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어스름한 밤, 저 멀리서 그대가 걸어온다. 그대 손에 들린 초롱의 불빛은 달빛보다 밝아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사실 달빛도 초롱도 필요 없다. 그대에게선 빛이나 나는 십리 밖에서도 그대를 알아볼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그댈 보지 않고서는 지나칠 수 없을게다.
그대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담벼락 밑에 가만히 서서 나는 그대의 발걸음을 주시한다. 멋들어진 모습에 휘날리는 옷자락은 그대 품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대를 휘감은 옷처럼 나도 그대 품에 휘감기고 싶단 마음이 든다. 내 생각을 읽은 듯 그대는 두 팔을 벌려 한 발자국 더 나에게로 향한다. 하늘거리는 옷자락과 오른손에 쥔 초롱이 하늘하늘 흩날린다. 마치 벚꽃 잎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봄 같다. 춘풍처럼 따스한 당신을 만끽하고 싶다. 어디선가 달달한 향이 난다. 과실의 향 같기도, 꽃내음 같기도 하다. 봄이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대가 날 향해 오다 발길을 멈췄다. 두 팔을 벌린 채. 나는 못내 부끄러워 쓰개치마 아래로 숨어든다. 그런 나를 쫓는 그대의 시선. 나는 달아오른다. 나는 부끄러운 감정이 들어 쓰개치마를 푹 뒤집어쓰고 시선을 땅으로 향한다. 당신은 겸연쩍은 듯 벌렸던 팔을 도로 접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러나 눈빛은 따스하다.
휘어진 초승달이 은은하다. 달은 무엔가 안다는 듯 구름 사이에 숨어 지그시 눈을 감는다. 달이 잠시 눈감아줄 때 그제야 우리의 눈이 마주치며 눈빛을 반짝인다. 나에 눈엔 그대가, 그대의 눈엔 내가 담겨있다. 그리고 우리 눈동자엔 달이 걸려있다.
CoP 시간에 모루다원의 우롱차인 월하정인을 마셨다. 차의 이름부터 낭만적이라 기대감이 증폭됐다. 달짝지근한 향이 은은하게 나는 찻잎을 우려 내보니 싱그러운 과일향이 났다. 코끝을 간질이는 달큼한 향. 깔끔한 맛이 좋았고 부드럽게 마실 수 있었다. 두 번 우리니 청명하고 청량한 향은 강해졌으나 전반적으론 향이 가벼워졌고 맛이 달아졌다. 차를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며 열이 오르는 듯했다.
월하정인이라는 차를 마셔보니 같은 이름을 가진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이 떠올랐다. 다원에선 왜 이 차의 이름을 월하정인으로 정했을까? 낮에 딴 찻잎을 밤새 달빛 아래에서 덖으며 은은하고도 달달한 연인을 떠올렸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