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실까 봐 이야기해요. 저는 사회성이 엄청나게 발달한 내향인입니다.
나는 엄청나게 낯을 가린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게 좋고, 내 공간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 불편하다. 마치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 침해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아주 오랜 시간 곁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잘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유쾌하고, 사람을 좋아하며, 발이 넓은 초외향인이라고 생각한다.
“나 친구 별로 없어.”, “집에서 그냥 있는 거 좋아해.”라고 하면, 다들 “거짓말하지 마~”라고 웃으며 말한다. 타고난 텐션과 유머 감각으로 모임 분위기를 이끌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울 때도 많다. 그래서 나는 평생 ‘나는 외향인일까, 내향인일까?’ 헷갈리며 살아왔다.
MBTI 검사를 해보면 어떤 때는 극 I, 어떤 때는 극 E, 또 어떤 때는 딱 중간으로 나왔다. 결과가 나올 때마다 더 헷갈렸다. '외향인인데 왜 이렇게 사람 만나는 게 싫고 힘들까?', '내향인이라고 하기엔 겉으로 보기엔 너무 쾌활한데?' 게다가 나는 흥도 많고, 사람들 앞에서 장난치고 까불거리는 걸 좋아한다. 나도 한때는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나는 타고난 기질이 장난꾸러기고 흥이 많은 내향인이다. 에너지를 외부에서 받기보다 는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충전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단지 사회성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학교나 직장에서는 내가 내향인이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얼마나 잘 숨기고 있었냐면, 내 엄마조차도 내가 서른이 넘어서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그냥 밝은 애인 줄 알았는데, 친척 언니를 오랜만에 보고 말도 잘 못 하고 몸을 배배 꼬는 걸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나는 나만의 안전한 공간인 집을 나설 때, 에너지를 100으로 충전하고 나간다. 까불거리고 흥이 많은 것도 내 모습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가족이나 편한 사람 앞에서의 까불거림은 내 에너지를 깎지 않지만, 사회생활 속 까불거림은 내게 정해진 에너지를 쭉쭉 소모시킨다. 웃고 있고 즐거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배터리가 점점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특히 낯설고 불편한 상황에서는 로봇처럼 어색한 말투와 행동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에너지가 세 배속으로 빠져나간다.
내가 외부 활동과 사회생활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딱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배터리는 0이 된다. 그래서 퇴근 후 평일 약속이나 주말 약속은 나를 에너지 마이너스로 만든다. 그런데도 나는 호기롭게 말한다. “다음에 술 한잔하자!”, “언제 만날래? 한번 봐야지!” 정작 약속이 잡힐까 봐 마음속으로는 전전긍긍한다. 머릿속엔 약속을 피할 방법만 맴돈다.
예전에는 이런 말도 자주 들었다. “너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잖아. 같이 놀자고 해놓고 왜 안 나와?”, “보기랑 성격이 좀 다르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만 지칠까? 왜 만남이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바닥날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게 내향인인 나의 방식이니까. 그냥 조용히 있었을 뿐인데도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밝고 재미있어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다가왔던 사람들이, “쟤 되게 재미있는 애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미없더라." 라며 멀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사회성이 몹시 발달한 파워 내향인’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나도 내가 왜 이럴까?’,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정체성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훨씬 자유로워졌다. ‘친한 친구 몇 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수십 년간의 고민도 사라졌다.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통해 충전되는 사람이다. 굳이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다. 나는 내가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오해할 정도로 사회생활을 타고나게 잘하고 있는, 멋진 직장인이라는 것도.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 저는 사회성이 엄청나게 발달한 내향인입니다. 집에 있는 거 좋아하고, 잘 안 나가요. 불러도 안 온다고 뭐라 하지 마세요. 근데 또 가끔은 불러 주세요. 너무 안 불러주면 서운하기도 하고 에너지가 쭉쭉 깎여도, 까불거리며 놀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