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면
10년 뒤 내게
희교
“10년 뒤의 내가 싫어할 수도 있는 일을 지금 내가 막 하면 안 되지 않아요?”
머리 다듬어 주는 미용실 원장의 말이다.
뭘 보고 하는 말이냐면, 내 이마 양옆 위로 동그란 구멍이 나있는 거 보고. 흰머리가 왼쪽 이마 옆으로 나기 시작한지 딱 열세 해째고 몇 년 전부터는 오른쪽 이마 옆으로도 나기 시작했다.
전셋집 깔끔하게 해놓고 토끼 같은 어린 딸 둘 조용히 키울 때다. 14층 건물의 13층. 바로 큰길 가라 늦은 밤이나 새벽녘 공사장 가는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만 빼면 해 잘 들고 앞이 탁 트여 나무랄 데 없이 좋았다. 집 주인의 느닷없는 "혹시 집을 살 의사가 없느냐?"는 전화를 받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흰 파카를 입은 흰머리 성성한 노인이 집을 보고 갔었다. 그게 다였다.
1년이 더 지나서야 월세로 돌리려 하니 집을 빼라는 부동산 공인중개사의 연락을 받았다. 전 주인은 우리에게 세를 놓을 때 이 집으로 다시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는데 말이다. 이 왠 폭탄이란 말인가. 김포로 의정부로 인천으로 옮겨갈 만한 전셋집을 보러 다녔다. 주중에는 네이버 카페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놓고 주말이면 가보며 한 달을 보냈다.
어느 날 세수하는데 왼쪽 이마 위로 희끗한 빛이 돌았다. 쪽집게로 뽑기 시작했다. 얼마쯤이면 다시 보였을까. 뽑고 또 뽑았다. 이제는 책 읽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 누구와 얘기 나눌 때 집게손가락으로 살살 만진다. 맨들거리지 않고 도로로록 뭔가가 걸리면 흰머리가 또 뾰족뾰족 올라온 거다.
기운이 좋을 때는 쪽집게로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이마 옆을 헤집고 뽑기도 했었다. 반쯤 포기한 지금도 일주일 되어 가면 집게손가락에 무수히 많은 짧은 흰머리가 걸려 지나간다. 또 뽑는다.
원장님 말은 잘 기억하고 있다. 자꾸 뽑으면 그 자리에 언젠가는 머리카락이 안 나게 된다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처음 저 말을 들을 땐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 내가 한 일을 나중의 나도 좋아할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니. 언제가 됐건 나를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말로 들려서. 지금이야 뭐에 혹해서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나중에는 정말 너무 큰 일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지금이 허락하는 일을 잘 들여다볼 일이다. 나중에도 허락받을 수 있을지를. 센스 좋은 미용실 원장은 그날 이후로 내게 같은 말을 다시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