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디토>가 명곡인 이유. 이지혜, 윤도현, 권진아 렛츠고.
명곡의 특징은 누가 불러도 좋다는 데 있다. <붉은 노을> (이문세-1988, 빅뱅-2008), <제주도의 푸른 밤> (최성원-1988, 태연-2016), <아로하> (쿨-2001, 조정석-2020)가 그렇다.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재조명 되며 심지어 히트한다. 세 곡 모두 원곡의 뼈대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재창조 되었다. 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입증한 셈이다. 이렇듯 한국 가요계에 2022-2023년으로 기록되어 시대의 부름을 다시 받을 명곡이 지금 인기를 끌고 있다. 뉴진스의 <디토>다.
뉴진스 <디토>는 멜론 차트 1위를 80일 째 기록 중이다. 멜론이 서비스를 시작한 2004년 이래 최초의 기록이다. 19년간 국내 음악 시장에 발매된 곡 수를 생각하면 대단하다. 심지어 현 시점 차트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뉴진스가 차지하는 중인데 (2023.03.10. - Ditto, OMG, Hype boy) 이 또한 버스커버스커 (2012년 4월 – 벚꽃엔딩, 첫사랑, 여수밤바다) 이후 11년 만이다. 세계적으로 K-POP이 강세인 2023년에 차트 1위를 장기간 차지하는 가요의 탄생은 명곡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명곡의 여부는 시대와 시간이 말해주기에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고, 리메이크 곡이 나오기에도 이른 시점이지만, 커버곡으로서 이미 명곡의 조짐이 보인다. 이지혜(샵), 윤도현, 권진아의 커버곡이 그렇다. 세 가수 모두 의외의 커버라고 볼 수 있는데, 감탄을 자아내는 구석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80일 간 뉴진스의 목소리로 충분히 들었다면, 이제부턴 가끔 커버 버전을 곁들여 환기를 해주어도 좋겠다.
유튜브 ‘밉지 않은 관종언니’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혜가 부른 커버곡이다. 과거 ‘샵’의 멤버로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등 시대를 풍미하는 명곡을 부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숱한 명곡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가수로서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최근 유튜브를 통해 커버곡을 선보이며 ‘1세대 아이돌의 위엄’이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지혜 커버의 장점은 정확한 딕션에 있다. 90년대 음악은 길거리 한복판 스피커에서 흘러나와도 귀에 꽂혀 음반을 사게 만들 정도로 가사 전달이 정확해야 했는데, 2020년대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리스너들은 에어팟을 귀에 꽂고 스트리밍 해서 듣는 추세라, 과하게 정확한 발음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 (90년대 선굵은 정서와 2020년대 'chill'하고 모호한 정서도 한 몫한다.) 살짝 힘을 빼고 라임(Rhyme)을 살려 느낌있게 부르는 게 요즘 창법이라면, 이지혜의 창법은 이와 대조되게 뚜렷해 오히려 색다르게 느껴진다. 음색이 여전히 맑고 청아하여, 지금 발매해도 손색없는 걸그룹 보컬을 지니고 있다. 그 결과, 이지혜의 디토 커버 쇼츠는 447만회를 기록 중이다. (2023년 3월 10일 기준).
소녀시대 ‘런 데빌 런 (Run Devil Run)’부터 조짐은 있었다. 걸그룹 노래 킬러라는 걸. 실제로 <디토> 커버곡에 달린 댓글에는 ‘윤도현을 가둬놓고 걸그룹 노래 킬링벌스(딩고)를 찍어달라’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특유의 락(Rock) 창법으로 기존의 예쁘게 다듬어진 걸그룹 멜로디 라인을 날 것으로 불러버리니, 매력이 있을 수밖에. 기타 한 대 반주에 어쿠스틱으로 가창한 윤도현표 <디토>는 영국 밴드 ‘스팅’ 느낌이 난다는 댓글과 함께 주목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라디오 스튜디오’가 배경이라는 점이다. 채널도 ‘MBC 라디오’이다. 윤도현이 진행하는 <4시엔 윤도현입니다>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커버이다. 각잡고 녹음, 녹화한 커버가 아니라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툭’하고 자연스럽게 어쿠스틱 버전을 불러버리니 느낌이 더 산다. 이 버전의 <디토>를 들으면 이 곡이 서늘한 여름밤 혹은 가을 느낌이 물씬 풍겨, ‘정말 곡 자체가 좋은 곡이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계절과 성별에 관계없이 좋을 곡임을 증명한 커버이다.
안테나 알앤비 여신 권진아가 커버한 <디토>. 어쩌면 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권진아 커버의 특장점은 ‘음색과 리듬감’에 있다. 과거 <K팝스타3>에서 방송에 처음 얼굴을 알릴 때 화제가 되었던 곡이 프라이머리 ‘씨스루’를 재해석해서 부른 무대였는데, 그 때 느꼈던 장점이 <디토>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느린 템포의 발라드 곡도 무척 잘 소화하는 권진아이지만,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미디움 템포에서 극대화된다. 박자를 가볍게 잘 탄다. 음색은 살짝 다크하고 알앤비 창법을 구사하면서 비교적 비트가 있는 곡을 가볍게 불러버리니 매력이 넘친다. 이 커버에서는 직접 미디로 음원을 찍어 부르는 수고를 보여줬는데, 보컬 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정체성을 가져가면서 공들인 영상이라 더 값지다.
뉴진스의 <디토>가 10대 버전이라면, 권진아의 <디토>는 좀 더 성숙한 버전의 것같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한 마디로 세련된 묵은지 느낌이 난다.
리메이크와 커버의 차이는 편곡에 있다. 편곡 스타일에 공을 많이 들이고, 또 정식 음원으로 발매할 경우 우리는 ‘리메이크’했다고 부른다. <디토>는 현재진행형의 음악이고, 또 유튜브라는 시대적 플랫폼과 맞물려 있기에 ‘커버’의 형태로 지금도 생산되는 중이다. 현 시점 이지혜, 윤도현, 권진아가 불러도 한결같이 좋은 음악이면서, 스포티파이 2억 스트리밍, 멜론 최장기간 1위 기록이라면 정말 이십년 후, 삼십년 후가 기대되는 명곡의 조짐이 보인다. 2023년을 사는 우리는 <디토>의 시작을 최선 다해 기억해두자. 뉴진스, 그리고 주옥 같은 가수들의 커버 버전들과 함께.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