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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워 보이는 그 카페엔 왜 손님이 없을까

영하의 날씨, 매출을 녹이는 '공간의 온도'에 대하여

by 잇쭌

갑작스레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옷깃을 잔뜩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던 오늘 아침, 유난히 제 시선을 붙잡는 풍경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얀색 외벽에 청량한 하늘색 간판을 단 2층짜리 카페였습니다. 통유리 너머로는 형광등 불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죠. 7월의 폭염 속이었다면 분명 '도심 속 산토리니'처럼 보였을 그 청량함이, 살을 에는 12월의 바람 속에서는 마치 거대한 '냉동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넓은 매장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그 '차가운 하얀색'을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더 따뜻해 보이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으니까요.


공간을 컨설팅하는 사람으로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겨울의 장사는 '온도'가 8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도는 보일러 온도가 아닙니다. 바로 눈으로 느껴지는 '시각적 온도(Visual Temperatur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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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은 '동굴의 불빛'을 찾는다


우리는 이성적인 소비자이기 이전에, 추위에 약한 생물학적 존재입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류는 추위가 닥치면 불을 피운 '동굴(Cave)'을 찾아 모여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붉고 노란 불빛은 곧 생존이자 안식이었습니다.


빛의 색을 나타내는 색온도(Kelvin)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요? 사무실에서 쓰는 하얀 주광색(6000K)은 이성을 깨우고 긴장감을 줍니다. 반면, 노을이나 촛불을 닮은 전구색(3000K)은 마음을 이완시키고 몸을 녹여줍니다.


겨울철 거리의 행인들에게 필요한 건 각성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만약 당신의 가게가 대낮처럼 환한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다면, 그것은 고객의 뇌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는 춥습니다. 여기는 쉴 곳이 아닙니다."



스타벅스가 어둡고 노란 이유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이 '빛의 언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를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매장을 환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묵직한 우드 톤 가구 위에 노란 조명을 떨어뜨려 아늑한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곳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집과 직장 사이의 안식처인 '제3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덴마크의 레스토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천장에 밝은 형광등을 다는 대신, 테이블마다 초를 켜고 조명을 낮게 늘어뜨려 '빛의 웅덩이'를 만듭니다. 밖은 얼어붙을 듯 춥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 작고 붉은 불빛은 행인들에게 강력한 온기를 전합니다. 이것이 바로 북유럽의 행복 철학, '휘게(Hygge)'가 공간으로 구현된 모습입니다.



차가운 외관을 역이용하는 '이글루 효과'


그렇다면 앞서 제가 본 '하얀 파사드의 카페'는 겨울 장사를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글루 효과'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글루는 얼음으로 만들어져 겉보기에 차갑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따뜻한 불과 온기가 있다는 걸 알기에 그곳을 낭만적으로 느낍니다.


외관이 차가울수록 내부는 극도로 따뜻해야 합니다. 창가 쪽에 짙은 호박색(2700K) 조명을 배치해 보세요. 차가운 유리창 프레임 속에 담긴 따뜻한 불빛. 이 극적인 대비(Contrast)는 밋밋한 가게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행인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밖은 춥지만, 이 안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따뜻해요." 빛이 건네는 이 무언의 호객 행위는 그 어떤 입간판보다 강력합니다.



당신의 가게는 어떤 인사를 건네고 있나요?


혹시 오늘따라 매장이 썰렁해 보이고, 들어온 손님들이 좀처럼 외투를 벗지 않는다면 보일러를 탓하기 전에 조명을 한번 올려다보세요.


허공을 향해 무의미하게 빛을 뿌리고 있지는 않은지, 정작 손님의 시선이 닿는 벽과 창가는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창가 테이블에 주황색 갓을 쓴 스탠드 하나만 두어도, 당신의 가게는 '추운 사무실'에서 '따뜻한 사랑방'으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장사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논리보다 감각에 먼저 반응합니다.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 서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최고급 원두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언 몸을 녹여줄 것 같은 '따뜻한 빛 한 줄기'입니다.


오늘 저녁, 잠시 가게 밖으로 나가 건너편 거리에서 당신의 매장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라면, 이 추운 날 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가?"


그 대답이 망설여진다면, 이제 스위치를 바꿀 시간입니다. 빛은 전기가 아니라, 당신이 고객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에디터의 한마디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건 큰 비용이 드는 인테리어 공사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전구 하나의 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매출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공간은 오늘 따뜻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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