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경진 Nov 28. 2021

넷플릭스 <지옥>은 우리에게 '질문하라' 얘기한다

절대적 대상의 극복에 대해

연상호의 <지옥>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즈음 평소 습관대로 네이버 웹툰에 접속했다가.. 흡입력에 결국 마지막회(그 마지막 장면으로 끝나는..) 까지 다 보고 말았다.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함께 작업한 원작만화이니 넷플릭스 시리즈 내용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하 강 스포) 웹툰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결국 인간은 현상의 원인을 찾으려 하고 원인을 찾지 못하면 신화라도 만들어서 납득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구나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근원은 유비무환이라는 생존의 이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신화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일상을 통제하며 이를 교리로 만든 집단의 종교적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종교화된 교리를 지키기 위해 현실을 짜맞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리가 반대로 현상을 왜곡하는 틀로 작용한다. 고지를 받은 사람들은, 교리에 따르면 ‘악해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잖다. 물론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할 정도의 악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한 악인으로 호명된다. 웹툰에서 상습도박꾼으로 지탄받았던 어떤 고지된 중년남성은 주변인들에게 ‘그건 가벼운 내기 화투였을 뿐이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아마 그 주변인들과 화투를 함께 쳤을 것이다. 즉, 범법행위를 해도 그것은 실형을 살 정도도 아닌 약식기소 대상인 벌금이나 과태료 정도의 생활 밀착형 위법사항 같은 것일 테다.


그 균열은 결국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신생아가 고지를 받음으로써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다. 균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신진리회’는 아기의 노출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그전부터 교리의 극단적 추종자들은 고지와 시연으로의 흐름에 불합리를 제기했던 이들에 대해 살인을 포함한 잔인한 폭력을 퍼부어 왔다. 초월적 존재가 벌이는 일 못지않게 이들 ‘화살촉’이 벌이는 일도 매우 끔찍하다. 이성과 합리, 지성, 논쟁은 사라지고 공포와 침묵, 비이성, 극단적 원리주의와 추종만 남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 시리즈는 드라마 밖의 현실로 훅 들어오며 지금의 사회와 동시대성을 강하게 갖는다.


(결국 부모의 사랑과 희생이 교리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하얀 눈밭에 나와 예전부터 품어왔던 내면의 소리를 입밖으로 낸다.  진작 얘기했으면,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면, 해결책을 찾아졌거나 고지를 악인으로서가 아니라 운이 지독하게 없는 희생자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 대상이 신화적 존재라도, 정치, 경제,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축 같은 강고한 논리라도 문제제기는 늘 용납돼야하며 토론은 자유로워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현상 자체가 우리가 출발해야할 기본 토대이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뿐이며 문제적 상황이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무너져온 것은 인류사 발전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지옥>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라고 얘기한다. 비판을 주저하지말라고 강권한다.  그것은 바꿔말해 언론의 역할, 지식인의 역할 (최근엔 집단 지성이 더 맞는 표현 같다)을 제대로 하라는 주문일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도플갱어와 가상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