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매력인 시대, 와비사비는 왜 돌아왔나

#wabisabi, 결점이 미학이 되는 순간들

by 이예진
깨진 사발 (킨츠기) © elcaminoconcorreos

오래된 찻잔의 금이 간 표면을 본다. 흰색 도자에 금 테두리. 그 사이를 거미줄처럼 지나가는 검은 선들을 보며 ‘엄마가 이 커피잔을 참 좋아했지.’ 생각한다. 비슷한 잔상으로 예전 큰아버지 댁의 삐걱거리던 나무 계단을 떠올린다. 어린이였던 나에 비해 높은 보폭을 요했던 그 계단은 내가 그것을 손으로 딛게 만들었다.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무의 결, 둥글게 손에 감기는 그립감이 안정감을 주었던 계단 왼편의 손잡이들. 사물에서 따스함을 느낀 기억을 곱씹어보면 사람에 의해 낡고 윤색된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다. 새 건물의 콘크리트 계단과, 새 상자에서 갓 꺼낸 매끄러운 찻잔은 결코 줄 수 없는 감정이다.


© magnoliarouge

이 감각을 설명하는 말이 있다. 바로 ‘와비사비(わび・さび)’다. 소박하고 단순한 것을 일컫는 와비와, 낡은 멋을 지칭하는 ‘사비’가 만난 합성어다. 십 년 전쯤, 인테리어와 디자인 분야를 중심으로 이 미학이 대세였던 적이 있었고, <레너드 코렌의 와비사비 : 다만 이렇듯>(2019) 책이 그 느린 파도를 이어갔었다. 과거에는, 이 미학이 시각적이고 정적인 느낌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면, 2025년에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붐이 일고 있다. 시작은 ‘틱톡’이었다. 고전 만화인 ‘King of the Hill(1997)’의 한 장면이 NBA 영상과 결합되며 밈으로 확산됐다. 키리 얼빙(Kyrie Irving) 선수의 예측 불가능한 드리블을 일컬어 ‘비대칭이어도 와비사비야’라는 바비 힐의 클립과 함께 편집된 영상이 좋아요 310만 건 이상을 받으며 화제가 된 것. 이 흐름은 ‘완벽하지 않아도 매력’이라는 감각을 #wabisabi라는 해시태그로 이어갔다.


올라오는 영상들의 주 연령층은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 세대의 합성어)’다. 이들은 자신의 얼굴에 난 흉터를 카메라 렌즈에 담아 #wabisabi를 단다. 보정을 거듭해 가장 완벽한 버전의 사진, 영상만 올렸던 이전 세대와는 또 다른 흐름이다. 소위 ‘콤플렉스’라고 불릴 만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태도. 이 세대에게 와비사비는 삶의 철학이라기보다 일종의 가벼운 멋으로 기능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스크래치가 난 재킷, 부풀지 않은 케이크와 같이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매끈한 상태가 아닌 사물들에도 #wabisabi는 적용된다.


왜 지금, 와비사비일까? 예전에도 그랬듯 완벽함을 요구받아온 우리 사회는 이제 그 피로감을 숨기지 않는다. 완벽함이라는 것은 곧, 인공적이기도 하다. AI가 찍어내는 자판기 같은 이미지들. 기술이 발달할수록 완벽이 쉽고 흔해지는 이 시대에 인간의 눈은 점점 그렇지 않은 ‘내추럴한 것들’로 향한다. 일종의 또 다른 ‘와비사비 미학’이다. 이러한 흐름은 패션으로, 그리고 음악으로도 향한다.

로살리아, <LUX> (2025) Columbia Records

몇 주, 한 달간 벽돌처럼 고여 있는 차트 밖의 리스너들은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2025년 발매된 새 앨범, 21세기 아방가르드 팝의 선구자로 불리는 ‘로살리아(Rosalía)’는 <LUX>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그곳에는 깨진 도자기의 미학을 담은 ‘Pocelana’라는 곡이 담겨있다.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LUX’가 빛을 뜻하듯, 이 빛이 깨진 도자기의 틈으로 스민다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곡이다. 흠결을 숨기지 않고 잔잔하게 전면화하는 방식이 와비사비를 닮았다.


한국에도, 대중음악 명반으로 남아 있는 힙합 앨범 <물질보다 정신>(2018)의 주인공, ‘와비사비룸’에 그 씨앗이 있다. 현재 힙노시스테라피의 전신인 이 그룹은 프로듀서 제이플로우, 에이뤠, 그리고 래퍼 짱유로 구성된 3인 프로젝트팀이다. 이들은 로파이한 질감에 추상적인 재즈의 옷을 입은 앱스트랙트 힙합을 구사하며 타이틀 트랙 ‘밥 말리’로 현대 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원시적인 자유, 본능으로 회귀하려는 태도를 드러냈다. 후렴구 ‘밥 말리처럼 나도 원초적인 놈’이라는 가사는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와비사비의 태도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 밖에도 ‘속(俗)’적인 것을 거부하고, 맥락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등 우리 사회라는 원 밖에서 느린 걸음으로 관조하며 서글퍼하는 청춘의 감정을 담아냈다. 수년 전, 이 앨범이 꺼낸 ‘묵직한 청춘의 상처’, 그 특유의 투박한 비장미에 세대가 공감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가볍게 툭’, 오히려 귀엽게, 그러나 정확하게, 숨김없이 완벽에의 강요를 원천 차단하는 느낌이다. 이젠 흠을 향한 발화들이 ‘상처조차’ 아닌 것이다.


하이쿠라는 일본 고전 시에서 출발한 와비사비 미학. 오래된 연못의 고요함, 개구리의 물소리 한 방울에서 출발한 이 미학은 오늘날 해시태그 와비사비로 전면에 드러나는 중이다. 자연과 인간의 흠결은 맞닿아 있다. 로살리아의 빛처럼, 흠결 사이로 우리의 아름다움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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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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