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격(格)을 결정하는 '죽은 빛'과 '산 빛'에 대하여
자영업 사장님들을 만나 컨설팅을 하다 보면, 가끔은 제가 경제학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한정된 자원(예산)을 어디에 투입해야 최대의 효용(매출)을 얻을 수 있는지 치열하게 논의하기 때문이죠.
사장님들은 식재료 원가 10원이 오르는 것에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민감합니다. 하지만 정작 매일매일 공중분해 되고 있는 '이것'에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합니다. 바로 '빛'입니다.
제가 짓궂은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사장님, 혹시 5만 원짜리 지폐를 매일 바닥에 뿌려두면 손님들이 좋아할까요?"
당연히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매일 비싼 전기료를 들여 생산한 '빛'을, 손님이 쳐다보지도 않는 바닥에 흥청망청 쏟아붓고 있습니다.
오늘은 공간 전략가로서, 여러분의 공간에서 낭비되고 있는 빛, 즉 '죽은 빛'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것은 미학의 문제이기에 앞서, 명백한 경제성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공간 조명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는 아파트 인테리어의 오랜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천장에 바둑판처럼 구멍을 뚫고 다운라이트(매입등)를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넣는 방식이죠.
이걸 켜면 어떻게 될까요? 빛은 수직으로 떨어져 바닥을 비춥니다. 조도계(밝기 측정기)를 바닥에 대면 수치는 아주 높게 나옵니다. 우리는 안도합니다. "아, 우리 가게는 밝구나!"
하지만 손님의 눈은 다르게 느낍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앞을 보고 걷는 동물입니다. 원시 시대부터 맹수가 나타나는지, 먹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의 시선은 늘 수평선(Horizon)과 그 주변을 향해 있었습니다. 땅바닥을 보고 걷는 건 무언가를 잃어버렸거나, 깊은 우울에 빠졌을 때뿐입니다.
바닥만 환하게 비추는 조명은 인간의 시야 범위 밖에서 노는 '잉여의 빛'입니다. 정작 시선이 머무는 벽면과 상대방의 얼굴은 그늘져 있는데, 발밑만 대낮처럼 환한 상황. 우리는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어수선하다' 혹은 '침침하다'라고 느낍니다.
물리적인 빛의 양은 충분한데, 정작 눈으로 느끼는 밝기는 부족한 현상. 이것이 바로 '바닥 조명의 역설'입니다.
공간 마케팅의 고수들은 절대 바닥에 빛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빛으로 '벽'을 칠합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월 워싱(Wall Washing)'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의 리저브 매장을 가보셨나요? 시애틀이든 도쿄든, 그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면 압도적인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비결은 조명의 타겟팅에 있습니다.
그들은 천장에서 바닥으로 빛을 쏘지 않습니다. 대신 거대한 구리 로스팅 기계, 벽면에 걸린 아트워크, 그리고 진열장을 향해 빛을 집중시킵니다. 수직면(벽)이 빛을 받아 환하게 반사되면, 사람들은 그 공간 전체가 빛으로 꽉 차 있다고 인식합니다. 바닥에 떨어져 사라질 빛을 벽에 튕겨 공간 전체로 퍼뜨리는 것, 이것이 공간을 넓고 아늑하게 만드는 마법입니다.
백화점 명품관은 더 노골적입니다.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 매장의 통로(바닥)는 생각보다 어둡습니다. 대신 상품이 진열된 벽면 선반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죠. 빛의 강약(Contrast)을 통해 고객의 시선을 상품으로 강제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만약 명품 매장이 대형마트처럼 천장에 형광등을 쫙 깔아 바닥까지 환하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 순간 수천만 원짜리 명품백은 평범한 장바구니처럼 보였을 겁니다.
우리 곁에도 좋은 예는 많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그 거대한 카우리 소나무 테이블을 기억하시나요? 그곳의 조명은 철저하게 책과 사람의 손, 그리고 테이블 표면을 향해 있습니다. 천장에서 바닥으로 멍하니 떨어지는 빛은 거의 없습니다. 덕분에 그 넓은 공간에서도 독자들은 자신만의 서재에 있는 듯한 아늑한 몰입감을 느낍니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촌이나 익선동의 한옥 카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좁고 오래된 공간을 운치 있게 만드는 비결은 '서까래'와 '벽'을 비추는 조명입니다. 울퉁불퉁한 흙벽과 나무 기둥에 빛을 비스듬히 비추면(Grazing), 그 질감이 살아나면서 공간은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만약 그곳에 평범한 방등을 달아 바닥을 비췄다면, 그저 낡고 좁은 옛날집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천장을 다 뜯어내야 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컨설턴트로서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지향합니다. 작은 변화로 죽어가는 빛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첫째, 허공을 가르는 다운라이트의 방향을 트세요. 요즘 나오는 매입등 중에는 각도 조절이 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바닥을 향해 수직 낙하하는 빛의 목을 꺾어, 벽에 걸린 그림이나 메뉴판, 혹은 기둥을 비추게 하세요. 바닥에 버려지던 빛이 벽에 부딪혀 '산 빛'으로 부활합니다.
둘째, 시선의 높이에 빛을 두세요. 천장 조명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는 스탠드나 테이블 조명을 두세요. 사람의 눈높이에 빛나는 물체가 있으면, 심리적인 안정감과 따뜻함을 줍니다. 이것은 텅 빈 허공을 채우는 가장 가성비 좋은 인테리어 소품입니다.
셋째, 펜던트 조명에는 반드시 '갓'을 씌우세요. 전구가 그대로 노출된 조명은 눈부심(Glare)만 유발할 뿐, 공간을 밝히지 못합니다. 갓(Shade)이 있는 조명은 빛을 모아 테이블 위로 쏟아줍니다. 음식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 조명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저는 조명이 인테리어 공사의 마침표가 아니라, 공간을 그리는 '붓'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비싼 페인트를 칠하고 고급 타일을 깔아도, 조명이 엉뚱한 곳을 비추고 있으면 그 돈은 허공으로 날아갑니다.
반면, 낡고 거친 벽이라도 빛을 제대로 비추면 갤러리의 작품처럼 변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은 줍으면서, 왜 매달 수십만 원의 전기료를 들여 바닥에 빛을 버리고 계신가요.
지금 당장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세요. 그리고 빛의 방향을 확인하세요. 여러분의 빛이 손님의 발밑 먼지가 아니라, 손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 마음이 머무는 곳을 비추게 하세요.
그 작은 각도의 차이가, 손님이 우리 공간을 '그저 그런 가게'로 기억할지, '분위기 있는 곳'으로 기억할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한 끗이 될 테니까요.
에디터의 한마디 조명은 밝기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공간에서 빛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