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인재 4기
그런 날이 있다. 달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는 날이. 시간이 없을 때는 그럭저럭 넘길 수 있으나 여유가 생길 때 마음이 들떠버리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시간은 보내야 하는데 마음은 붕 떠 뭐 하나에도 집중하기도 힘들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조급하기만 하다. 그럴 땐 차 한 잔을 우려낸다.
센터 프로그램 중 CoP라는 것이 있다. Community of Practice의 줄임말로 관심 분야가 유사한 인재들끼리 모여 자발적으로 학습, 실행하는 일종의 동아리이다. 나는 ‘차(TEA) 다(茶)’란 CoP에 속해있는데 여러 차를 마셔보고 차를 활용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동아리이다. 작가를 꿈꾸는 나는 차를 마시며 영감을 얻어 글을 쓰고 나중에 상품과 서비스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을 해보고자 ‘차(TEA) 다(茶)’에 가입했다. (CoP명은 내가 지었다. 뿌듯)
평소에도 차를 좋아해 마시고 나름의 품평을 기록을 해보곤 했었다. 조예가 깊진 않고 그냥 마셨던 기억을 남긴 기록이지만, 기록마다 차를 우려낼 때 향과 색상 그리고 차 한 잔이 주는 여유가 담겨있어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기엔 딱 좋은 취미다.
차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 S와 H의 주도하에 매주 1회 이상 차를 같이 마신다. 아침에 잠이 깨지 않을 때, 점심에 입가심하고 싶을 때, 그리고 CoP 때. 차 마시는 인원은 유동적이지만 빡빡한 센터 일정 속에서 여러 인재들과 차를 마시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첫 CoP 시간에 네 종류의 차를 마셨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듯 차에게도 저마다의 출신과 이야기가 있었다.
첫 차로 중국 서호지역의 사봉에서 재배된 사봉용정을 우려 마셨다. 푸른 찻잎은 녹차 잎이 되기 전의 차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찻잎의 향을 시향 했을 때 녹차임에도 달짝지근한 초콜릿 향이 났다. 납작하게 눌린 특이한 모양의 사봉용정을 처음 우려내니 투명하면서도 노란빛의 차가 탄생했다. 푸른 찻잎이 피어낸 차의 색이 투명한 노란빛이라 신기했다. 맛은 의외로 고소하고 찐 밤 같았고 향 역시 그러했다. 녹차 맛이 혀끝에 남아 살짝 쌉싸름한 맛도 났다. 잔향은 달아서 신기함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찻잎을 두 번째 우렸더니 더욱 고소한 향과 맛이 났다. 세월의 맛이 느껴지는데 깊은 맛이었다. 세 번째 우리며 찻잎을 맡아보니 진한 녹차향이 느껴진다. 맛은 옅어졌지만 오히려 풍미가 느껴진다. 부담 없이 마시기에 딱 좋은 조화로운 맛이었다.
사봉용정, 백호은침, 중국 민북산 청향대홍포인 우롱차, 중국산 가문홍차까지 네 종류의 차를 두세 번씩 우려내며 마시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 놀랐었다. 우려내는 횟수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향과 맛의 깊이와 느낌이 달라져 신기했다.
차도 사람도 같다고 느꼈다. 내 예상과 짐작과 전혀 다를 때도 있고 겉보기완 다를 때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하고 향기로워지는 사람도 있고. 차가 주는 멋진 교훈이었다.
벌써 달이 떴는데 달뜬 마음은 아직도 주체를 못 해 차를 우려냈다. 바닐라 루이보스 티를 진하게 우려낸다. 주홍빛이 티백에서부터 찻주전자 전체로 은은히 퍼진다. 향을 맡으니 가향된 바닐라 향과 고소한 향이 난다. 입안에 머금으니 은밀하고도 달콤한, 감칠맛이 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숨을 들이켰다 내쉰다. 달을 보고 다시 한 모금 입에 담는다.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쓴다. 이제야 마음이 좀 진정된다. 혼자 멀리 달려 나가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차 한 잔이 주는 여유가 제격인 것 같다. 사색을 하고 정리해 글을 쓰며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혼자 저 멀리 달려가던 마음도 그때서야 뜀박질을 멈추고 정상 심박수로 돌아온다. 그럼 나는 주변과 발맞춰 걸어갈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