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를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상상만 해도 무섭다. 자주 꿈을 꾸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이나 걱정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 종종 악몽을 꾸는데 악몽의 주요 레파토리 중 하나가 억지로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높은 곳에서 장애물을 건너거나 하는 따위의 꿈이다. 나의 무의식 속에서도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지금 사는 집 아파트는 7층,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 아파트는 10층 둘 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소위 말하는 저층에 속하는 층에서 살고 있다. 10층까지는 창문 밖을 내가 볼 수 있지만 더 높은 층에서는 창문 가까이도 다가가지 못한다. 딱 만족스럽다.
이런 나이기에 당연히 놀이기구도 못 탄다. 하지만 큰소리는 늘 떵떵 치고 다니는 나는 남편과 연애 시절에 놀러 간 어느 지역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놀이공원의 작은 바이킹을 보곤 “저 정도는 탈 수 있겠네 한번 타자!” 소리치고 탔다가 땀인지 눈물인지 얼굴이 다 젖어 바이킹에서 내렸다. 그 뒤에는 절대 놀이기구를 탈 생각도 타지도 않았다.
그러던 몇 달 전이였나 오랜만에 조퇴를 하고 일찍 4살 아들을 하원 시키고 함께 집으로 들어가던 날 어린이집 근처 아파트에서 입주민을 대상으로 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몇 대의 푸드트럭 차량과 이것저것 잡화를 파는 부스 몇 개…. 그리고 트럭에 실려 이동이 가능한 미니 바이킹이 있었다. 작은 아이들 10명도 채 타지 못하는 작은 바이킹이었다.
낯도 많이 가리고 수줍음도 많은 아들이지만 놀이기구는 곧잘 타는 아들이 바이킹을 타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3천 원을 바이킹 사장님께 건넜고 아들 앞에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먼저 바이킹에 올라갔다. 뒤에서 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내게 사장님은 아이가 작고 어리니 보호자가 함께 타도된다고 하셨다. 이것 정도야 하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만한 어린이 둘 그리고 아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탔다. 몇 번의 반동에 나는 큰 공포감을 느끼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들을 쳐다보니 아들도 공포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으악!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애가 너무 무서워 해요!!!”하고 멈춰 달라고 했다. 반동이 잦아지고 바이킹이 멈추고 난 뒤 뒤도 보지 않고 바이킹에서 내리고 아들도 내리라고 손을 내미니 “안 내릴 건데 엄마만 내려! 싫어! 더 탈 거야!”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을 두고 쓸쓸하게 내려왔고 맞은편 어린이들이 ‘와 어른이 무섭다고 내렸네’하고 비웃었다. 시간이 지나도 진정되지 않은 심장을 부여잡고 있는 와중에 바이킹에서 내린 아들은 ‘어른도 무서운 게 있어? 엄마 겁쟁이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당연하지, 어른도 겁나는 게 있고 무서운 게 많아.”라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서운 것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이 생기니 더 겁나는 것도 두려운 것도 걱정되는 것도 많아진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이 두려움은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두려운 것들을 꼭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렵고 무서운 것들 중에 꼭 해야 하는 것들도 많지만 피해도 되는 것들도 많다. 그렇기에 나는 높은 곳을 피해 다니는 것처럼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 무서워하는 것들에 대해서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이라면 ‘어디 한 번 해보자!’라고 맞서기 보다 스스로 조금 부끄럽더라도 열심히 샥샥샥 피해다니고 도망 다니며 살아갈 것이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일본 드라마도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