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준의 명함은 차진우의 주방 조리대 구석에서 일주일을 굴러다녔다.
그 일주일 동안 '소담'은 완벽한 유령의 집이 되었다.
'초심 잃은 집'이라는 낙인은 '맛집이 아닌 집'이라는 낙인보다 더 무서웠다. 그것은 '맛없음'의 영역을 넘어 '배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7,000원짜리 제육덮밥을 찾아왔던 손님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8,000원으로 올린 가격은 그들의 분노를 증명하는 표식처럼 입간판에 남아있었다.
'맛집'도 아니요, '착한 가게'도 아닌, 그저 '비싸고 맛없는 집'.
그것이 지금 차진우의 '소담'이 시장에서 차지한 좌표였다.
72시간 흑돼지 조림을 위한 육수는 끓어 넘치고 있었지만, 그 음식을 내어줄 손님이 없었다. 진우는 꺼져가는 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정성이, 이 72시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는 결국 너덜너덜해진 강민준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
자존심 따위는 사치였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컨설팅... 받고 싶습니다."
강민준의 사무실은 그가 입고 있던 슈트처럼, 차갑고 군더더기 없었다. 화려한 트로피나 요란한 '성공 사례' 액자 대신,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경제학, 심리학, 마케팅 원서들이었다. 이곳은 '요리'를 논하는 곳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해부하는 수술실에 가까웠다.
"다시 뵙네요, 차진우 셰프."
강민준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추가 질문도 없이 진우를 맞았다.
"컨설팅 비용은... 나중에 성공하시면 그때 받겠습니다. 대신, 제 진단은 고통스러울 겁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진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뭐든...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우가 앉은 소파 맞은편의 거대한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제가 어제 '소담'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손님이 아닌, 컨설턴트로서 말이죠."
진우는 긴장했다. 이제 저 냉철한 입에서 자신의 요리에 대한, 72시간 정성에 대한 평가가 나올 터였다. 어쩌면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는.
"음식은, 훌륭했습니다."
진우의 표정이 순간 환해졌다.
"역시, 맛은..."
"하지만,"
강민준이 매직펜 뚜껑을 열며 진우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소담'은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차 셰프."
그가 화이트보드 중앙에 두 단어를 썼다.
[맛집 vs 착한 가게]
"셰프님은 지금 이 두 개의 프레임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시죠?"
"......그렇지 않습니까?"
"틀렸습니다."
강민준이 'vs' 표시에 X자를 그었다.
"셰프님은 '맛집' 프레임에서 패배하자, 곧바로 '착한 가게' 프레임으로 갈아탔습니다. 7,000원짜리 제육덮밥. 그건 철학이 아니라 도피였어요. '맛'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가격'으로라도 인정받고 싶었던 겁니다."
진우는 정곡을 찔린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셰프님은 지금... '맛집'이라는 기준이든, '착한 가게'라는 기준이든, 남이 정해놓은 그 기준 안에서 '최고(Best)'가 되려고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강민준이 '최고'라는 단어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한번 물어봅시다. 셰프님이 생각하는 '최고의 맛집'은 뭡니까? 72시간 끓인 깊은 맛입니까?"
"물론입니다."
"좋아요. 하지만 시장은, 그리고 저 맞은편 '멜트'의 백현석 대표는, '최고의 맛집'을 '최고의 비주얼'이라고 정의해버렸습니다."
강민준이 '최고' 밑에 '비주얼'이라고 썼다.
"셰프님은 '미각'이라는 운동장에서 싸우려 하는데, 백 대표는 이미 고객들을 전부 '시각'이라는 운동장으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고객들은 더 이상 혀로 맛보지 않아요. 눈으로 맛보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맛봅니다."
"......"
"차 셰프님."
강민준이 진우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왜 그들의 운동장에서 싸우려고 하십니까?"
"......"
"백현석 대표는 '누가 더 많은 치즈를 붓는가', '누가 더 화려한 불 쇼를 하는가'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셰프님, 그들보다 더 많은 치즈를 부을 수 있습니까? 그들보다 더 화려한 불 쇼를 하고 싶으십니까?"
진우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가장 경멸하는 방식이었다.
"셰프님은 지금, 높이뛰기 경기장에 가서 '나는 씨름을 제일 잘한다'고 외치고 있는 격입니다. 당연히 지는 싸움이죠. 심판도, 관중도 모두 높이뛰기를 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강민준이 매직펜을 내려놓았다.
진우의 자부심, 그의 72시간, 그의 철학이 '관중 없는 씨름'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절망감이 진우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진우의 목소리가 모기처럼 기어들어갔다.
"요리를... 접어야 합니까?"
"아니요."
강민준이 화이트보드의 모든 글씨를 지우개로 깨끗이 지웠다.
"이제부터, '최고'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가 화이트보드 정중앙에, 크고 힘 있는 글씨로 단 하나의 단어를 적었다.
[유일(Only)]
"남이 만든 운동장에서 1등 하기를 포기하십시오.
우리는 이제부터, 차진우 셰프만이 심판이고, 차진우 셰프만이 유일한 선수인...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 겁니다."
5화에서 계속......
[4화 경영 인사이트: '최고(Best)'가 되려는 경쟁의 함정] 컨설턴트 강민준의 핵심 진단은 "왜 남이 만든 운동장에서 1등을 하려 하는가?"입니다. 차진우는 '맛'이라는 운동장에서 1등을 꿈꾸지만, 시장의 룰은 이미 백현석에 의해 '비주얼'로 바뀌었습니다.
'최고(Best)'가 되려는 전략은 나를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만듭니다.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룰을 따르거나(치즈를 더 붓거나), 룰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