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퀸 Dec 14. 2023

04 병명을 알 수 없습니다.

훗날 결정적인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목이 아플만큼 달리고 달렸다. 숨도 안쉬어지는 지경이었다. 내가 그렇게 달렸는지조차 몰랐다. 다음날 허리와 다리 쪽이 너무 아팠다. 처음 느끼는 통증이였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장 병원을 갔다.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병명을 알 수 없습니다."







승무원 준비하면서 학원도 과외도 참 많이 다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어떤 기준으로 학원과 과외를 선택해야되는지 몰라서 그저 친절한 곳, 크고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이것도 하다보니 결이 맞는 선생님, 수업 방식 등 나만의 기준이 생기게 됐고 판단하는 능력도 길러졌다. 나중엔 결국 내가 어떻게 하는 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독학으로 준비했다.


그때 한 외국항공사 공채가 났다. 평소에 공채가 잘 나지 않던 항공사였고, 난다면 꼭 가고 싶었던 항공사 중 하나였다. 언제든지 준비 태세였던 나는 스위치를 탁! 하고 켠 듯 눈에 불이 켜졌다.



"시작이다."



미친듯이 검색했다. 이 항공사에 대해.

그러다가 이 항공사 출신 선생님의 수업이 오픈됐다는 것을 보게 됐다. 정말 오랜만에 망설임없이 신청했다. 지방에 사는 나는 매주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갔어야 했지만 유일무이했던 수업이었기에 꼭 듣고 합격하고 싶었다. 이때 일을 하고 있어서 정해진 시간에 진행되는 그룹 수업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대일 개인 수업을 신청했고, 이 수업을 신청하는데 그리 큰 마음을 먹진 않았다. 왜냐면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매주 서울을 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뒤에 있을 일을 모른 채.



그런데 선생님이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오시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나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하셨고, 나도 처음엔 그러려니 조심히 오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텅 빈 학원에 멍하니 선생님을 기다렸다. 수업을 늦게 시작하다보니, 그날 해야하는 분량을 다 마치지 못하는 상황이 잦았고 늦게 마무리가 됐다. 나는 오전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행기도 많지 않았다. 딱 그 시간에 있는 그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출근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선생님께 지금은 출발해야된다 말씀드렸고, 지하철역까지 뛰고 지하철에 내려선 공항까지 뛰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선 다음엔 약속시간을 꼭 지키겠다고 말씀하셨다. 한번은 비행기 예약까지 다 해둔 상황이었는데 그날 아침에 수업이 미뤄지는 날도 있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이 있으니 이해했고, 사실 내가 아쉬운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특별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수차례 서울로 왔다갔다 했다. 이제 거의 비행기 단골 손님이 된 느낌.

그 날 선생님은 또 늦으셨다. 정말이지 너무 힘이 빠졌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미안해하시며 멀리서 비행기까지 타고 오는 너한테 정말 부끄럽다며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미안한 마음에 수업을 더 해주시겠다며 시간이 늦어졌고, 나는 비행기를 놓치면 일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끝나는 시간에는 시계를 보며 조마조마 애가 타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날도 늦게까지 수업이 진행됐다. 나는 "선생님 이제는 정말 정말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예요."라며 아쉬운 마음 꾹 누르고, 죄송한 듯 살짝 울먹이며 재촉했다. 선생님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이것만 더. 조금만 더."하시며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해주시며 조금 늦게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할일은 뭐다? 미친듯이 뛰는 것. 아니 뛰어야만 하는 것.



지하철이 느리다는 생각이 들어 택시를 타고 환승역까지 갔다. 택시를 타면서 택시가 답이 아니었다며 지하철을 다시 타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내려서 또 지하철을 타러 미친듯이 달렸다. 지방에 살았던 나는 서울의 교통상황을 잘 몰랐다. 지하철 안에서도 몇번째 칸이 나가는 길이 더 빠른지 검색해서 그 칸까지 빠른 걸음으로 갔다. 그때 잠시 숨을 조금 돌렸다.

‘이 지하철 문 열리자마자 미친듯이 뛴다. 뛴다. 탈수있다. 탈수있다.’

문이 열리자마자 전력질주했다. 미친듯이 달렸다.


공항에 겨우 도착해서도 게이트까지도 정말 있는 힘껏 달렸다. 이날따라 게이트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이거 놓치면 끝이다. 탈수있다. 탈수있다. 한여름에 납작한 샌들을 신고 달렸다. 샌들과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끝도 없이 들렸다. 다다다다다다다다. 모두가 쳐다보는 것 같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뛰는 와중에도 목이 너무 아프다는 생각만 들었다. 숨도 안쉬어지는 지경이었다. 살면서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뛰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겨우 탑승했다. 그때서야 후~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꽤 오랫동안 숨을 가다듬었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음에는 수업을 끝까지 못듣더라도 여유있게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내가 참 바보 같았다. 수업이 늦게 끝날 것 같으면, 칼같이 딱 끊고 출발했어야 했고 선생님께는 예의있게 할말은 했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의 존재가 너무 컸다. 혹시라도 사이가 틀어지면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아쉬운 입장은 나였다. 어쩔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다. 어쨌든 잘 탔으면 된거라며.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양말을 꺼내들고 앉아서 신으려는 찰나,

"아... "

너무 아팠다. 양말을 신을 수가 없었다. 허리를 굽힐 수가 없었다. 처음 느끼는 통증이였다. 그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나는 바로 이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갑자기 너무 세게 달려서 그런가?' 몇일을 더 지켜봤다. 통증은 계속 됐다.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 곧장 병원을 갔다. 모든 검사를 다 마쳤다. 결과는 정상이였다.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병명을 알 수 없습니다."





"하... 쉽지 않다. 쉽지 않아."

"또 넘어야 할 산이 생겼네."


...



훗날 결정적인 계기가 될 줄 모른채 중얼거린다.




"될 때 까지 한다."






작가의 이전글 03 "이번엔 해외면접이다!" - OO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