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그 한마디가 차진우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밤, 가게 문을 닫고 텅 빈 홀에 앉아 그는 '소담'의 존재 이유를 되물었다. 자신의 72시간은, 고객의 10초짜리 질문 하나에 산산조각이 났다.
"맛집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새벽녘, 그는 비틀거리며 맞은편 '멜트'를 바라봤다. 이른 시간임에도 배달 앱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백현석의 불 쇼와 치즈 폭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맛집'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담'은 '맛집'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되어야 하나.
'맛집'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을 수 없다면, 아예 다른 길을 파야 했다. 진우는 원가 계산서를 꺼내 들었다. 임대료, 관리비, 식자재비... 72시간 흑돼지 조림의 원가율은 이미 45%를 넘기고 있었다. 여기서 더 낮출 품질도 없었다.
"그래... '맛'으로 안 된다면, '가격'이다."
그것은 철학의 포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타협이었다. 아니, 스스로는 '미끼'라고 위로했다. 일단 손님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싼 메뉴로 들어온 손님이, 언젠가는 자신의 진짜 요리, 그 72시간의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그는 며칠 밤낮으로 새로운 메뉴를 고안했다. 흑돼지의 자투리 부위와 값싼 전지를 섞어 매콤하게 볶아내는, 누구나 아는 그 맛. '제육덮밥'.
다음 날 아침, '소담'의 문 앞에는 A4 용지에 검은 매직으로 거칠게 휘갈겨 쓴 입간판이 세워졌다.
[점심 특선: 소담 제육덮밥. 7,000원]
강남역 한복판에서 7,000원짜리 점심은, 72시간 흑돼지 조림보다 더 비현실적인 가격이었다. 진우는 이 메뉴로 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아니, 한 그릇 팔 때마다 500원씩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첫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둘째 날, 근처 직장인 두엇이 반신반의하며 들어왔다.
셋째 날, 그 두 사람이 동료 대여섯을 데리고 왔다.
"와, 사장님.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가 나와요?"
"대박이다. 우리 회사 근처에 이런 데가 있었다니."
일주일이 지나자, '소담'의 점심시간은 난생처음으로 '웨이팅'이라는 것이 생겼다. 진우는 셰프가 아니라, 쉴 새 없이 제육을 볶아내는 주방 기계가 되었다. 홀로 서빙을 하느라 등은 땀으로 젖었지만, 텅 빈 가게를 지킬 때의 절망감보다는 견딜 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네 커뮤니티에 '소담'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제목: 강남역 물가에 일침을 가하는 '착한 가게'를 고발합니다.]
"여러분, '소담'이라는 식당 아시나요? 맞은편은 불 쇼, 치즈 쇼로 한 끼에 3만 원을 받는데... 이 집은 사장님이 미쳤어요. 국내산 돼지고기 제육덮밥이 단돈 7,000원입니다. 퀄리티도 미쳤어요.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런 곳은 돈으로 혼내줘야 합니다. ㅠㅠ #착한가게 #물가안정 #초심"
그 글은 순식간에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맛집'이라는 키워드 대신, '착한 가게'라는 새로운 꼬리표가 '소담'에 붙었다.
사람들은 이제 '소담'을 '착한 가게'라고 불렀다.
그들은 '착함'을 소비하기 위해 몰려왔다.
하지만 진우는 조금씩 위화감을 느꼈다.
그들은 오직 '7,000원짜리 제육덮밥'에만 열광했다. 진우가 그토록 맛보게 하고 싶었던 저녁의 메인 요리, '72시간 흑돼지 조림' 메뉴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장님, 여긴 제육이 제일 싸고 맛있네요. 굳이 비싼 저녁 요리는 안 하셔도 될 듯?"
손님의 무심한 칭찬이 비수처럼 들렸다. '소담'은 '깊은 맛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아니라, '싸게 한 끼 때우는 집'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식자재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20%나 올랐다. 한 그릇에 500원 손해 보던 것이, 이제 1,500원 손해로 늘어났다. 점심에 100그릇을 팔면 15만 원이 고스란히 적자였다.
진우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입간판의 '7,000원'을 지우고 '8,000원'으로 고쳐 적었다. 그 옆에 작게 덧붙였다. "재료비 인상으로 부득이하게..."
그날 오후, 바로 어제 '착한 가게'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던 커뮤니티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제목: '소담' 결국 초심 잃었네요.]
"어제 '착한 가게'라고 칭찬했더니, 오늘 바로 8,000원으로 올렸네요. ㅉㅉ. 이럴 줄 알았습니다. '착한' 게 아니라 그냥 손님 끌려는 '장사 속'이었네요. 천 원 차이지만 기분 더러워서 안 갑니다. 이 가격이면 그냥 근처 순댓국 먹죠."
진우는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초심'.
자신의 초심은 7,000원짜리 제육덮밥이 아니었다.
자신의 초심은 72시간 흑돼지 조림이었다.
자신을 '맛집이 아니다'라고 규정했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착하지도 않다'고 비난했다.
진우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 '멜트'를 바라봤다. 현석은 여전히 손님들과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그곳은 3만 원짜리 파스타를 팔아도 '착하지 않다'는 비난 대신 '돈이 아깝지 않다'는 환호를 받고 있었다.
'맛집'이라는 프레임에서 탈락한 자신은, 이제 '착한 가게'라는 또 다른 감옥에 갇혀버렸다.
"맛없는 집. 그리고 이젠... 착하지도 않은 집이 되어버렸다."
진우의 입에서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3화에서 계속......
[2화 경영 인사이트: 가격 포지셔닝(Price Positioning)의 덫] '착한 가격'은 '맛집' 프레임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한 '가격' 프레임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가격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순간, 기업은 지속 불가능한 '출혈 경쟁'에 빠집니다. 차진우는 가격을 '미끼'로 사용하려 했지만, 고객들은 가격을 '본질'로 받아들였습니다.
고객은 당신이 설정한 '가치'를 기억합니다. 가격으로 유인된 고객은 가격 때문에 떠나고, '착하다'는 칭찬은 가격 인상 시 '배신자'라는 낙인으로 되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