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라는 이름의 회귀본능

어제 내한한 브라질 인디 싱어송라이터, 아나 프랑고 일렉트리코의 발견

by 이예진

음악에 관해 쓰는 일을 하며 알게된 사실이 있다. 사람은 대체로 청소년기에 듣던 음악을 평생 반복해 듣는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고 부른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경험한 사건과 음악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새로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사실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보다는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음악의 흔적을 먼저 찾게 된다. 내 취향의 뿌리에도 이 법칙이 단단히 박혀 있다. 가령 내가 엘 드바지(El DeBarge)의 ‘Heart, Mind & Soul’을 좋아하는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god의 ‘왜’에 닿는다. 대리화음으로 이어지는 코드 진행과 멜로디, 살짝 울컥하게 만드는 소울풀한 분위기까지 비슷하다. 이렇듯 어린 시절에 들은 음악은 취향과 직결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음악과 비슷한 결의 음악을 '좋다'고 느끼며 찾아 듣는 것은, 과거의 나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과 가깝다. 따라서 낯선 아티스트의 신곡을 들어보는 것은 어쩌면 내 무의식 깊숙이 각인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아나 프랑고 일렉트리코(Ana Frango Elétrico). (c) mr bongo


어제 그 회귀 본능이 작동했다.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한 아나 프랑고 일렉트리코(Ana Frango Elétrico)의 ‘Não Tem Nada Não’. 제목은 ‘별것 아니야’라는 뜻이다. 보사노바 특유의 느긋한 리듬 위에 남녀 보컬이 더해진다. 원곡자 마르코스 발레(Marcos Valle)와 함께 부른 곡이다. 산뜻하게 미니멀한 사운드 위에 여유로운 가창을 이어가다 돌연 템포가 빨라지며 긴장을 만들어낸다. 쿨하지만 계산된 세련미가 있다. 발레는 브라질 음악의 한 축을 이뤄온 인물이다. 리듬은 느긋한데 유럽식 화성과 재즈가 섞여 소울풀하다.


아나 프랑고 일렉트리코(Ana Frango Elétrico)의 ‘Não Tem Nada Não’ (c) Youtube


흥미로운 것은 ‘Não Tem Nada Não’의 후반부다. 곡이 전복된다. 어떤 브릿지도 없이 돌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라라디 라라다” 멜로디. 크리스탈 워터스(Crystal Waters)의 ‘Gypsy Woman’ 훅이 스며들며 1990년대 하우스의 리듬으로 이동한다. 나른하게 흔들리던 스윙이 갑자기 땅에 발을 딛는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보사노바의 나일론 기타 줄이 순식간에 팽팽한 전자음으로 치환되는 순간의 흡인력은 상당하다. 이 변화는 갑작스러우면서도 낯설지는 않았다. 공기 중에 흩어지던 마르코스 발레의 웅얼거림은 크리스탈 워터스의 선명한 '라라디' 멜로디에 포섭되고, 2분 54초 경, 청자는 안개 속을 걷다 갑자기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심 한복판에 내던져진 듯한 감각의 전복을 경험하게 된다. 차가운 신스와 단정한 4비트 킥. 미니멀한 베이스라인이 빠른 비트 위에서 멜로디를 이끈다. 흥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전반적으로 조금은 무심한듯 초연하게 춤을 추는 한 여인이 생각나는 곡이다. 국내에서도 슬릭백 챌린지로 알려지며 주목받았던 이 곡은, 시대를 관통하는 리듬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아나는 이 믹스를 마르코스에게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보사노바의 느슨한 스윙을 4비트로 환기하며, 남미에서 시작된 리듬이 미국의 하우스를 거쳐 다시 브라질 인디 씬으로 회귀하는 흐름을 만든다. 여기서 나는 또 하나의 기억을 발견한다. 어릴 적 자주 듣던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Septembro (Brazilian Wedding Song)’. 라디오 프로듀서로 오랜 세월 근무한 선배가 추천하여 듣던 음반이었다. 처음 그 음악을 듣던 순간이 생생하다. 잔잔한 허밍으로 시작되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아카펠라는 마치 별밤을 수놓은 별이 한 번에 쏟아지는 것 같은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 풍성한 화성이 자아내는 온기 때문에 한 겨울에 들으면 따뜻함 마저 느껴진다. 참여한 아티스트들도 상당하다. 사라 본(Sarah Vaughan), Take 6, 허비 행콕(Herbie Hancock) 등, 이들과 함께한 퀸시 존스는 브라질 음악을 미국 재즈와 소울의 언어로 풀어냈다. 나는 이 음악을 통해 유럽의 세련된 화성과 미국의 재즈 소울을 닮은 브라질 음악의 결을 체화했던 셈이다.



‘Não Tem Nada Não’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세련된 편곡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곡은 나의 청소년기 음악 청취 기억과 은근히 연결되어 있다. 취향은 설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최신 아이돌의 신곡에서 문득 1980년대 신스팝의 향수를 발견하거나, 세련된 시티팝을 들으며 가본 적도 없는 시대의 노을을 떠올리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뇌리에 박힌 태초의 멜로디 조각들은 이름표를 떼어낸 채 우리 안에 잠복해 있다가, 어느 날 전혀 다른 국적과 시대의 음악을 타고 불쑥 얼굴을 내민다. 다만, 만약 누군가 이 노래를 듣고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과거의 당신이 들었던 어떤 사운드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회귀는 수만 가지 선택지 속에서 기어이 '나다운 것'을 골라내려는 자기 발견이다. 과거의 기억이 담긴 음악을 단순히 반복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사운드를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한 음악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곧 나를 정의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과거의 파편을 수집해 현재의 취향을 완성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지도를 갖게 된다. 오늘 당신이 무심코 반복 재생한 그 노래는, 어떤 시절의 당신을 다시 불러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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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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