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Only)..."
차진우는 강민준의 사무실을 나온 뒤에도 며칠을 그 단어만 곱씹었다. 그 단어는 희망이면서 동시에 절망이었다. '유일함'이라니. 그것은 '노마(Noma)'처럼 숲에서 개미를 채집하거나, '엘 불리(elBulli)'처럼 요리를 분자 단위로 해체하는 천재들의 영역처럼 들렸다.
"나 같은 평범한 놈한테... '유일함'이 있기나 한 건가?"
진우는 '소담'의 텅 빈 주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맞은편 '멜트'는 '50% 할인' 현수막 덕분에 다시금 손님들로 북적였다. 저렴한 '유령 가격'에 열광하는 손님들을 보며, 진우는 '유일함'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공허하고 사치스러운지 절감했다.
"차라리... 나도 50% 할인이나 붙일까?"
패배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때, 강민준이 예고 없이 '소담'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파일이 들려 있었다.
"아직도 '최고'의 미련을 못 버리신 표정이군요."
강민준은 텅 빈 홀을 쓱 둘러보며 말했다.
"유일함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진우가 패배를 인정하듯 말했다.
"저는 르네 레드제피가 아닙니다. 개미 요리 같은 건 할 줄 모릅니다."
"틀렸습니다."
강민준이 파일을 테이블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당신은 지금 '유일함'을 '기이함(Weird)'과 착각하고 있습니다. '유일함'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당신 안에 있는 것, 당신이 '비효율'이라고, '구식'이라고, '돈이 안 된다'고 스스로 낙인찍어버린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 안의 것...?"
"파일을 여시죠. '소담'의 지난 3개월 치 원가계산서와 레시피 분석 자료입니다."
강민준은 이미 진우가 제출했던 모든 자료를 완벽하게 분석해 온 터였다.
"차 셰프. 내가 이 자료를 보면서 아주 흥미로운 걸 발견했습니다."
강민준이 '72시간 흑돼지 조림' 레시피가 적힌 페이지를 가리켰다.
"이게 뭡니까? '1차 침지(沈漬), 2차 휴지(休止), 3차 정(定)'. 이게 무슨 무협지 구결이라도 됩니까?"
"아... 그건."
진우는 얼굴을 붉혔다. 그건 할머니가 쓰시던 방식을 그저 한자로 옮겨 적은, 그만의 비밀 레시피였다.
"설명해보시죠."
강민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냥... 남들처럼 압력솥에 넣고 끓이는 게 아닙니다. 첫 12시간은 씨간장에 담가(沈漬) 맛이 스미는 걸 기다리고, 다음 12시간은 건져내서 쉬게(休止) 하며 육즙을 가두고, 마지막 48시간 동안 낮은 온도에서 은은하게 조려(定) 형태를 잡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72시간입니다."
진우는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비효율의 극치죠."
"아니요."
강민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흥분이 실렸다.
"이것은 비효율이 아닙니다. 이것은 '카테고리'입니다."
"카테고리...라고요?"
"차 셰프. 당신은 지금까지 손님들에게 '72시간 흑돼지 조림'을 팔았습니다. 그건 '최고(Best)'의 영역입니다. '나는 너희보다 70시간 더 끓였어!'라는, 그저 '더 오래' 끓인 조림 요리일 뿐이죠. 하지만 방금 당신이 설명한 것은 '조림(Braising)'이 아닙니다. 이건... 이건 완전히 다른 장르입니다."
강민준이 냅킨에 진우가 말한 한자 두 개를 적었다.
담글 '침(沈)', 머무를 '정(定)'.
"당신의 할머니는 이걸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그냥... '간장에 재워 둔다'고 안 하시고, 맛이 스며들고 안에 머무르게 한다... '맛이 잠긴다(沈)'고 하셨습니다."
"그겁니다."
강민준이 벌떡 일어섰다.
"우리는 이제 '소담'을 '맛집'이나 '밥집'으로 팔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림 요리'를 파는 것도 아닙니다."
강민준은 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선언했다.
"앞으로 '소담'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통 침정(沈定) 방식으로 요리하는 한식당'이 되는 겁니다."
'침정(沈定)'.
맛을 가라앉히고(沈) 정착시킨다(定).
할머니의 낡은 방식을 설명하던, 진우 스스로 '비효율'이라 부끄러워했던 그 모든 과정이, '침정'이라는 단어 하나로 재정의되는 순간이었다.
"차 셰프. 당신은 '맛집'이 되려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강민준이 파일을 덮었다.
"우리는 '침정'이라는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 겁니다. 그 운동장에서 선수는 차진우 셰프 당신 하나뿐입니다. 심판도 당신이고, 룰도 당신이 정합니다. 당신의 72시간은 더 이상 '비효율'이 아니라, '침정'이라는 카테고리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시간'이 됩니다."
진우는 '침정'이라고 적힌 냅킨을 멍하니 바라봤다.
'맛집'도, '착한 가게'도 아닌, '침정'.
"손님들이... 알아줄까요?"
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죠."
강민준이 냉정하게 답했다.
"'맛집'을 검색하는 사람들은 못 알아볼 겁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을 타깃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럼 누구를..."
"우리의 타깃은, '맛집'에 질린 사람들, '불 쇼'가 아니라 '철학'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 '유일한 경험'에 기꺼이 제값을 지불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강민준이 가게 문을 향해 걸어가다 멈춰 섰다.
"차 셰프. 숙제입니다. '소담'의 메뉴판을 전부 버리십시오. 그리고 '침정'이라는 철학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메뉴판을 새로 만드세요. '맛집' 사장이 아니라, '침정'이라는 장르의 유일한 마스터로서 말입니다."
6화에서 계속......
[5화 경영 인사이트: '유일함(Only-ness)'을 통한 카테고리 창출] '최고(Best)'가 '비교'의 영역이라면, '유일(Only)'은 '정의(Definition)'의 영역입니다. 강민준은 차진우가 '비효율'이라고 부끄러워했던 '72시간 조림 방식'을 '침정(沈定)'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재정의했습니다.
약점(비효율적인 72시간)이 '침정'이라는 철학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강점으로 바뀌는 순간, '소담'은 더 이상 다른 맛집과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침정' 요리를 하는 유일한 식당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