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판

by 진이령

나는 올해 서른이 되었고 첫 자취를 시작했는데 늘 가족이 아니면 룸메이트와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정말 혼자 살게 된 것은 처음이다. 혼자 사는 삶은 정말 다르다. 그중 가장 달라진 것이 요리, 장보기이다


여섯 식구가 같이 살 때는 한 번 음식을 하면 12인분은 기본이었다. 동생들과 자취를 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을 봐도 돌아서면 냉장고가 비어있고 요리는 했다 하면 잘 팔렸다. 그런데 혼자 살게 되니 배달 음식을 한 번 시키면 3~4끼를 같은 음식으로 먹어야 했고 요리를 아무리 적게 한다고 해도 이미 큰 손인 나에겐 1~2인분을 만들기가 더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식재료가 썩어서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점심 도시락을 싸다녀도 말이다.


그래서 신선 식품은 사나흘에 한 번, 나머지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려고 마음먹었더니 일이 바빠 주말에도 시간을 겨우 낼까 말까 한 상황이 돼버렸다. 오늘 모처럼 시간이 생겨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엄마를 따라 장을 보러 다니는 것이 취미였던 나는 그날도 엄마와 장을 보러 갔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계란 한 판을 집어 들었었다. 별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이었는데 오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계란 한 판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고 또 생각보다 무거웠었다.


서른이 된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어릴 적의 나는 서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 내며 걷는 멋진 커리어 우먼. 그런 꿈을 꿨었다. 다양한 직업을 희망했고 바랐다. 하지만 그 시절의 상상 속 서른과 지금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괴리가 크다. 서른이 되면 무언가 달라져있을 줄 알았다. 성인이 아닌 어른일 줄 알았고 돈도 많을 줄 알았다. 전문직이 되어있을 줄 알았고 서울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상상과 맞는 것이 없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기에 재밌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유독 서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무언가를 이뤘는지, 자리는 잡았는지 끊임없이 묻고 비교한다. 물론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서른이 되는 생일날 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숙연해지던 것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엄마와 장을 보면서 계란 한 판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엄마 내 나이 곧 있으면 계란 한 판이야. 시간 정말 빠르다. 엄마는 나 언제 가졌더라?’

‘나는 스물아홉에 너를 가져 서른에 품에 안았어. 3.4kg의 무게를 한 세상을 껴안고 있으려니 문득 겁이 나더라고.’


엄마에게 서른이란 3.4kg의 빨간 핏덩이였다. 지금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감히 생각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나에게 서른이란 무엇일까? 나는 서른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덩치만 크고 나이만 먹은 성인인 건 아닐까? 어린 나의 상상을 현실화해주지 못한 무능력한 사람은 아닐까?


장을 보며 계란 한 판을 들었다 10구짜리 작은 계란으로 바꿔 장바구니에 담았다. 유독 계란 한 판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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