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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즉시' 행복해지고 싶을까?

숏폼, 마라탕, 랜덤박스 시대에 식당이 줄 수 있는 것

by 잇쭌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몇 번이고 누릅니다. 1분짜리 유튜브 영상도 1.5배속으로 봅니다. 주문한 커피가 3분만 늦어져도 초조해집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기다림'을 힘들어하게 됐을까요?


퇴근길 지하철, 고개를 든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모두가 손안의 작은 화면, 15초짜리 숏폼 비디오가 주는 찰나의 쾌락에 빠져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인 날이면 어김없이 혀가 얼얼한 마라탕이나 '엽기 떡볶이'를 찾습니다. SNS 피드에는 1만 원짜리 '랜덤박스'에서 '대박'이 터졌다는 인증샷이 넘쳐납니다.


숏폼, 매운 음식, 그리고 랜덤박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현상에 하나의 거대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사회가, 그리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뇌가 '즉각적 보상(Immediate Reward)'을 갈망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정의 즐거움보다는 '결과'를, 그것도 '즉시' 얻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그저 한탄스러운 사회 비평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당장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수많은 '공간'과 '식당'이 마주한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시장의 변화'입니다.


고객의 뇌가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환대' 방식도 변해야 합니다.


1. 숏폼: '기다림'이라는 근육을 퇴화시킨 뇌


우리의 뇌는 숏폼이라는 '디지털 슬롯머신'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스크롤'하는 행위는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 영상이 재밌을지(보상) 없을지(꽝) 모르는 '불확실한 보상'에 뇌는 도파민을 분출합니다. 15초 안에 즉각적인 자극(웃음, 놀라움, 경이로움)이 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죠.


이 행위가 매일 반복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의 뇌는 '기다림'을 '지루함' 혹은 '고통'으로 느끼도록 훈련받습니다. '참을성'이라는 근육이 퇴화하는 겁니다.


이 뇌를 가진 고객이 우리 가게에 옵니다.


키오스크 주문이 조금만 복잡해도(인지적 노력을 요구) 짜증을 냅니다. 음식이 15분만 늦어져도(기다림을 요구) 초조해합니다. 메뉴판의 설명이 길면(이해력을 요구) 읽지 않고 "뭐가 제일 빨라요?"라고 묻습니다.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미국의 스타벅스가 '모바일 오더'에 사활을 걸고, 국내의 수많은 F&B 브랜드가 '테이블 오더' 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는, 단지 '효율' 때문만이 아닙니다. 고객의 '기다림'이라는 고통을 1초라도 줄여주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 매운맛: '고통'으로 '고통'을 잊는 즉각적 해방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날, 우리는 왜 '엽기 떡볶이'나 '매운 마라탕'을 찾을까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마음의 고통'은 모호합니다. 하지만 '매운맛'이라는 '혀의 고통'은 아주 즉각적이고 명확합니다.


뇌는 캡사이신으로 인한 통증을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이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엔도르핀'이라는 자연 진통제(쾌감 물질)를 뿜어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자가 치유'입니다.


고객은 '스트레스'라는 큰 고통을 '매운맛'이라는 더 즉각적인 고통으로 덮어버리고, 그 대가로 '엔도르핀'이라는 즉각적인 보상(해방감)을 얻어가는 겁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힘은 없으니, 가장 빠르고 확실한 '화학적 위로'를 선택하는 셈입니다.


3. 랜덤박스: '물건'이 아닌 '설렘'을 사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랜덤박스'입니다.


우리는 왜 '랜덤박스'를 열까요? 5만 원짜리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1만 원짜리 상자에서 5만 원짜리 '대박'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돈을 지불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상자를 여는 순간의 '설렘'입니다. '확률'이 주는 짜릿한 기대감이죠.

이 '설렘'의 심리는 외식업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오마카세'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주방장 특선'이라는 말은, 사실 "나는 돈을 낼 테니, 당신이 나를 '랜덤박스'처럼 설레게 해달라"는 계약입니다. 다음에 어떤 초밥이 나올지 모르는 그 '기대감'이 음식값에 포함된 것입니다.


단골이 오면 주방장이 메뉴에도 없는 안주를 쓱 내어주는 문화, "오늘은 이게 좋다"며 덤을 얹어주는 시장의 인심. 이 모든 것이 "혹시 나도?"라는 '확률적 기대감'을 심어주어 고객의 뇌를 즐겁게 합니다.


'차가운 도파민'에서 '따뜻한 위로'로


자, 그렇다면 이 '즉각적 보상'에 중독된 사회에서, 우리 식당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흐름에 편승해 더 자극적인 메뉴, 더 도박적인 이벤트를 만드는 것만이 답일까요?


저는 그곳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숏폼, 매운맛, 랜덤박스가 주는 쾌감은 차갑고, 일회적이며, 종종 고독합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혼자 웃고, 혼자 고통을 참아내고, 혼자 상자를 뜯습니다. 이런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할 뿐, 결코 '충성심'이나 '애정'을 만들지 못합니다.


하지만 외식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우리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곳이죠.


우리의 기회는 '차가운 도파민'을 '따뜻한 위로'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하나. '숏폼'의 즉각성을 '환대'로 바꿉니다.


고객이 문을 여는 0.5초. 스마트폰보다 더 빠르게 그들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테이블에서 활활 피어오르는 '불 쇼',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피어오르는 플레이팅. 이것은 '현실판 숏폼'입니다. 하지만 혼자 보는 영상이 아닌, 테이블의 모두가 '함께' 경험하는 즐거운 '순간'입니다.


둘. '매운맛'의 해방감을 '공감'으로 바꿉니다.


고객은 '해소'를 원합니다. 엽기 떡볶이가 '고통'으로 위로한다면, 우리는 '공감'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비 오는 날 들어온 고객에게 "비 맞지는 않으셨어요?"라며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 메뉴를 고민하는 고객에게 "오늘은 유난히 이 생선이 좋습니다. 제가 책임질게요"라는 자신감 있는 추천. 이것은 뇌에 '엔도르핀'보다 더 강력한 '나는 대접받고 있다'는 즉각적인 '정서적 보상'을 줍니다.


셋. '랜덤박스'의 설렘을 '따뜻한 정(情)'으로 바꿉니다.


'확률'이 주는 기대감은 차갑지만, '사람'이 주는 기대감은 따뜻합니다. 단골손님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몰래 내어주는 작은 케이크. 아이가 칭얼대자 메뉴에도 없는 계란찜을 "쉿, 비밀이에요"라며 건네는 것. 이것은 '확률적 도박'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환대'입니다. 고객은 "이 가게에 오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라는, 도박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재방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즉각적 보상'을 원하는 본능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저, 지치고 피곤한 현대인의 가장 솔직한 외침일지도 모릅니다.


외식업은 이 차가운 디지털 시대에 남은, 몇 안 되는 '따뜻한 아날로그 섬'입니다.


오늘, 당신의 공간은, 당신의 식탁은, 지친 마음을 위한 '따뜻한 설렘'을 준비해 두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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