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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교 Oct 23. 2021

어두워질 때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두워질 때

희교     


가끔 마무리되었다 싶었던 문제들이 불쑥불쑥 머릿속을 기어다니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10년 전에 잠깐 스쳤던 수강생, 그 여성이 떠오를 때도 그렇다. 그 여성은 무엇이 그리도 못 마땅했을까. 성실하고 겸손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분들이 훨씬 많았지만 이젠 잘 기억나지 않고 오히려 수업 분위기를 유난스럽게 흐리던 분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마음, 빛과 어둠을 가진, 종이에 수채 2020 리디아


그 몇 분 중에 유독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툴툴거리며 표정이 굳어지곤 하던 젊은 아이엄마가 있다. 인쇄물의 색이 분명치 않으면 왜 이렇게 된 걸 주냐고 기가 차다는 듯이 물었고, 다른 분이 조금 늦어서 기다렸다 시작할라치면 왜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와서 차나 물 한 잔은 주문이라도 해 놓은 양 당연했다. 점점 안 반가워졌다.     


급기야 다음 교재를 사며 내가 가진 포인트로 결재하는 것을 보더니 불평을 했다. 그분을 포함 여러 수강생들에게 보여 드리고 읽어 드리기 위해 많은 영어 교재와 스토리북을 구입했던 터라 포인트가 결제에 쓸 만큼 쉬이 쌓이곤 했다. 영어와 상관 없는 전공이었어도 영어를 영 못하지 않았고 얼굴도 꽤나 이쁘게 생겨서 호감을 가질 뻔했었는데 번번이 공격적으로 나와서 나로 하여금 수비 태세를 갖추게 만들었다. 

    

아마 은연중에 나는 이 사람이 수업을 그만두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는지 모른다. 그랬다면 내 소망을 하늘에서 들었는지 얼마 안 지나 안 그래도 아이들이 감기 들거나 유치원 행사가 있으면 못 오더니 수업 오는 길에 자신을 키워 준 친척인가가 위중하시다는 연락을 받아 가봐야 한다고 경황없이 인사하길래 보내며 진심으로 한 번 안아주었다.      


여동생인가가 하나 있어도 멀리 살아 그나마 혈육이라고는 유일했을 터라서 안타까웠다.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 한구석에는 '아 (드디어) 마지막이겠구나!'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수업료를 차일피일 미루며 안 보내 주던 차였는데 다시 연락하겠다며 송금하겠다고 말하기에 그저 만일 일 당하거든 큰일 잘 치르라고만 답해 주었다.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연락이 더 오지 않아서 모르겠고 수업료는 보내 주지 않아서 앓던 이 빠진 셈치고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분은 무언가 자신의 내부적인 조건으로 인해 짜증나 있었음이 분명하다. 유인물 인쇄 상태나 누군가의 지각도 포인트 결제도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의 채도 말이다. 어릴 때 겪은 소외나 차별에서 비롯된 격렬한 보상 심리 아니었을까. 조금도 손해 보고 살지 않겠다는. 자칫하면 나도 '왜 하필 나한테 와서 도대체 왜 저래!'하고 열불을 낼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은 이유를 이제서야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 여성의 양보나 배려 없음이 내 마음에 걸린 이유가 나도 어떤 상대에게 보이는 일종의 신호가 그런 식일 때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나만 관심 받고 싶고 소중한 무언가를 나에게만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지금 내 마음이 어두워지려고 한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나를 키운 분들은 그분들이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그것을 안다 해도 밝음으로만 내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수백 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테니 그게 바로 타인에게 밝음만을 바라지 않아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어두워질 때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해야겠다. 


내게도 어둠이 있다고. 우리는 모두 어둠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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