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사회적 자아 되기는 더욱 어려워져, 지금보다 더한 경쟁도 필연
최근 다시 재택근무에 들어간 이곳 미국 캘리포니아 직장인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역시나 직원들 모두 집에서 일을 봐도 업무가 진행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고 한다. 국내에서나 이곳에서나 재택근무, 원격근무는 이제 완전한 업무형태로 정착된 것 같다.
그 와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줌 회의가 일상이 되다 보니, 이제 동시에 두 개의 회의도 참석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리해보자면, 캘리포니아의 담당자는 한 명인데 그 담당자가 참석해야 할 회의가 같은 시간에 런던에서도 열리고 뉴욕에서도 열리는 식이다. 담당자는 노트북 두 대에 각각 회의 창을 띄워놓고 적절하게 번갈아 참여한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서로 회의 일정을 조정하거나 아니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담당자를 늘릴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줌 회의가 정착되면서 출장 없이 오전엔 런던 회의가, 오후엔 뉴욕 회의가 가능해졌다. 이젠 아예 두 개의 회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일도 일어난 것이다. 하긴 우리가 평소에도 채팅창 두세 개를 동시에 띄워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가는 걸 떠올리면 회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분 얘기로는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도처에서 요청하는 회의가 너무 많아졌다고 한다. 또 다른 옆 부서는 그래서인지 외부 회의 요청에 응하지 않는 ‘회의 프리 시간’를 설정해 외부에 공지했다고. ‘일 좀 하게!’ 말이다.
스마트기기와 각종 IT 기술을 활용하며 사람 개개인의 업무능력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10명이 하던 일을 1명이 하게 된 지 오래인데, 여기에 시공간을 초월하게 해주는 플랫폼들의 각종 서비스들은, 물리적으로라도 필수적으로 배치됐을 인력마저 줄여버릴 수 있게 한다.
기술은 인간을 돕고, 그래서 생산성도 무척 높아진 거 같은데, 정작 업무량은 더 많아지고 바빠졌다는 하소연도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조직은 극도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긴다. 남은 인원들은 높은 생산성을 창출한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노멀이 된다.
능력이 끌어올려질 대로 끌어올려진 사람들이 노멀이 되면, 뛰어난 업무능력이란 건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게 된다. 유능한 사회적 자아로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산업기술의 발전으로 품질이 상향 평준화된 상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상품들이 똑같이 훌륭하기 때문에 더 이상 기능과 품질로 어필하기 힘들어진 기업들은, 대신 브랜드를 강조하고 스토리를 개발해 지속적으로 광고한다.
요즘의 사람들도 이런 상품들과 비슷해 보인다. 능력이 모두 출중하기 때문에 능력 외에 다른 부분에도 경쟁력을 키운다. 그래서 그렇게 스스로에게 이미지를 심고 서사를 부여하는지 모른다. SNS는 자신을 브랜드화해 알리는 최적의 매개체이다.
최근 자신의 콘텐츠로 널리 인정을 받아온 어떤 분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 전문직 자격증을 획득하고 그 자격증을 바탕으로 어떤 차별화를 꾀할지 고민하며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미 본인의 업에 큰 성과를 거두고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은 대단하다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가슴 한쪽은 뭔가 모를 답답함으로 메워졌다.
누구나 혈혈단신 개인으로서 경쟁의 장으로 내모는 플랫폼 사회는 끊임없이 혁신을 강요한다. 능력에 다시 능력을 더해 좋은 이미지까지 덧씌워야 선택된다. 아무래도 나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플랫폼 - 메타버스의 세계가 무한한 가능성의 대륙이라기보다는 개인에게 보다 더 가혹하고 치열해지는 생존의 장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