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리사의 심장'으로 '공장장'의 삶을 살고 있다면.

'한소반쭈꾸미' 모델이 외식 경영자에게 던지는 질문

by 잇쭌

"언젠가 나만의 작은 식당을 열고 싶어."


많은 직장인이 가슴 한편에 품고 사는 꿈입니다. 그 꿈의 풍경은 대개 비슷합니다. 따뜻한 조명, 정갈한 나무 테이블, 내가 고른 음악. 그리고 나의 철학이 담긴 요리를 알아주는 단골손님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 "사장님, 오늘 파스타는 정말 예술이었어요." 이런 칭찬 한마디에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그런 낭만적인 '요리사(Chef)'의 삶 말입니다.


컨설턴트인 저 역시 수많은 예비 창업가들의 그런 반짝이는 눈을 보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의 낭만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외식업의 성공 공식으로 떠오른 '한소반쭈꾸미' 같은 '패키지형 전문점'입니다.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을 볼 새도 없이 인원수만 묻습니다. 5분 뒤, 테이블은 매콤한 쭈꾸미, 고르곤졸라 피자, 묵사발, 샐러드로 가득 찹니다. 식사를 마치면 옆 건물 전용 카페에서 무료 커피까지 줍니다. 이 모든 경험이 15,000원 안팎에서 해결됩니다.


이곳에 '요리사의 고뇌'나 '즉흥적인 손맛'이 끼어들 틈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빠르고, 정확하며, 일관적입니다. 이곳은 '식당(Restaurant)'일까요, 아니면 '외식업 제조 공장(Food Factory)'일까요?


그리고 오늘, 외식 창업을 꿈꾸거나 혹은 이미 그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당신에게, 저는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사장님, 당신은 '요리사'가 되고 싶었습니까, '공장장'이 되고 싶었습니까?"


낭만이 우리를 먹여주지 않을 때


이 질문이 낯설고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요리사지!"라고 항변하고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과거의 '요리사' 중심 모델은 왜 생존의 기로에 섰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치명적인 리스크 때문입니다.


첫째, '나'라는 요리사의 리스크입니다. 내가 아프면 가게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나의 '손맛'에 의존하는 가게는 내 컨디션에 따라 어제와 오늘의 맛이 달라집니다. 둘째, '주방장'이라는 더 큰 리스크입니다. 어렵게 모신 실력 좋은 주방장이 어느 날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가게의 '맛' 자체가 증발해 버립니다. 비법 레시피라도 챙겨 떠난다면, 그 가게는 사실상 폐업입니다.


여기에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건비와 임대료는, '낭만'이나 '예술혼'이라는 불확실한 가치에 가게의 명운을 걸기엔 너무 큰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 '사람에게서 오는 리스크를 없애고 싶다'는 절박함 속에서 '공장' 모델이 태어난 것입니다. 이 시스템은 사장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사장님, 더 이상 사람의 '손맛'에 의지하지 마세요. '시스템'을 만드세요. 주방장이 없어도, 갓 스무 살이 된 아르바이트생이 3일만 교육받아도 5분 안에 모든 메뉴를 완성할 수 있는 '공정(Process)'을 설계하세요. 소스는 공장(CK)에서 받고, 피자는 오븐 타이머가 구울 겁니다. 사장님은 '요리'가 아니라, 이 시스템이 오차 없이 돌아가는지 '관리'만 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요리의 타락이 아닙니다. 잔인한 외식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진화'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햄버거가 아닌 '시스템'을 판 남자


사실 이 '공장' 모델의 원조는 따로 있습니다. 맥도날드(McDonald's)의 신화는 햄버거를 발명한 맥도날드 형제(Artisan Chefs)가 아니라, 그들의 시스템을 복제해 전 세계로 팔아넘긴 레이 크록(The Factory Manager)이 완성했습니다.


맥도날드 형제는 '맛있는 햄버거를 기가 막히게 빨리 만드는' 천재 셰프였습니다. 하지만 레이 크록은 햄버거 맛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돈 버는 시스템'에만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패티의 무게(정확히 1.6온스), 감자튀김을 튀기는 시간(정확히 3분), 매장 바닥을 닦는 횟수까지 모든 것을 표준화했습니다. 셰프가 아닌 평범한 10대 아르바이트생이, 캘리포니아에서나 파리에서나 똑같은 맛의 빅맥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한 것입니다.


'한소반쭈꾸미' 모델은 정확히 이 철학의 21세기 한국형 버전입니다. '직화 쭈꾸미'가 빅맥이라면, '5분 서빙'은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Speedee Service System)입니다. '무료 피자'와 '무료 카페'는 고객의 '가심비'를 극대화하는, 시스템에 완벽하게 짜인 '부가 가치 패키지'입니다.


레이 크록은 "우리는 햄버거를 파는 외식업이 아니라, 부동산을 하는 시스템 사업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패키지형 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도 스스로 인정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쭈꾸미 요리를 파는 '요리사'가 아니라, '가심비라는 경험'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장'이다."


두 개의 길, 두 개의 예술


'요리사'와 '공장장'. 이 둘은 틀린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전쟁'을 치르고 '다른 예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리사(Chef)'의 길


이들의 적은 '어제의 나'입니다. "어제는 맛있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지?"라는 말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이들의 무기는 '손맛', '철학', '오리지널리티'입니다. 고객과의 '관계'를 통해 단골을 만듭니다.


이들의 고통은 '번아웃'입니다. 나의 노동력이 100% 투입되어야 하므로, 확장이 불가능합니다. 2호점을 내는 순간, 1호점이나 2호점 둘 중 하나의 맛은 변질되기 십상입니다. 돈은 버는 것 같은데 내 삶이 없습니다.


이들은 '요리'로 예술을 합니다.



'공장장(Factory Manager)'의 길


이들의 적은 '고정비(Fixed Cost)'입니다. 이들의 적은 '빈 테이블'과 '재고 로스(Loss) 0.1%'입니다.


이들의 무기는 '시스템', '매뉴얼', '데이터'입니다. 고객과의 '관계'가 아닌 '효율(Efficiency)'과 '가심비(Value)'로 승부합니다.


이들의 고통은 '손익분기점(BEP)의 압박'입니다. 5억을 투자해 80평 매장을 열고, 매일 200명의 손님을 받아야 겨우 '본전'입니다. 시스템이 멈추는 순간, 막대한 고정비에 깔려 질식합니다.


이들은 '스프레드시트'로 예술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술은 엑셀과 재무제표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분석했던 ESTJ(경영자형)는 '공장장'의 삶에서 희열을 느낍니다. 이들은 0%의 재고 로스율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P&L(손익계산서)에서 '예술적 가치'를 발견합니다.


반면, 우리가 분석했던 INFP(이상주의자형)는 '요리사'의 삶을 꿈꿉니다. 이들에게 '5분 서빙'과 '표준 레시피'는 자신의 예술혼을 억압하는 족쇄일 뿐입니다.



가장 외로운 성공: '공장'에 갇힌 '요리사'


제가 컨설팅 현장에서 만나는 진짜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외식 창업자 10명 중 8명은 '요리사(INFP)의 심장'을 가지고 '공장장(ESTJ)의 전쟁터'에 뛰어든다는 점입니다.


'요리사의 꿈'을 안고 창업했지만, 냉혹한 현실(인건비, 임대료)에 부딪혀 결국 '공장' 모델을 선택합니다. 시스템은 훌륭하게 구축했습니다. 매뉴얼대로 5분 안에 쭈꾸미 세트가 나갑니다. 고객들은 '가심비'에 만족하고 매출은 오릅니다. 통장에는 돈이 찍힙니다.


그런데 사장님, "그래서 지금, 행복하신가요?"


매일 아침, 당신은 '요리'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공정'을 관리하러 갑니다. 직원에게 "레시피대로 정확히 100g만 쓰라"고 다그치고, "왜 5분이 아니라 7분이 걸렸냐"고 질책합니다. 한때 당신이 하고 싶었던 창의적인 요리는 메뉴판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은 손님과 '관계'를 맺는 대신, '테이블 회전율'을 체크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외식업 경영자가 겪는 '가장 외롭고 슬픈 성공'입니다.


당신은 '공장장'으로서 성공했지만, '요리사'로서의 자아는 매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자아의 불일치'는 경영자를 서서히 갉아먹고, 결국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가장 큰 리스크가 됩니다.



글을 마치며: 사장님, 당신의 '행복'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저는 '요리사'가 옳다거나 '공장장'이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위대한 길입니다. 레이 크록이 없었다면 수십억 인구는 저렴하고 표준화된 햄버거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며, 수많은 스시 장인이 없었다면 우리의 미식 문화는 지금처럼 풍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는 없습니다.


'공장장'의 길을 선택했다면, '요리사'의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 특별 소스를 넣어볼까?"라는 즉흥적인 '아트'는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는 '버그'일 뿐입니다. 당신은 '요리'가 아닌 '숫자'와 '시스템'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요리사'의 길을 선택했다면, '공장장'의 부(富)를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 나는 저들처럼 2호점, 3호점을 못 낼까?"라고 조급해하는 순간, 당신의 '손맛'과 '철학'은 무너집니다. 당신은 '규모'가 아닌 '깊이'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창업 컨설팅이 '시스템'과 '효율'만을 외칩니다. 그것이 '공장장'이 되는 유일한 성공 비결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레스토랑 경영과 공간을 컨설팅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길을 걷는 동료로서, 당신의 '마음'을 먼저 묻고 싶습니다.


사장님,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은 어떤 전쟁을 치를 때, 어떤 예술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당신의 정체성을 먼저 정립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맞는 전쟁터를 선택하십시오. 어느 쪽이든, 그 길은 고귀하고 또 험난할 것입니다. 부디, 그 길 위에서 당신만의 행복을 찾으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웍을 내려놓은 사장님, '시스템의 족쇄'를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