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보에 남아 있던 마음

어느 봄날, 안성재 셰프와 한 곡의 노래를 떠올리며

by 이예진

흑백요리사 열풍으로 셰프들에게 관심을 두게 되며, 나는 어느 해 봄 부산에서 먹었던 파인다이닝 디시를 떠올렸다. 퇴사 이후 머리를 식히러 떠난 여행이었다. 해운대 달맞이로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고, 그 위로 분홍빛 벚꽃이 겹쳐 보이던 계절이었다. 그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잘 다려진 흰색 테이블보가 씌워져 있었고, 벽면에는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눈은 즐거웠지만, 동시에 어쩐지 불편하면서도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훗날 안성재 셰프의 유튜브를 보며 알게 된 것은, 그 테이블보 하나에도 사람이 들인 정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먹었던 음식의 구체적인 맛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디시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셰프들이 쌓아온 밤낮의 고민과 수련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다시 그 스테이크를 먹는다면, 분명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해온 사람들의 눈빛은 다르다. 셰프들의 활약이 단순한 미디어 현상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윤화영 셰프는 가게를 찾은 손님이 “우리 아이가 셰프가 되고 싶어 한다”라고 말하면, “저임금 고 노동자인 건 알고 계시죠?”라고 되묻는다고 한다. 자격증 시험 준비하듯 접근해서 단번에 도달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미쉐린의 인증 또한 단 하루의 장사로 주어지지 않는다. 불 앞에서의 반복된 연습, 식재료와 기술의 축적, 이후에는 사업가로서의 감각과 예술가 혹은 테크니션으로서의 감각, 그리고 스태프를 이끄는 리더십까지 요구된다. 모든 감각이 동시에 깨어 있어야 가능한 직업, 셰프라는 일은 그렇다.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안성재 셰프는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전문가의 얼굴로 대중 앞에 섰다. 그는 혀에 닿은 음식을 마치 기계처럼 분석하고, 언제나 같은 톤으로 절제된 판단을 내린다. 우리는 이런 사람에게 신뢰를 보낸다. 최강록 셰프가 “내 감정이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듯, 안 셰프의 유튜브에 출연한 윤화영 셰프 역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돈을 받고 일하는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힘든 것을 드러내며 일하는 사람보다, 늘 웃으면서 힘든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만든 음식은 다르다고. 안 셰프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힘든 것은 원 자아, ‘나’다. 그런데 요리하는 행위가 그 고초를 넘어설 만큼 좋다면, 그것은 일종의 집착에 가깝다. 안성재 셰프가 무급으로 요리를 배우고, 노숙을 감내하며 시간을 버텨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좋아해서 미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그 열정이 식은 이후에도 계속해 나갈 근성과 책임감을 지닌 사람만이 결국 그 길의 끝에 도달한다.


안성재 셰프를 보며 떠오른 노래가 있다. 그레고리 포터의 ‘Consequences of Love’다. 묵직한 중저음의 피아노로 시작해, 덤덤한 가창과 색소폰이 이어진다. 소리는 더해지지 않고 구조는 반복된다. 과열되는 순간 없이 그는 사랑의 대가를 감내하겠다고 말한다. 절제된 톤으로 끝까지 버텨내는 방식이 이 노래의 핵심이다. 놀랍게도 그레고리 포터 역시 요리사였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다가 음악으로 방향을 틀었다. 안성재 셰프가 미군 정비공을 꿈꾸다 접시 닦는 일부터 시작해 미슐랭 별 세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그러했듯, 두 사람의 삶은 전환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감정을 쉽게 방출하지 않고 삼키며, 주변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는 태도. 하나의 길을 끝까지 버텨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바로 그런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셰프들의 근성과 진정성을 통해 각자의 삶을 비춰 본다. 나는 지금 저만큼의 태도로 일하고 있는가, 저만큼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가. 운이나 요행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보여준다. 오래 우려낸 국처럼 시간을 들여야만 자기만의 맛이 생기듯 ‘나’라는 주제를 끝까지 살려내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레고리 포터 – Consequences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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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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