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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Dec 22. 2023

05 지상에서 <비행모드>

승무원말고, 잠시만 사장할게요.




인테리어 실장님 : "사장님~ 이름은 정했어요?"

나 : "비행모드"요.


나의 비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내가 만든 공간, 지상에서.







"비행모드"

나는 항상 믿었다. <믿는대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큰 그림을 그리는 건 기본이었다. 생생하게 상상했다. 아니 저절로 상상이 됐다. 미쳐있었으니까. 꼭 승무원이 되서 하늘에서 '비행모드'하리라.



그렇게 내 첫번째 사업 "비행모드"카페를 열었다. 이 이름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때부터 내 머리 위에 안테나가 세워진 듯 간판만 눈에 들어왔다. 눈도 빙글빙글. 머리도 빙글빙글. 여러가지 이름들을 입으로 중얼중얼 거려본다. 디자인도 눈에 담아둔다. 그때그때 폰에 기록한다.



더이상 승무원이란 꿈 때문에 다른 꿈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미룰 수 없었다. 드디어 내가 정신을 차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포기했냐고? 포기란 없다. 합격하면 모든 것을 미련없이 한번에 정리할 각오로 시작했다. 내가 카페를 오픈했던 중요한 이유 한가지가 더 있었다. 내가 사장이기 때문에 면접보러 갈 때 적어도 눈치보고 갈일은 없다는 것. 평일 언제든지 면접보러 갈 수 있다는 것. 이런 기대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자리를 비우는 순간 마음이 내내 무거웠고, 카페는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해서 빨리 가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문을 닫고 가는 날이면 손님들이 전화가 오기도 했다. 이게 또 뭐하는 짓인가 생각했다.



뒷통수를 맞은 마냥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레짐작했던 것들이 다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사장은 처음이였다. 나는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것들이 참 많다. 운영자가 가져야 할 마인드, 마케팅, 브랜드 등 모든 것을 공부했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내 한계를 넘어섰다고 할 만큼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독학으로 준비해 합격했고, 카페의 모든 것을 1부터 100까지 내 손이 하나 안닿은 게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마음을 쓴 이유가 있다. 비행모드는 나에게 정말 소중했다. 나는 예전부터 승무원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나 스스로 이끌어가고, 만들어내서 선보이는 것. 내가 리더 역할을 해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최종 꿈의 첫 시작을 '비행모드'로 한 것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스러웠고, 내가 만든 내새끼같았다.



그래서 더욱 내 이야기가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동안 짓눌렸던 나의 꿈, 바닥쳤던 자존감을 비행모드가 치유해 준 것 같다. 이 곳에서 나는 마음에 품어온 것들을 하나씩 꺼내들어 보였다.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서도 안되는 면접 따위> 같은 게 있는 반면, 그 노력을 인정받고 또 나아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이때 소중한 인연들도 정말 많이 만났다. 지금까지도 안부를 전하며 지내는 분들이 많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뜬금없게도 한 단골손님이 결혼하는 꿈을 내가 꾼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 손님이 카페에 오자마자 나는 물었다.


"손님, 혹시 결혼하세요?"

"(눈이 동그래지며)네? 어떻게 아세요?"


그리고 난 그 손님의 결혼식장에 갔다. 꿈에서 본 결혼식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입장할 때는 왜 내가 눈물이 나는지, 내내 울컥하기까지 했다. 이 손님은 신혼여행을 '파리'로 갔는데, 이 파리가 나에게도 정말 특별했다. 그냥 가는게 아닌, 승무원이 되면 꼭 가야지 했던 파리.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었던 <탑승권 보틀의 도착지도 '파리'>였다. 마음 속에 남겨뒀던 여행지였다.





그리고 거기서 꼭 사진찍어야지 생각했던 파리 스팟 사진들을 카페 곳곳에 붙여놨다. 인테리어 소품이기도 했지만, 내 꿈이 담긴 나만 아는 소중한 사진이었다. 더 감동했던 것은 이 손님께서 사진 찍은 장소를 보니, 어라? 내가 카페에 붙여놨던 그 스팟이었다. 이때 이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감동이상이었다. '통했다.' 손님과 마음이 닿았다는 생각. 그리고 이 분은 파리에서 내 선물을 사오기까지 했다. 비행모드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인연. 참 감사하다.





손님과의 인연은 더 넓어졌다. 한번 오신 손님 얼굴, 커피 취향까지 기억했다. 손님 10분이 오셨다면 10분께 잘했다고 할만큼 정성을 다했다. 카페 대문에는 '작지만 알찬카페'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좁은 공간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내 진심과 노력이 전해졌는지 후기들 대부분의 공통된 말은,


"사장님 너무 친절해요. 카페가 특색있어요. 근데 커피까지 맛있어요."

이 후기가 네이버 대문에 실리기도 했다. 캡쳐한 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고마운 손님.





다른건 몰라도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 전세계 사람들을 상대할 승무원이 될 사람인데 서비스마인드 하나만큼은 1등 먹자. 거기다 커피가 맛있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거다. 내 목표는 3가지였다. 이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딱 후기가 그랬다. 면접 따위의 세계와는 달랐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다. 처음엔 카페 트렌드를 몰라서 인테리어 실장님께 카페 여기저기 가보라고 조언을 받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모든 핫한 카페는 다 가봤다. 가 본 카페만 100군데가 넘는다. 지금도 어디에 무슨 카페가 있는지 다 알만큼. 인테리어, 음악, 커피메뉴, 디저트, 손님들, 전체적인 분위기, 사장님이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떻게 주문받는지 등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카페 갈 때와는 내 시선이 전혀 달랐다.



커피도 정말 맛있는 원두를 쓰고 싶어 전국팔도를 다 돌아다녔다. 그래서인지 카페를 오픈하고 싶은데, 어느 원두를 쓰고 있는지 알려달라는 손님까지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뭐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이때는 승무원에서 카페사장으로 사활을 걸었다. 머그잔, 숟가락, 포크 달랑 하나 사는 데도 3일이 걸릴 만큼 발품팔아 들어보고 잡아보고 무거운지 편한지, 오래써도 될만한 견고한 것들인지 등 모든 것을 다 체크했다. 인테리어도 맡겨서 될 게 아니라, 여기는 어떻게 하고 저기는 어떻게 하고 바닥 색깔 하며. 테이블, 의자 색상 등, 다시 바꾸기를 몇 번. 인테리어 사장님께 나란 사람은 정말 골치아픈 손님이었을 것이다. 진상.





그때 나는 느꼈다. 와~ 세상 모든 사장님들은 대단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이 안닿는 곳이 없었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신경쓸 게 한두개가 아니였다. 이렇게 힘든거였다면 시작도 안했지싶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늘 지나쳤던 가게 사장님들이 대단해보였다. 새로운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또 큰 것을 깨달았다. <주인의식> 어딜가나 주인의식이 생겼다. 사장이 무엇이든 그렇게 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따르고, 내 일처럼 하게 됐다. 정말 힘든 거 아니까.



카페에서 좋은 일이 훨씬 많지만 우리네 인생은 양날의 검과도 같지. 이런 손님도 있었다.

"나도 카페'나' 할까?"

왜 '카페나'로 표현을 하는 것 일까. 그때는 듣자마자 내 온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번에 뚝딱 만들어진게 아닌데 너무 속상했다.


나는 몇년이 지나서 이런 명언을 접했다.

<남에게 쉬워보이면, 당신은 그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때의 나는 뚝딱 뚝딱 잘해내고 있었다.



시럽을 쓰기 싫었던 나는 아침 일찍 장보러 가서 신선한 과일들을 샀고, 수제로 직접 다 갈아서 판매했다. 만드는 시간도 훨씬 더 오래 걸렸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 만족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음료만 찾는 매니아 손님들도 많았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이면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몸에 베인 동작들. 처음엔 삐끄덕 거렸던 것이 이제는 척하면 척이었다. 이정도 경지까지 갔을 땐, 딱 그 짧은 피크시간 그 많은 손님들을 혼자 감당해낼 수 있었다. 설거지거리와 과일껍질들이 산처럼 쌓였지만 쾌감이 있었다.


"나 이제 뭐든 잘하겠다."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

내가 고른 여행 서적들을 사람들이 읽는 순간.

카페에 있던 조그마한 창문을 비행기 창문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 순간.

파리까지 가는 탑승권 보틀을 만드는 순간.





처음 오는 손님들의 설레는 표정을 보는 순간.

단골 손님들의 편안한 모습을 보는 순간.

다른 지역에서 멀리서 손님이 찾아온 순간.


비행기 안이 아닐 뿐. 마치 여행가는 모두의 상상 속 비행기 안이었다.


 


 

개인카페를 운영했던 나는 나만의 레시피가 필요했다. 매번 새메뉴를 만들때마다 새벽 4시까지 밤새며 커피와 라떼를 마시고 또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속이 울렁거려서 나중엔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한 그때의 다리 통증으로 무리할 때마다 주저앉아 고생했다. 서있을 수가 없었다. 원치않던 상황이 나에게 왔고, 뭐 어떻게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통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너무 답답해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노력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면접 따위와는 달랐다. 그럴수록 반드시 이룬다. 해내고야 만다. 기필코.





더 열심히 했다. 틈틈이 영어공부에 중국어공부까지 했다. 주말엔 중국어 시험을 치러갔다. 마음 푹 놓고 신나게 놀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난 좋았다. 셀레었다. 꿈에 점점 가까워져가는 것 같았기 때문에. 분명 될거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또 중얼거린다.




"될 때까지 한다."







'비행모드'

정말 '비행모드'하는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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