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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Mar 07. 2023

신성한 변호사는 왜 슈베르트의 '이 곡'을 연주했을까?

피아니스트가 변호사가 되면 생기는 일. JTBC <신성한, 이혼>2화. 


'아티스트 로이어 (artist lawyer)' 신성한 역에 배우 조승우. JTBC 토일드라마 <신성한, 이혼>. @JTBC


배우 조승우가 피아니스트로 돌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변호사의 탈을 쓴 피아니스트 역할이다. 3월 4일 공개된 JTBC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 배우 조승우가 맡은 주인공역 ‘신성한’에 관한 이야기다. 극중 독일 음대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갑자기 한국에 들어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대단한 사연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2화의 엔딩에서, 조승우의 첫 피아노 연주씬이 등장했다. 슈베르트 작곡, 리스트 편곡의 <마왕>이 바로 그 넘버다.



이혼 전문 변호사 조승우가 알고 보니 피아니스트? | 신성한, 이혼 2회 | JTBC 230305 방송 @Youtube


길게 듣고 싶으시다면. 슈베르트/리스트 - 마왕 l Schubert/Liszt - Erlkönig (Pf. Minsoo Hong) @Youtube



거세게 몰아치는 ‘옥타브 트레몰로’가 특징이다. 악보만 봐도 ‘G(솔)’ 음을 사정없이 타건해야 한다. 왼쪽 상단의 빠르기말 ‘Presto agitato’는 ‘매우 빠르고 격하게, 급속히’의 뜻이다. 손목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4분 여간 스피드를 유지해야 하기에 체력적으로 난이도가 상당하다. 원곡은 슈베르트의 가곡이다.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한 성악 선율에 피아노 반주로 작곡된 곡인데, 슈베르트 특유의 짧고 간결하면서 명확한 주제가 돋보인다. 시작과 거의 동시에 등장하는 ‘솔-라-시b-도-레-미b-레-시b-솔’이 그렇다. 포르테로 강렬하게 치고 빠진다. 듣기만 해도 귀를 낚아채는 것이, 꼭 대중가요에서의 ‘훅(hook)’ 같다. 슈베르트 가곡 반주의 매력이다.


잠깐 악보 구경하고 가실게요! 같은 음 연타 지옥과 왼쪽 상단의 빠르기말, 주제 선율 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IMSLP



그렇다면 조승우는, 아니 변호사 신성한은 2화에서 왜 슈베르트, 리스트의 <마왕>을 연주했을까? 


가곡의 가삿말이 된 괴테의 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병든 아이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마차를 타고 가다가 죽는 내용’이다. 비극적이고 잔인하다 못해 끔찍하다. 시종일관 연주되는 ‘G’ 트레몰로 타건음은 마차의 말발굽 소리를 상징한다. 한밤중에 매우 급박하게, 빠른 속도로 마차가 달려가고 있음을 상상케 한다. 그렇다면 ‘솔-라-시b-도-레-미b-레-시b-솔’은 무엇을 상징할까? 바로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마왕’이다. 


아버지는 병든 아이를 안고 달리는 와중에 아이로부터 마왕의 존재를 듣는다. 동양적인 정서로 해석하자면 다름 아닌 ‘저승사자’다. 병마와 싸우며 환각, 환청에 휩싸인 아들은 ‘마왕의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그저 ‘자연의 소리’일 뿐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결국 이 급박한 상황의 엔딩은 아들의 죽음이자 마왕의 승리로 끝이 난다. 죽음 이후에 어떠한 비탄의 목소리도 시에서 표현되지 않고, 그저 ‘제3자의 시선’에서 서늘하게 ‘그저 품속의 아이가 죽어있었다’고 묘사하니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괴테의 시를 모티브로 한 슈베르트 가곡 <마왕> 가사 일부. @twitter

<신성한, 이혼>의 1,2화는 양육권 싸움으로 시작한다. 특수한 상황의 이혼 가정에서 어린 나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 아이를 보며 조승우(극 중 신성한)는 자신의 내면의 어린아이를 본 듯하다. 너무 일찍 어른들의 세계를 보게 된 어린아이는 그 과정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내면의 어린아이가 너무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이 살면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내면의 어린아이로 대표되는 ‘순수성’을 잃게 되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온다면, 이것 또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정서적 일부분의 ‘죽음’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과, 또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아이로 남고 싶은 마음을 죽이고 어른으로 거듭나는, 마치 <데미안>의 성장스토리 같은 과정을 사람은 누구나 겪게 되는데, 이 과정의 ‘죽음’을 <신성한, 이혼>에서는 슈베르트와 리스트의 ‘마왕’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구) 피아니스트 (현) 이혼 전문 변호사 '신성한' 역의 조승우 배우. @JTBC


이 곡은 JTBC <스카이캐슬>에서도 쓰였다. 이 드라마 또한 아이들이 순수함을 잃고 아이답지 못하게 내면적으로 죽어가는 내용이므로, ‘마왕’과 맞닿아 있다. 마이너 풍의 기교가 화려하며 확실한 주제로 귀까지 사로잡는 유명한 클래식 곡이, 단지 ‘분위기에 어울린다’거나, ‘피아니스트로서의 테크닉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극 중 슈베르트, 리스트 <마왕>을 연주하게 되는 씬. 스틸컷. @JTBC


조승우는 극 중에서 예술가인 변호사다. 이러한 설정은 흔치 않아서, 또한 그 배우가 조승우여서 기대가 된다. 내면적으로 감정의 파고가 심할 예술가가, 인간의 고통을 메스를 들고 집도하듯 이성적으로 다뤄내고, 또 이후에 ‘와인잔에 깡소주를 마시며’ 삭혀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치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내적으로는 감정이 요동치는데, 단 한번의 미스터치도 없이 완벽하게 곡을 연주해내는 것과 닮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내 감정이 이렇고, 이래서, 이래’가 아니라, 단 몇 분동안의 ‘피아노 연주’로, 신성한 변호사의 내적 감정을 임팩트 있게 표현할 장면들이 기대가 된다. 웹툰이 원작이라고 하니, 함께 곁들여도 좋겠다.


이렇게 엄격, 근엄, 진지하지만은 결코 않습니다. 빵터지는 부분도 상당히 많아요. 추천합니다! @JTBC



음악평론가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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