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경진 Jul 24. 2019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와 하겐다즈

진진냥의 <이 순간 이 생각>

 각인되는 책 제목이 있다.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워낙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강렬해서 기억되는 것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 가 그런 책이었다. 20여년 전 한창 베스트셀러로 팔렸던 것 같다. 라디오광고에도 많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가슴을 따스하게 만드는 다양한 인생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일종의 미담집이자 단편집이다. 힘들거나 슬플 때, 우울할 때 읽어보면 위로가 되고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책을 처음 접한 학생 때는 ‘닭고기 수프’가 상징하는 의미보다 음식 자체에 큰 호기심이 생겼다. 닭고기 수프는 과연 무슨 맛일까 궁금했다. ‘엄청나게 맛있는 것이니까 책 제목에도 등장하겠지?’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서양음식을 다양하게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레시피 같은 것은 더욱 없었다. 수프라고 해봤자 ‘오뚜기 쇠고기스프’처럼 수프 가루를 물에 풀어 끓인 것이 고작일 때다.


 세월을 뛰어넘어 골목 식당에서조차 세계 각국의 요리를 일류 쉐프들이 선보이는 지금, 웬만한 프랜치나 이태리, 미국식 식당을 가도 닭고기 수프를 메뉴에서 본 기억은 따로 없다. 하지만 이젠 안다. 닭고기 수프라는 건 그 자체가 특별한 메뉴가 아니다. 아이가 독감에 걸려 침대에 누워있을 때, 엄마, 할머니가 뭉근하게 끓여내오는 그런 것이다. 맛 보다 온기와 정성, 사랑으로 설명되어지는 음식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복죽, 미역국 이런 것이지 않을까?  

 ‘회복중’이라는 사유로 요즘 며칠째 휴가 중인데 친정엄마가 가장 먼저 카톡으로 보낸 말은 “먹고 싶은 것 없어? 해줄게”였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김치부침개 ^^ .  ‘갈비, 전복죽, 백숙 ..’ 소위 이런 것들이 보양식이겠지만 지치고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수액이나 알약 몇 개로도 공급될 수 있는 ‘영양분’이 아니다. 진심과 애정을 담은 위로와 보살핌이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그 메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뭐 먹고 싶니?’를 주제로 오가는 위로와 기댐의 발화이다. 말이 오가는 과정 자체로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오전에 아이를 동네 도서관에 데려다준 뒤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평소 같으면 절대 사지 않았을 법한 하겐다즈 파인트 한 통을 당당하게 구입했다.  조금 느슨해져도 되겠다 싶었다. 연한 크림색의 아이스크림은 시원하고 달콤했다. 적당히 녹아 부드러워진 질감에 숟가락으로 떠내니 마치 수프를 연상케 했다. 스스로에게 주는 닭고기 수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군것질을 하고픈 마음의 합리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고보면 궁금하다. 우리 아이는 커서 자신의 닭고기 수프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내가 최근에 해준 음식이 ... 이만 글을 마치자.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