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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경진 Nov 25. 2021

도플갱어와 가상세계

메타버스 속 자아에 대해


 사진이 처음 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극히 두려웠을 것이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에게 이미지란 누군가의 손으로 ‘그리는 것’ 이었다. 그런 인식이 너무나 당연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낯선 형태의 기계에 ‘찍혀’ 종이 위에 ‘인화’된 자신의 모습을 맞닥뜨리게 된것이다. 이는 아마 공포영화나 미스테리 소설의 단골소재인 도플갱어를 실제로 본 충격에 다름 아니었거라 짐작된다. 실제로 카메라가 처음 보급된 19세기 중반 즈음 관련 기록들을 찾아보면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혼을 빼앗긴다고 여겨 사진찍는 걸 피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신문물이 등장할 때마다 혼비백산했다는 근대 사회의 이야기들은 이제는 재미있게 듣고 넘기지만 어찌보면 사진을 찍으면 혼이 빼앗긴다는 옛사람들의 인식은 오히려 21세기인 지금에 이르러서 실현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이라는 유기체와 과거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무기물은 직접적으로 주고받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인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매일의 일상이 디지털코드로 낱낱이 분절돼 빅데이터 서버에 끊임없이 공급되는 요즘 사진을 찍는 행위야말로 나의 디지털코드를 플랫폼 산업의 첨병인 스마트폰에 헌납하는 일이다. 사진을 찍는 즉시 장소, 시간이 정확하게 기록된다. 방문한 장소마다 사진을 찍으면 이동경로를, 사진에 함께 등장하는 지인이나 가족이 있으면 인간관계를 알려주는 셈이다. 스마트폰에 연계된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몇 줄 기록하거나 단순한 이모티콘 이라도 첨부하면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의 감상까지 고스란히 가져간다.


 혼이라는 개념은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으로 보다 정확히 설명될 수 있겠지만 거칠게 표현해 인간 내부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라고 한다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가져가는 우리의 막대한 정보는 혼에 버금간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 시절과 지금의 차이점은 혼을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했던 근대인들은 사진 찍는 것을 피할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의 우리는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캐내어지는 것을 크게 우려하면서도 빅데이터 업체들을 차단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꺼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며 추가정보를 자발적으로 마구마구 제공한다. (물론 위치정보를 끄거나 클라우드 자동저장을 해제하거나 SNS 개인정보 보호 옵션을 누를 수 있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플랫폼 업체들은 혼에 비견될만한 막대한 정보들을 긁어모아 개인마다 유사 도플갱어를 만들어낸다. 이같은 유사 도플갱어에 우리는 근대인들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환호한다. 플랫폼 세상에는 나와 취향, 성향이 매우 비슷한 ‘ㅇㅇ님’이 별도로 존재한다. 그들이 추천하는 ‘ㅇㅇ님이 좋아할 것 같은 글, 영화, 공연, 패션 등’에 나는 얼마나 열광하며 ‘좋아요’와 결제버튼을 누르는가. 알고리즘에 흔쾌히 올라타 유사 도플갱어와 나와의 간극을 쉼없이 좁히고 있다.


 한 글로벌 SNS업체는 이름을 아예 #META 로 바꾸었다. 도플갱어는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 물리적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이주해 안착하는 것을 돕는다. 그 세상은 나의 세상인가? 도플갱어의 세상인가? 그 둘은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까? 공간적 기술적 제약없는 이 무한한 가능성의 가상세계에서 어울리는 것은 각종 현실적 굴레에 얽매인 내가 아니라 나보다 더욱 나다운 도플갱어일 듯도 싶다.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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