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전염

by 진이령

감정도 전염된다. 즐거운 감정도 우울한 감정도 그리고 화난 감정까지도 모두 다.

나는 사람들이 무섭다. 그들이 쏟아내는 감정의 다채로운 색상에 반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감정이 아주 강하게 느껴져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내가 건강하고 강할 때는 사람들의 감정을 받아들일 때 컨트롤할 수 있지만, 약해져 있는 상태에선 그렇지 못하다. 대놓고 욕하는 모욕적인 언사나 행동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오면 나는 마치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나에게 가시가 뾰족 선 말을 했다. 마스크 위로 떠오른 눈엔 힐난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당황해서 항의를 하지도 반박을 하지도 못한 채 어리둥절해하며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나한테 왜 이러지?’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반사적으로 다음 생각이 이어졌다.

‘어떻게 풀어야 하지?’

‘용서해달라고 해야 하나?’

나는 비굴해졌다. 그러나 섣불리 용서를 구하는 행동을 유보하고 가만히 그 사람의 감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의 감정과 생각도 정리되길 기다렸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잘못하지 않았던 일에 용서를 구하게 되었을까?


유구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내가 10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를 상기한다. 사정상 나는 잠시 할머니 댁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5명의 사촌들과 함께. 사촌언니 C는 나를 가스 라이팅 하고 왕따 시키고 자기 마음이 내킬 때는 당근을 주며 회유하여 결국 나를 본인의 입맛에 맞게 굴복시켰다. 물론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촌 동생들에게도 똑같이 했다. 할머니는 방관자였고 부모님은 멀리 있었다. 나는 나약했고 절대 ‘권력자’인 사촌언니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일수록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5명의 사촌들을 진두지휘하며 나를 따돌리고 막아설 때마다 나는 부서졌다. 할머니 댁에서 살았던 짧은 한 달, 내 인생 처음의 굴종을 맛보았다.


그 경험 때문일까? 나는 늘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의 잘못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잘 못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상황에 하지도 않은 나의 잘못을 고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알면서도 나의 의식의 흐름은 내 탓을 한다. 나는 나를 남에게 맞춘다. 갈등이 발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예민하다. 눈치도 많이 본다. 내가 가진 원대한 꿈은 세계 평화이고 작은 삶의 목표는 내 주변 사람들이 싸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싸움의 사이에 끼게 된다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전에 중재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나는 싸움이 싫으니까.


다시 감정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그 사람에게 비굴하게 용서를 구하는 대신 분석을 시작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이 상황이 과연 타당한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 사람의 가시 돋친 말은 그냥 한 귀로 듣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감정에 전염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글로 내 마음을 달래고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의 끝엔, 나 역시도 나의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좋은 감정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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