 '8,000원'을 쓴 자국을 손가락으로 쓱 훑었다.


"사장님은 '착한 가게'라는 프레임에 갇히셨고..."


그가 진우를 똑바로 바라봤다.


"...저 친구는 '할인율'이라는 더 교묘한 프레임에 스스로 갇힌 겁니다."

"......"

"사장님은 '도덕'에 발목을 잡혔고, 저 친구는 '심리'에 발목을 잡혔죠. 둘 다 가격표에 묶여있긴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사장님의 72시간짜리 철학도, 저 친구의 10초짜리 불 쇼도 아닌, '가격표'가 이 싸움의 주인공이 되어버렸군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진우는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 멍했다.


'맛집', '착한 가게', '정가', '할인가'...

자신은 지금 요리사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프레임 전쟁터 한복판에 총 한 자루 없이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당신... 누굽니까?"


남자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단 세 글자만 적혀 있었다.


[컨설턴트 강민준]






4화에서 계속......





[3화 경영 인사이트: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와 유령 가격] 백현석('멜트')이 사용한 '정가 50% 할인'은 사기가 아니라 고전적인 '앵커링 효과' 전략입니다. 5만 원이라는 '정가'는 실제 판매 가격이 아닌 '유령 가격(Phantom Price)'입니다. 이 가격은 오직 고객의 머릿속에 '기준점(Anchor)'을 심기 위해 존재합니다.


고객은 '2만 5천 원짜리 닭갈비'를 산 것이 아니라, '5만 원짜리를 50% 할인받는 쾌감(승리감)'을 산 것입니다. 이처럼 가격은 절대적인 숫자가 아닌, 심리적인 인식의 싸움입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착한 가게'라는 또 다른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